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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권위와 탐욕을 버린 하나님의 자녀들 원문보기 글쓴이: Daniel
<남 아메리카의 고대 역사>
1.올메크 문명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분리된 이후로 바벨론에서 모여살던 다양한 인종들은
언어가 통하여 소통이 되는 사람들 끼리 바벨론에서 점점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그 옛날 지구의 땅덩이는 하나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그것이 바로 판게아라는 대륙이다.
이 판게아 대륙으로 인류가 이동한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판게아 지도였던 지구의 대륙의 연대기를 위와 같이 단정지었다.
진화론의 연대기는 무시하고 우리는 한덩리었던 대륙이 있었다는 것에만 집중하자.
아시아에서 거주하던 몽골계 인종들이 현재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베링해 지역을 따라
B.C.1500년경에 멕시코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이 되는 올메크인들은
저지대 습지에 자리를 잡았다.
올메크의 마을은 습지대의 표면이 돋워진 진흙 바닥에 건설되었고
마을의 바닥은 돌로 포장하고 배수 장치가 되어 있었다.
'올메크'라는 뜻은 고무가 나는 곳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올메크 문명은 아메리카의 문명의 모체가 되고
그들은 조상들에게 전수받은 대로 사탄을 숭배하기 위하여
피라미들을 건축하고, 마그마가 터져나와 지표면에서 굳은 현무암으로
조각상을 만들었다.
거대한 현무암 머리조각상은 높이 3미터 정도에 무게가 20톤이 넘고,
또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사람들을 형상화했는데,
이 상들은 대개 갈라진 해골을 쓰고 있다.
또 이들이 만든 도자기 공예품도 발굴되었는데, 옥 조각품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2.마야문명
B.C.5세기, 멕시코 남부에서 올메크 문명의 영향을 받아 거대한 피라미드를 통해
마야문명이 형성되었다.
마야인은 유카타 반도를 중심으로 한 중앙 아메리카의 인디오들이다.
마야는 고대 멕시코 및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한 인디오 문명의 민족의 명칭이고
중심을 이룬 곳은 과테말라 북부에서 멕시코 서쪽의 타바스코와 벨리즈 지방에 이르는
중앙 지역이었다.
마야문명은 A.D.4세기부터 A.D.9세기 사이에 번성하여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이들은 엄격한 의식 생활을 중요시 했으며, 세련된 예술활동도 하였을 뿐 아니라,
천 년을 한 주기로 계산하는 달력을 이용하는 등 매우 발달된 수학으로
세계에서 0의 개념을 최초로 이해하고 사용한 부족이었으며,
상형 문자는 복잡하고 고도로 발달된 것이라고 한다.
마야인들은 이 상형문자를 가지고 이를 기념비나 신전의 벽 또는 양가죽에 남겨 놓았고,
1,000년 이상에 이르는 역사 연대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문자는 아직도 완전히 해독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뛰어난 의학 기술과 천문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독특한 마야 달력은 두 개의 기본 규칙을 사용하는데,
하나는 농사와 국내사항을 결정하는 360일의 태양년으로 구분하고,
다른 하나는 제식 행사를 좌우하는 260일의 달력이다.
이 두가지 달력은 인간들의 삶에 대한 전체를 다루는 점성술의 체계와 연결된다고 한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고 닷새가 지나면, 마야의 점성가이자 사제는 그 아이의 직업이
군인, 사제, 공무원 또는 제물 중에 무엇이 될지를 알기 위하여
그 아이의 천궁도를 그렸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문명국들 보다도 더 빨리, 지구가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위도와 경도의 개념, 일식과 월식 그리고 별들의 이동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다.
마야 족은 부신, 모신및 선악신 등 3대 신을 섬기는 것 외에도 태양신등 수많은
우상 신들을 숭배하였고,
이웃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 인신제사의 제물로 사용했고,
이를 그림으로도 남겼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들은 왕의 머리를 피라미드 처럼 뾰족하게 하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머리에 기구를 끼워서 자라게 한다고 한다.
또 왕의 눈을 사팔띄기로 만들기도 하였다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수학의 계수는 1, 20, 400을 단위로 하는 20진법에 의해
점과 막대기를 짜맞춘 숫자를 계산에 사용하였다.
3.테오티우아칸 문명
이 마야 문명은 10세기에 갑자기 사라진 후에, 중심이 유카탄 반도 북방부로 옮겨갔다가
15세기에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B.C.2세기 경에 메시코 중부 지역에서 테오티우아칸이 강력한 힘으로 소도시들을 점령하여
12만이 넘는 인구로 큰 도시를 형성하였다.
