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황야의 이리, 달리고 또 달린다.
세상은 흰 눈으로 가득하고
자작나무에선 까마귀가 날개짓한다.
하지만 아무데도 토끼는 없구나,
아무데도 노루는 없구나 !
노루에 함빡 빠져 있기에
한 마리 찾고만 싶구나 !
이빨로 물어뜯고 손아귀에 움켜쥔다면,
더 이상 멋진 일이 있을까.
그 귀여운 것이 정말 그립구나.
부드러운 허벅지 깊이 이빨을 처박고
새빨간 피를 실컷 빨아먹고서
밤새 고독하게 울부짖고 싶구나 !
토끼라도 좋다.
밤에 그 따스한 살코기는 얼마나 달콤한 맛이던가.
아아, 삶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모두 내게서 떠나버렸단 말인가?
내 꼬리는 이미 잿빛이고
눈 또한 희미한데
벌써 몇 년 전 사랑스런 아내는 죽었다.
이제 노루를 꿈꾸며,
토끼를 꿈꾸며 달린다.
겨울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내 타는 목을 눈으로 축이며
내 불쌍한 영혼을 악마에게 팔러간다
.............
뒤로 돌아갈 길은 없다.
이리로 돌아갈 수도,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도 없다.
사물의 시원(始原)에는 순수나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된 모든 것은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것마저도
순수하지 못하고 뿔뿔이 분열되어 있으며,
생성이라는 더러운 물결에 던져져
결코 그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갈 수 없다.
창조되기 이전의 순수상태로,
신에게로 이르는 길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리나 어린아이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죄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
즉 점점 더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이다.
불쌍한 황야의 이리인 너에게는
자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인간이 된다>는 멀고도
힘겨운 고난의 길을 가야 할 것이고,
너의 이원성을 다원화하고,
너의 복잡성을 훨씬 더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언제가는 마침내 평원에 이르기 위해서
너의 세상을 좁히거나 너의 영혼을 단순화하지 말고,
더욱 많은 세계를, 결국은 이 세계 전체를
너의 고통스러운 확장된 영혼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탄생이란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신과 새로운 경계를 짓고 격리됨을 의미하고,
고통 속에서 새롭게 생성됨을 의미한다.
모든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고통스런 개성화를 지향한다는 것,
즉 신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시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을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中
첫댓글 어느 블로그에서 퍼 온 글을 담아서 다시 여기로...
잘 하셨어요. 덕분에 명상의 시간 잠시 가져 봅니다. 별님!
아, 사진도 시도 너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