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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헛스윙으로 끝난 「바이든 독트린」의 결말이 「앞으로의 세계에 미칠 영향」 / 1/21(화) / 현대 비즈니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4년 임기가 끝났다. 이미 취임 전부터 트럼프 씨의 발언과 동향에 큰 이목이 쏠려 있었다. 새 정권에 이목이 집중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이해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바이든 행정부가 무엇이었는지를 총괄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거기서 떠올려 두고 싶은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려고 한 「민주주의 vs 권위주의」의 대립이라고 하는 세계관이다. 이 바이든 독트린의 세계관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거의 헛스윙에 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바이든 독트린의 결말은 앞으로 세계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 불발된 바이든 독트린
4년여 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 나는 몇 차례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세계관에 대해 썼다.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정권의 귀중한 노선을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세계관이었다.
바이든 씨는 2020년 대통령 선거전 중부터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국가들의 도전에 노출돼 있다는 인식을 선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한 날에는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 중의 지도국으로 재건하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 서밋'이라는 것을 개최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주의 서밋은 공약대로 개최됐다. 그러나 불과 2회의 개최 실적에 그쳤고, 게다가 모두 온라인에서의 형식적인 방식으로의 개최가 되었다. 성과는 부족하고, 토의 내용이 화제가 되는 일도 없었다. 2021년 12월에 제1차 서밋이 개시되었을 때, 미국이 초대장을 보낸 110개국 중에 어느어느 나라는 들어가지 않았다, 라는 것이 화제가 된 정도의 주목도였다. 중화민국(대만)을 초청하여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초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NATO 동맹국인 튀르키에나 헝가리를 초청하지 않은 것이, 파문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민주주의 서밋은 미국의 자의적인 선호로 민주주의 국가의 인정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는 그저 불필요하게 세계의 분단을 추진하는 행위로 간주됐다. 국가들의 관심을 끌지도, 미국의 지도적 입지 강화로 이어지지도 못하면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신통치 않은 바이든 행정부의 실적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냉전시대에는 유명한 트루먼 독트린이 존재했다. 냉전 발발 때인 1947년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세계 정복에 저항하고 있는 자유로운 민족을 지원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이 정책이 독트린으로 불린 것은 세계를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눠 생각하고 전자가 후자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단순한 이항 대립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 미국에는 먼로 독트린으로 불린 외교사상이 뿌리 깊었다. 일반적으로 트루먼 독트린은 이전까지의 먼로 독트린의 고립주의 전통에 종지부를 찍은 설명이다. 다만, 「트루만주의는 먼로주의의 논리적 연장이며, 지역적 한정을 제거한, 세계대의 먼로주의」(사이토마코토 「미국 외교의 논리와 현실」[1962년])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더러워진 구세계의 유럽대국정치를 거부하고 신의 은총을 받은 신세계의 공화주의 국가들을 방어하려는 먼로 독트린 정책은 매우 미국적인 선과 악의 이항대립의 세계관에 입각한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세계관도 이들 미국의 외교사상 전통에 따라 선과 악의 이항 대립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다만 세계 모든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 중 하나로 나눠가려는 시도는 너무 대담했다. 초강대국 미국이라고 해서 그렇게 큰 실력과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 독트린은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헛스윙에 그쳤고 이제 조용히 퇴장하려 하고 있다.
◇ 계속 패배한 '바이든 독트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1년차인 2021년 여름 아프가니스탄 전면 철수 실패로 크게 차질을 빚었다. 20년에 걸친 대대적인 군사 개입과 거액의 재정 지원을 통해 미국이 지탱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미국의 전면 철수가 완료되기도 전에 쉽게 무너졌다. 대신 정권을 수립한 것은 그 20년 전에 미국이 구축했을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을 표방하는 탈레반 세력이었다.
이 민주주의의 퇴조와 미국의 나약함의 이미지는 그 후 줄곧 바이든 대통령에게 달라붙었다. 2024년 대선전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굴욕적인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준 요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제1회 「민주주의 서밋」의 두 달 후,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이 위기에 직면해 바이든 대통령은 대규모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내세웠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동맹국들에게 같은 정책을 쓰라고 압박했다.
이 미국의 태도 배경에 러시아를 권위주의 국가의 대표,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로 보는 바이든 독트린의 세계관이 들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이든 독트린의 관점에서 본 뒤 민주주의 진영의 방어를 과연 약한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떨쳐버릴 호기로 삼으려 한 것도 분명했다.