테우티우아칸의 뜻은 '신이 되는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테우티우아칸은 문자를 비롯 여러 면에서 마야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테우티우아칸 도시 유적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는 약 66m의 높이, 밑변이 224m에 이르는 것으로서, 이집트의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와 비슷한 규모인데,
이곳을 발견한 아스텍인들은 거인이 세운 것이라 믿고 신성시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인신공양이 있었다고 한다.
또 정교한 조각과 벽화 및 상형문자의 기록과 달력을 남겼다.
4. 톨테크(톨텍) 문명
테오티우아칸 문명의 멸망 후에 멕시코에서는 여러 국가들이 지역을 분할해 점령하였는데,
10세기에서 12세기에 톨테크가 주도권을 잡았다.
톨테크는 멕시코 중앙 고원에서 번영한 문화로 툴라에 수도를 세우고
역법(曆法), 우주관, 종교체계를 가지고 주변 각지에 영향을 끼쳤다.
(톨텍의 전사의 신전)
전쟁과 희생을 묘사한 장식 띠, 해골 받침대 등의 유물에서 알 수 있듯이
잔인한 군사 문화가 발달하였으나,
12세기에 극심한 가뭄으로 그 세력이 약해진 시기에 유카탄 반도의 다른 문명에게 정복했다.
5.아즈텍 문명
고대 멕시코 최후의 국가인 아스텍 문명은 멕시코 국기에 묘사된 전설,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 뱀을 잡아 먹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 라는 계시에 따라
호수 섬인 테노치티틀란에 건설된 나라라고 한다.
누가 준 계시일까?
아즈텍 문명은 13~15세기경에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인디언에 의해 세워졌다.
주로 옥수수, 양파 등을 재배하는 화전 농업을 기반으로 도시, 사회 조직, 정치 기구,
군대, 토지 제도를 정비하고 신권 정치를 행하였다.
이들의 신권 정치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다.
아스텍 제국은 황제 중심의 엄격한 위계질서와 전사 의식을 갖춘 체계적인 조직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사탄에게 산 사람의 심장을 바쳐야만 우주가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어
제물로 받쳤다.
이러한 의식이 적에게는 공포를 주어 아스텍은 더욱 강해졌다.
실제로 아즈텍의 신전과 건축물들을 조사해보면 수만 명의 인간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건설되었는 것에 고고학자들이 아즈텍의 그 잔혹함에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아즈텍인 등은 실제로 1년 365일중 단 몇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사람을 죽여서
신전계단에 피가 마를날이 없었다고 한다.
남자는 심장을 갈라서 죽이고
남녀노소 불문 인육고기를 먹고,
여자는 주로 목을 잘라서 그 피로 곡식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었다.
1521년 멕시코에 상륙한 스페인 군 수십명도 아즈텍인들에게 사로잡혀 인신제사에
쓰이고, 신체를 절단내서 아즈텍인들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스페인에게 정복당했는데, 아즈텍이 실제로 스페인 병사 수백명 때문에
붕괴되었다기 보다는
그들의 전쟁의 대상이 되는 주변의 타 민족국가들의 수십만군의 병력이
스페인을 무조건 지지하고 아즈텍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가만있다간 언제 아즈텍의 반복되는 정복전쟁에 포로로 잡혀 심장갈리고
목이 잘려서 인육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잔인하고 살벌한 아즈텍을 제거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에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텍을 정복한 후에 식민지로 삼고 초대 총독이 되었다.
이로서 남미의 중요한 5개의 문명이 멕시코를 근원으로 하였다.
6.잉카 문명
아스텍 문명과 같은 시기인 13세기 전반에 페루에서 칠레에 걸친 안데스 고원에
세워진 대제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이 제국은 페루의 한 고원에서 기원하였으며,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95년 동안 잉카는
현재의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남부등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방대한 남서 아메리카 대륙을 융합했다.
잉카 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은 지금의 페루인 쿠스코이다.
남자의 평균키는 약 157cm였으며, 여자의 평균키는 145cm였다.
그러나, 그들의 폐활량은 다른 종족들 보다 3배이상 뛰어났다.
잉카족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심장박동 속도가 느렸으며, 혈액도 2리터 이상 많았고,
핏속에서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 수치 또한 다른 종족보다 두배이상 높았기 때문에
엄청난 고도에서도 잘 견딜 수는 신체 조건을 소유하고 있었다.
잉카는 엄격한 피라미드형 계급 사회였는데, 이는 사회의 모든 요소를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통제는 정치·군사·종교 부문에 절대권력을 휘둘렀지만 그들에게는
바퀴와 문자가 없었다.
잉카는 대규모의 토목 사업을 시행했는데,
거대한 요새, 사원, 복합적인 성채는 하나가 몇 톤이나 되는 불규칙적인
모양의 바위들로 축조되다.
또 산마루를 뚫고, 안데스의 협곡에는 최대 70미터 길이의 현수교를 지었다.
