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66) - 고향에서 다진 화목과 우애
내일(9월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 바야흐로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든다. 지난주에 이어 전국적으로 가을비가 내리며 기온도 크게 낮아져 제법 서늘하다.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라.
지난 주말 가문의 행사로 1박2일의 고향나들이를 가졌다. 해마다 이맘때 둘째 숙모님의 기일에 즈음하여 가족모임을 갖는데 코로나 여파로 몇 년간 중단되었다가 모처럼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숙모님은 6‧25 전쟁 때 어린 자녀를 이끌고 피란길에 오르며 숙부님과 작별, 그 후 평생을 홀로 지내며 삼남매를 어엿한 동량으로 키워낸 여걸이시다. 우리 가문에서는 숙모님의 75회 생신을 맞아 곧은 의지와 절제로 6‧25 전쟁 후 숙부님과 헤어져 50년 세월을 잘 견디시면서 현숙한 아내로서의 본분과 3남매의 장한 어머니 역할을 훌륭히 감당하신 것을 칭송하는 공로패를 드리고 그 덕목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였다. 숙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남기신 유지, 나 죽거든 슬퍼하지 말고 기일에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즐겁고 화목하게 지내라며 그에 필요한 기금을 남기셨다. 이번 행사를 마치고 가족카페에 오른 고향나들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고향마을에서 친척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가족들
화목과 우애를 다진 고향나들이
지난 주말 둘째 숙모님 19주기를 맞아 할아버지 후손과 친척 등 40여명이 한데 모여 그 공덕을 기리고 가문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모임을 성황리에 가졌다. 1박2일 일정으로 알차게 가진 숙모님의 19주기 추모행사 내용을 간추린다.
9월 16일(토)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가운데 오전 9시에 서울 압구정역에서 출발한 대절버스를 비롯하여 청주, 광주, 경인지방 등지에서 나선 참가자 40여명은 오후 2시 경 법성포의 굴비정식음식점에 집결하여 푸짐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들었다.
오후 세시 넘어 고창군 공음면 동학운동발상지 인근의 선영에 이른 가족들은 깔끔하게 벌초한 묘역을 돌아본 후 줄기차게 뿌리는 빗살을 피하여 버스 안에서 숙모님의 현숙하고 덕스러운 공덕을 기리며 가문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예배를 은혜롭게 드렸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나느니라’(잠언 31장 9절, 29절)
버스 안에서 드리는 예배 모습
오후 4시 경 선영을 출발하여 고향바닷가로 향하였다. 바닷가에 이르는 동안 종일 내리던 비가 그쳐 다행. 어릴 적 자주 찾던 추억이 서린 구시포항은 우람한 방파제와 반듯한 항만시설(국내 유일의 와인글라스 형태의 수산과 관광복합항구)로 개발하여 한적한 어촌에서 현대식 복합항만으로 탈바꿈한 현장이 경이롭다. 어릴 적 모래사장에서 조개 줍고 뛰놀던 날들이 그립구나. 아, 옛날이여!
뒤이어 들른 곳은 고향마을, 마을회관에 들러 벌초하러 내려온 일가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6시 경 고향마을을 출발하여 선운사 가는 길목의 백합죽 전문식당 행, 깔끔하게 차려 놓은 음식을 맛있게 들고 숙소에 이르니 저녁 8시가 가깝다. 여장을 풀고 환담을 나누는 사하촌의 숙박이 정겨워라.
9월 17일(일), 이른 아침 산책길에 살피는 꽃무릇(일명 상사화, 다음토요일에 이곳에서 상사화축제가 열린다는 홍보가 한창이다.) 군락이 환상적이고 백제시대의 고찰 선운사(백제 위덕왕 24년, 577년에 창건) 경내의 백일홍과 동백 숲이 아름답다.(대웅전은 전면 수리공사 중)
선운사 일원의 꽃무릇 군상이 환상적이다
오전 8시에 숙소의 식당에서 아침식사,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이 일품이다. 오전 9시부터 선운사 일원 탐방, 아침에 돌아본 나는 인근 부안면에 있는 서정주시문학관과 심원면일대의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을 살펴보기도. 중학선배이기도 한 서정주시인의 문학관을 돌아보며 ‘문학관은 작가가 쓴 역사적 자서전을 펼쳐놓은 공간, 문학관 탐방은 거대한 역사적 자서전을 체험하는 순례길’이라는 어느 시인의 담론을 새겼다.