처음에는 국제여론의 대세는 러시아에 적대적이고 우크라이나에 동정적이었다. 다만 실제로는 미국과 협조하여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실시한 것은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군사동맹 국가들뿐이었다. 점차, 「바이든 독트린」을 적용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이해는, 미국의 독선적인 세계관에 근거한 러시아의 봉쇄와, 그것에 반발하는 러시아의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가, 그 밖의 나라 사이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대선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조기 정전 노력을 호소하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그 트럼프씨가 대통령 선거에 승리해, 「바이든·독트린」이, 미국내에서조차 지지를 굳히지 못했음을 나타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바이든 독트린'의 적용도 역효과를 낸 것이다.
◇ 포스트 '바이든 독트린'의 세계로
바이든 독트린은 국내에서는 경쟁자로 보는 트럼프를 권위주의자로, 국외에서는 또 다른 초강대국인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로 간주해 성립된 도식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 적대자와 자신의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미국 유권자와 세계 각국에 제시했다. 게다가 자신을 선택하도록 호소했다.
그러나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물론 후보자로서 잔존하지도 못한 채 트럼프의 승리를 불러왔다. 그런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를 내걸고 실리를 추구하는 데 전념할 태세다. 트럼프 당선인에게서 민주주의 vs 권위주의 같은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찾을 수 없다.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 내 '바이든 독트린'의 패배였다.
국제정세에 눈을 돌려도 바이든 독트린의 성과는 부족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목표로 했던 중국과의 초강대국 경쟁에 전념하는 정책 전환조차 이루지 못했다. 유럽에서 냉전시대의 낡은 구도 그대로 러시아와의 전쟁에 우크라이나를 통해 깊이 관여했고, 그 결과 국력을 피폐하게 하고 미국 국민을 고물가로 괴롭히며 정권교체를 바라게 됐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에 끌려가다 말았을 대테러전쟁의 늪에 깊이 빠져들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학 등에서의 격렬한 반제노사이드 항의 운동등의 반발을 일으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의 대부분을 투표소에서 떠나게 해, 트럼프 씨의 당선을 도왔다.
바야흐로 바이든 독트린은 완전히 용해되어 사람들의 망각 저편으로 내몰린 느낌마저 든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주창된 냉전 종식 이후의 세계에 커다란 전기가 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트루먼 독트린의 냉전시대부터 이어진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진영의 우위인 국제사회에도 한 시대의 고비가 오고 있다.
트럼프 씨에게는 보다 고전적인 해석에 기초한 19세기 먼로 독트린으로의 회귀 경향이 보인다. 외부세계에 대한 개입 정도를 줄이면서 자국의 세력권은 지켜내려는 자세다. 먼로 독트린은 원래 신의 은총으로 삼고 싶어했던 미국의 초연주의적 지위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만약 트럼프가 고전적인 먼로 독트린의 자세에 가까운 정책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바이든 독트린의 용해뿐만 아니라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글로벌리즘 운동 자체의 용해를 이끌어낼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도하는 「BRICS」의 비구미 제국이 표방하는, 「다극적」국제사회가 성립하는 견지도가, 트럼프씨의 태도에 의해서, 신뢰성을 더해 간다.
트럼프 2차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구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확정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바이든 독트린 종료의 여파가 어디까지, 어떻게 미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어쨌든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바이든 독트린의 용해를 확정짓는 의미는 가져갈 것이다.