잉카 제국은 이런 방식으로 약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산과 해안에 놓았고,
페루의 부락민들은 아직도 이러한 현수교를 제작한다.
현수교는 풀을 꼬아 줄을 만들고 고대 잉카의 장인들이 만들어 놓은 돌구멍에 줄을 고정시키면 되기 때문에 단 3일이면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잉카 제국은 태양신을 숭배였다.
그리고 태양신을 함께 숭배한다면 평민들이 지역의 특별한 바위나 강을 숭배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 반면 귀족들은 최고신이자 창조신인 '비라코차'를 숭상했다.
(벨라상고(VelaSango) 비라코차作 Osseous Lady 발매용
안데스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고대전설에 의하면 키가크고 턱수염을 길렀으며
피부색이 하얗고 외투를 입은 불가사의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다의 거품"이라는 이 비라코차는 과학과 마술에 능통하고 무서운 병기를 다루며
혼란의 시대에 나타나서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고,
의학, 야금학, 농업학, 가축학, 문장학, 공학과 건축학의 세련된 원리와 기술을
잉카인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샤크샤우만의 고대 성채(성과 요새)는 돌들로 이루어져 있고
돌중 하나의 높이는 8.53미터, 무게는 361톤인데,
바퀴의 존재 조차 알지 못한 잉카에서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없었지만,
전설에 따르면 비라코차가 건설했다고 전한다.
이후 비라코차는 문명화라는 자신의 사명을 마친후 바다로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의 거품'이라는 이름, '비라코차'라 부른다.
잉카인들에게서 놀라운 사실이 또 발견되었는데,
1954년에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지역의 공동묘지 11곳에서 발굴된 411구의 사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66개의 두개골에서 뇌수술의 흔적을 발견 되었고 그들 중 19명은
여성이라고 한다.
조사팀의 앤드루쉬코 박사는 이들 중 90%이상은 수술 후에도 상당기간 생존 하였으리라고
믿는데, 이는 잉카인들이 얼마나 해박한 의료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 증명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 중의 뇌 부상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뇌수술도 필요하였겠지만
특정 질환등의 치료를 목적으로 뇌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수술 방법은 돌로 된 수술대 위에 환자가 누우면 마약성분의 코카 잎이나 담배 잎으로
환자에게 씹게하고 마취주사를 대신하였다.
그리고는 환자의 머리 가죽을 돌메스로 도려내고 두개골에 골에 돌끝을 대고 살살 두드려
수술하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수술 후에 머리를 덮고 상처에 사포닌 성분의 약초를 바르고
수술 부위의 감염을 막아 머리를 붕대로 두르는 것이 수술의 전부였지만,
상처에 염증 흔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추측인지 사실인지 믿을 수가 없다.
이러한 수술 방법은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도의 발달된 잉카의 사원에는 금, 은 장신구, 신상등이 가득 차 있었는데,
1533년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 정복 후,
스페인 사람들이 대부분 다 녹여서 덩어리로 만들어 스페인으로 실어갔다.
잉카문명의 대표적인 유산은 마츄피츄와 쿠스코스에 남아 있다.
(마츄피츄 100m 높이로 올라 갈 때 마다 기온이 1도씩 떨어져서 선선한 고산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쿠스코스 공연)
7. 나스카 부족
페루 강 줄기에서 시작한 부족으로 30m~300m가 넘는 그림을 300종류나 땅을 파서
나스카 평원에 그려놓은 부족이다.
마치 거인의 손으로 그린 듯한 큰 그림들은 거대한 새들과 짐승등이다.
이 그림을 보려면 300m가 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외계인들이 그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외계인들의 우주의 전거장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지역에 이러한 그림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이유는 나스카 평원에는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바다에서 오는 습기를 날려보내기 때문에
기후가 건조하고 비가 오지 않아서 약 1500년 전 그려진 그림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은 마치 화성의 지형과 비슷해서 미국 항공 우주국은 화성연구를 위해
전문가들을 나스카 평원에 파견하여 연구하도록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각 국가의 모든 문화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 사랑, 평등, 자유를 무시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인신제사까지도 가치를 둔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극단적 문화 상대주의자이다.
아니, 마음에 인간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학문적 접근으로만 바라보는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다.
바벨론, 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스라엘, 남미 문명의 인신제사 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다른 문화들도 있다.
예를들어, 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따라죽게 하는 인도의 '사티'라는 관습.
아프리카의 부모의 영혼과 육체를 자신의 몸 속에 간직하겠다고 하는 의미로
부모의 시신을 먹는 식인 관습.
위와 같은 관습을 무조건 다 수용하고 존중해서는 안 된다.
그 뒤에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들이 이럴 줄 아시고
인간들에게 피라미드를 쌓지 말것을 성경에 명시해 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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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0;25
네가 내게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사40;17~18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이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첫댓글 마귀에 잡히면,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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