점심메뉴는 바닷가 전문음식점의 풍천장어요리, 고향의 명품식단이 구미를 돋운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그치고 쾌적한 날씨, 모처럼 가진 1박2일의 가족나들이를 무사히 마쳐 흐뭇하다. 다음 기회에 더 알찬 프로그램으로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성대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집행부에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 추석 앞두고 찾은 고향길이 정겨워라. 모두들 즐거운 명절 맞으시라.
옛 추억이 서린 구시포항
* 고향나들이에 즈음하여 가문의 카톡방에 오른 ‘팔도 이야기 여행 시리즈⑤ 전북 고창’ 편이 마음에 든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 각기 멋진 고향을 가슴에 담자.
‘팔도 이야기 여행⑤ 전북 고창
가을이다. 초록으로 반짝이는 선운사 동백 숲에서 막 봉우리 터뜨린 꽃무릇 한 송이를 만났다. 붉디붉은 가을꽃을 들여다보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계절에 들어서고 있음을 새삼 알았다. 고창에 내려가 긴 길을 걸었다. 길모퉁이마다 밴 이야기가 절절했다.
1. 세계유산이 된 갯벌
고창은 서해와 맞닿은 고장이다. 서해안 종주 트레일 서해랑길이 지난다. 전남 해남에서 시작한 서해랑길이 인천 강화도까지 장장 1800㎞가 이어지는데, 전체 109개 코스 중에서 3개 코스(41∼43코스)가 고창을 거친다. 서해랑길이 지나는 고창 갯벌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자연유산이다. 고창 갯벌은 이야기의 보고다. 구시포 해변은 예부터 해수찜으로 유명했다. 고창의 아낙들은 해마다 단오가 돌아오면 해 질 녘 백사장으로 갔다. 한 길 구덩이를 파고 모래 안에 들어가 누웠다가 달 뜰 무렵에 나오면 온종일 쑤셨던 삭신이 개운해졌단다. 고창 바다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다른 바다보다 더 짜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삼양염전이 굳이 고창 해변에 들어섰던 까닭이다.
2. 천년 고찰 선운사
선운산(334.7m)은 낮은 산이지만, 이름난 산이다. 선운산이 품은 선운사 덕분이다. 봄에는 동백꽃으로, 가을에는 꽃무릇과 단풍으로 선운사는 붉은 물이 든다. 선운사는 천년 고찰이다. 백제 시대에 창건한 사찰인데, 신라 진흥왕이 시주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 전설의 흔적이 진흥굴에 어려 있다. 선운사와 도솔암을 잇는 숲길에 있다. 선운사와 도솔암을 잇는 숲길에서 막 피어난 꽃무릇 한 송이를 발견했다. 아직 철이 이른데, 용케도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선운사 경내가 꽃무릇으로 붉게 물드는 시기는 9월 하순이다. 꽃무릇이 지고 나면 선운사 주변은 다시 단풍으로 붉어진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3. 서정주 생가와 시문학관
선운사에서 나와 질마재를 넘었다. 질마재는 소요산(445m) 자락에 걸친 고개 이름이다. 이 마을에서 미당 서정주가 태어났다. 옛날 미당이 살았던 생가가 말끔하게 복원돼 있다. 이어서 미당시문학관에 들어섰다. 시성(詩聖)으로까지 추앙받던 시인이 친일파로 낙인찍힌 뒤 미당시문학관을 찾는 발길이 크게 줄었다. 전망대 옥상에 올라 건너편 안현 마을을 내다봤다. 안현 마을 뒷산에 미당이 누워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날이어서 미당이 누운 산 너머로 줄포 갯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노래처럼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내려왔다.(2023. 9. 15 중앙일보, 김경준 기자의 ‘팔도이야기 여행⑤ 전북 고창’에서)
서정주시문학관 옥상에서 바라본 풍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