시노다 히데아키(도쿄외국어대 교수·국제관계론, 평화구축)
https://news.yahoo.co.jp/articles/398ecd2e5fd178bbeefd1bd03fa975853056bc66?page=1
ほぼ空振りに終わった「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結末が「今後の世界にもたらす影響」
1/21(火) 7:04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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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ビジネ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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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ランプ大統領が就任し、バイデン大統領の4年の任期が終わった。すでに就任前からトランプ氏の発言や動向に大きな注目が集まっていた。新政権に注目が集まる。
【マンガ】バイデンよ、ただで済むと思うな…プーチン「最後の逆襲」が始まった
だがトランプ政権がどのような変化をもたらすのかを理解していくためにも、バイデン政権が何だったのか、を総括しておくことも必要だ。
そこで思い出しておきたいのは、バイデン大統領が推進しようとした「民主主義vs権威主義」の対立という世界観である。この「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世界観は、いったい何だったのか。ほぼ空振りに終わったと言わざるを得ない「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結末は、今後の世界に何を示唆するのか。
不発に終わった「バイデン・ドクトリ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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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年ほど前、バイデン政権発足当初、私は何度か、バイデン大統領が推進する「民主主義vs.権威主義」の世界観について書いた。それはバイデン大統領が、自らの政権の貴重路線を説明するために打ち出した世界観であった。
バイデン氏は、2020年の大統領選挙戦中から、民主主義諸国が、権威主義諸国の挑戦にさらされている、という認識を披露していた。そして自分が大統領に就任した暁には、アメリカを民主主義諸国の中の指導国として立て直し、より具体的には「民主主義サミット」なるものを開催する、と公約していた。
「民主主義サミット」は、公約通り、開催された。しかしわずか2回の開催実績にとどまり、しかもいずれもオンラインでの形式的なやり方での開催となった。成果は乏しく、討議内容が話題になることもなかった。2021年12月に第1回サミットが開始された際、アメリカが招待状を送った110か国の中に、どこそこの国は入らなかった、といったことが話題になった程度の注目度であった。中華民国(台湾)を招待して中華人民共和国(中国)を招待しなかっただけでなく、NATO同盟国であるトルコやハンガリーを招待しなかったことが、波紋を呼んだだけであった。
「民主主義サミット」は、アメリカの恣意的な選好で「民主主義国」の認定を行ってみせて、結果的には、ただ不要に世界の分断を進めるだけの行為だとみなされた。諸国の関心を集めることも、アメリカの指導的な立場の強化につなげることもできず、「民主主義サミット」は、ぱっとしないバイデン政権の実績を象徴する出来事となった。
冷戦時代には、有名な「トルーマン・ドクトリン」が存在した。冷戦勃発時の1947年に、当時のハリー・トルーマン大統領は、世界の「征服に抵抗している、自由な民族」を支援する決意を表明した。この政策が「ドクトリン」と呼ばれたのは、世界を自由主義陣営と共産主義陣営に分けて考え、前者が後者の脅威にさらされている、という単純な二項対立の世界観を基盤にしていたからだ。
それ以前のアメリカには、「モンロー・ドクトリン」と呼ばれた外交思想が根強かった。一般には、「トルーマン・ドクトリン」は、それまでの「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孤立主義」の伝統に終止符を打った、説明される。ただし、「トルーマン主義はモンロー主義の論理的延長であり、地域的限定をとりはらった、世界大のモンロー主義」(斎藤眞『アメリカ外交の論理と現実』[1962年])としての性格も持っていた。汚れた「旧世界」の欧州の大国政治を拒絶し、神の恩寵を受けた「新世界」の共和主義諸国の防衛を図る「モンロー・ドクトリン」政策は、非常にアメリカ的な「善と悪の二項対立」の世界観に即したものであった。
バイデン大統領の世界観も、これらのアメリカの外交思想の伝統にのっとって、「善と悪の二項対立」を再現するものであった。ただし、世界の全ての諸国を「民主主義国」と「権威主義国」のどちらかに振り分けていってしまおうとする試みは、あまりに大胆すぎた。超大国アメリカといえども、そこまでの大きな実力と権限を持っているわけではなかった。結果として、「バイデン・ドクトリン」は成果を出せないまま、空振りに終わり、今、静かに退場しようとしている。
敗北し続けた「バイデン・ドクトリン」
バイデン大統領の外交政策は、一年目の2021年の夏のアフガニスタンからの全面撤退の失敗によって、大きくつまずいた。20年にわたる大々的な軍事介入と巨額の財政支援を通じてアメリカが支えていた(民主主義国であるはずの)「アフガニスタン・イスラム共和国」は、アメリカの全面撤退が完了する前に、いともたやすく崩壊した。代わって政権を樹立したのは、その20年前にアメリカが駆逐したはずのイスラム原理主義の思想を標榜するタリバン勢力であった。
この「民主主義の退潮」とアメリカの弱さのイメージは、その後ずっとバイデン大統領にまとわりつき続けた。2024年の大統領選挙戦において、トランプ氏は、「自分が大統領であったら、あのような屈辱的なアフガニスタンからの撤退は起こらなかった」と繰り返し強調したことは、選挙結果に影響を与えた要素の一つであったはずである。
第1回「民主主義サミット」の二カ月後、2022年2月に、ロシアがウクライナに全面侵攻を開始した。この危機に直面して、バイデン大統領は、大規模なロシアへの制裁とウクライナへの軍事支援を打ち出した。そして民主主義を標榜する同盟諸国に、同じ政策をとるように働きかけた。
このアメリカの態度の背景に、ロシアを権威主義国の代表、そしてウクライナを民主主義国の代表として捉える「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世界観のあてはめがあったことは、否定できない。バイデン大統領が、ロシア・ウクライナ戦争を「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観点からとらえたうえで、民主主義陣営の防衛を果たして、弱い大統領という自らのイメージを払しょくする好機としようとしたことも、明らかであった。
当初は、国際世論の大勢は、ロシアに敵対的で、ウクライナに同情的だった。ただし実際には、アメリカと協調して、対ロシア制裁に参加し、ウクライナ支援を実施したのは、欧州とアジアのアメリカの軍事同盟諸国だけであった。次第に、「バイデン・ドクトリン」を適用するロシア・ウクライナ戦争の理解は、アメリカの独善的な世界観にもとづくロシアの封じ込めと、それに反発するロシアの権力闘争にすぎない、という見方が、その他の諸国の間に広がっていくことになった。
アメリカ国内においてすら、大統領選を通じて、トランプ氏が、「自分が大統領であったら、ロシアのウクライナへの全面侵攻は起こらなかった」と繰り返し強調し、早期停戦に向けた努力を訴えることになった。結果としては、そのトランプ氏が大統領選挙に勝利し、「バイデン・ドクトリン」が、アメリカ国内ですら支持を固められていなかったことを示した。ロシア・ウクライナ戦争への「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適用も、裏目に出たのであった。
ポスト「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世界へ
「バイデン・ドクトリン」は、国内ではライバル視するトランプ氏を権威主義者と見立て、国外ではもう一つの超大国である中国の権威主義体制と見立てて、成立した図式だった。バイデン大統領は、これらの敵対者と自分との二者択一的な選択肢を、アメリカの有権者や世界の諸国に提示した。そのうえで自分を選ぶように訴えた。
しかし実際には、バイデン大統領は、選挙に勝つことはもちろん、候補者として残存することすらできないまま、トランプ氏の勝利を招き寄せた。そのトランプ氏は、「アメリカを再び偉大に(MAGA)」のスローガンを掲げ、実利を追い求めることに専心する構えだ。トランプ氏に、「民主主義vs権威主義」のような物語への関心を見出すことはできない。大統領選挙におけるトランプ氏の勝利は、アメリカ国内における「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敗北であった。
国際情勢に目を向けても、「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成果は乏しい。バイデン政権は、目指していた中国との超大国間競争に専心する政策転換すら、果たせなかった。欧州で、冷戦時代の古い構図のままロシアとの戦争にウクライナを通じて深く関わり、その結果として、国力を疲弊させ、アメリカ国民を物価高で苦しめて政権交代を望ませることになった。中東では、イスラエルに引きずられて、終わりにしたはずの対テロ戦争の泥沼に深く陥っていくことになった。結果として、大学等での激しい反ジェノサイド抗議運動などの反発を引き起こし、伝統的な民主党支持者の多くを投票所から離れさせ、トランプ氏の当選を助けた。
今や「バイデン・ドクトリン」は完全に溶解し、人々の忘却の彼方に追いやられた感すらある。これは「自由民主主義の勝利」が謳われた冷戦終焉後の世界に、大きな転機が訪れていることを示唆しているかもしれない。「トルーマン・ドクトリン」の冷戦時代から続くアメリカが主導する「民主主義陣営」の優位の国際社会にも、一つの時代の節目が訪れている。
トランプ氏には、より古典的な解釈にもとづく19世紀「モンロー・ドクトリン」への回帰の傾向がみられる。外部世界への介入の度合いを減らしつつ、自国の勢力圏は守り抜こうとする姿勢である。「モンロー・ドクトリン」は、もともとは神の恩寵にしたがったアメリカの超然主義的な地位を保持するイデオロギーとして機能していた。
もしトランプ氏が、古典的な「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姿勢に近い政策を追求するならば、それは「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溶解だけでなく、世界の自由民主主義陣営や「グローバリズム」の運動そのものの溶解を導き出すだろう。中国やロシアが主導する「BRICS」の非欧米諸国が標榜する、「多極的」国際社会が成立する見取り図が、トランプ氏の態度によって、信ぴょう性を増していく。
トランプ第二次政権がどのような政策を追求していくかについては、まだ不確定的な要素が多々残っている。「バイデン・ドクトリン」終了の余波が、どこまで、どのように及んでいくのかは、まだ不透明だ。しかしいずれにせよ、トランプ政権の登場は、「バイデン・ドクトリン」の溶解を、確定させる意味は持っていくだろう。
篠田 英朗(東京外国語大学教授・国際関係論、平和構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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