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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담은 소라껍데기
- 박선영
“연희 엄마 청각장애인이야.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하던데. 아빠도 청각장애인이고. 아빠는 사고로 중학교 때부터 듣지 못했다고 했어. 서영아, 연희 불쌍하지?”
교실로 들어서려는데, 주연이 목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다.
“정말? 연희가 말 안 하던데. 주연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우리 엄마가 연희 엄마와 초등학교 동창이거든. 니네 단짝이라며. 연희가 얘기 안 해 줬어?”
서영이가 뭐라고 대꾸하는지 들어보려고 하는데, 언제 왔는지 창민이가 내 가방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거기서 뭐 하냐?”
“깜짝이야, 뭐하긴. 지금 들어가려고.”
창민이와 같이 교실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하던 말을 멈추고 후다닥 자기 자리로 갔다.
‘서영이에게 기회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먼저 알아버렸네. 서운하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서영이도 불쌍하다고 할까 봐 망설인 건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뛰쳐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장이었다. 주위는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한데, 귀가 먹먹해서 무슨 소린 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저쪽에 행색이 특이한 할머니가 좌판을 차려놓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머리는 쪽지고 흰 한복을 입은 것이 옛날 이야기책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뭘 그리 뚫어지게 보노? 이리 바짝 와 봐라.”
나는 홀리듯이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할머니가 펴 놓은 돗자리 위에는 동그란 분홍구슬 머리 끈, 파랑 보석 반지, 인디언 팔찌 등이 놓여 있었다. 돗자리 귀퉁이에는 손바닥만 한 소라껍데기도 보였다. 하얀 바탕에 분홍, 살구, 은빛 줄무늬가 있는 소라껍데기였다.
“이건 얼마예요?”
집게손가락으로 소라껍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넌 이게 보이니?”
“네?”
할머니는 내 눈을 빤히 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번에는 네 차례인 것 같구나!”
“제 차례요?”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계속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할머니는 손짓으로 가까이 오게 한 후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이 소라껍데기는 소원을 들어준단다. 소원은 바꿀 수 없으니 신중하게 말해야 해. 기회는 한 번뿐이다!”
할머니 입김에 귀가 간지러웠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말을 못 믿겠니?”
순간 할머니 표정이 진지해서 당혹스러웠다.
‘진짜일까?’
소라껍데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할머니가 손짓으로 가지라고 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소라껍데기를 가방 안에 넣었다. 벌떡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소원을 들어주는 소라껍데기라…….”
가방을 열어 소라껍데기를 꺼냈다. 반짝이는 것이 예뻤다. 귀에 대 보았다.
“철썩, 처얼썩.”
파도 소리가 들렸다. 작년 겨울 동해바다에서 들었던 소리와 같았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철썩, 처얼썩’이라고 했고, 부모님도 내 입모양을 따라 말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믿져야 본전이지. 소원을 빌어볼까?’
“제 소원은…….”
불쑥, 주연이가 ‘연희, 불쌍하지’라고 말하던 소리와 서영이를 피해 도망치듯 뛰어나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곧바로 나를 보며 안쓰럽다며 수군대는 사람들의 모습과 소리가 단단하게 뭉쳐서 가슴속을 아프게 찔러댔다.
“그만! 듣고 싶지 않아. 차라리 안 들렸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가족 중 나만 다르다는 것이 싫었다. 나는 부모님처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내게도 안 들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사람들이 나를 측은하게 보며 하는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집에서도 나만 달라서 장애인이 된 기분이었다.
‘거짓말쟁이 할머니 때문에 괜히 기분만 이상해졌어.’
가슴이 알싸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펼쳤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장만 넘기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두드려서 깜짝 놀랐다. 돌아보니 엄마였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뭐지? 정말 안 들리게 된 거야?’
-엄마, 언제 왔어?
내 수어를 보고,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엄마 들어오는 소리 못 들었어?
-응. 나도 믿기 어려운데. 아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소라껍데기를 들어 보이며 자초지종을 입 모양과 수어로 말했다. 당황하니 설명이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떨었다.
일단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침대에 누웠다. 엄마는 그런 나를 쳐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 할머니가 정말 요술쟁이였던 거야? 그래. 이제 우리 가족들과 같아졌으니, 서로 통하고 좋잖아. 그런데 마음이 왜 이러지?’
잠시 뒤,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히이야, 그겡 정마이야? 너 안 등리는 거닝?”
귀가 안 들리는 아빠는 어눌한 발음으로 소리 지르고 있을 것이다.
뒤따라 들어온 엄마 눈이 빨갰다.
“연히이야, 벼원에 가자아.”
아빠가 연희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이제 어떻게 하죠?’
부모님 모습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먼저 부모님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 수어로 말했다.
-일시적으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오늘 밤은 있어 보고, 내일 병원에 가요.
엄마, 아빠는 안절부절못하다가 나갔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무서웠다. 밤새 뜬 눈으로 뒤척였다.
해가 뜨자마자 가방에 소라껍데기를 넣고 살그미 집을 나섰다.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할머니 좌판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시장 입구부터 천천히 살펴보았다. 점점 햇볕이 뜨거워지고,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부모님의 놀라고 걱정하던 눈빛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람들과 자꾸 부딪혔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지나가서 놀라기도 했다. 귀만 안 들릴 뿐인데, 세상이 뒤죽박죽된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시장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할머니는 없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장애 체험을 한다며 소리를 줄여 볼 때와 실제 귀가 안 들리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제 예전처럼 할 수 없을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생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할 수 있겠지만, 우리 가족의 귀가 되어서 도와줄 수는 없을 것이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집 앞이었다. 온종일 걸어서 발이 천근만근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들리는 것처럼 행동했다. 엄마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다행이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일찍 일어나서 졸린다고 말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피곤했지만 잠 대신 생각들이 몰려왔다.
엄마, 아빠가 필요할 때 귀와 입이 되어 도와줬던 일,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나의 꿈, 우리 연희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내 손을 꼭 잡던 할머니와 친척들. 어제 집에 같이 가자며 쫓아오던 내 친구 서영이까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었어. 왜 그걸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정말 필요한 사람인데……정말로 나를 불쌍하게 만든 건 나였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일찍 시장에 갔다. 할머니를 찾아서 가던 길을 가고 또 가봤다. 포기하려는데, 저만치 좌판을 펼쳐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 맞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할머니,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제발요. 이건 돌려드릴게요.”
나는 소라껍데기를 가방에서 꺼냈다.
“살이 쏙 빠졌네.”
할머니가 측은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래, 소라껍데기가 네 소원을 들어주었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찾아왔어?”
간절한 마음으로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손으로는 부지런히 수어를 했다. 할머니가 수어를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기회라 헛되게 날려버렸군. 알았다.”
‘알았다’는 입모양을 보고는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내 손에서 소라껍데기를 집어 내 귀에 댔다.
“안 들리냐?”
할머니의 입 모양이 그랬다.
“이상하네? 귀에 대도 안 들린다고?”
할머니가 소라껍데기를 이리저리 살피며 고개를 꺄웃했다.
가슴에서 떨림이 목으로 올라오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영영 듣지 못하는구나! 남을 신경 쓰느라 정말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이라는 것을 몰랐어.’
눈물이 흘러넘쳐 입과 귀까지 흘러 들어갔다.
“어엉엉엉.”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내 몸 깊은 곳에서 들리는 것 같더니 점점 머리까지 올라왔다.
할머니가 보고 있다가 소라껍데기를 내 귀에 대 주었다.
“처얼썩, 철썩.”
파도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 내가 했던 말들이 소라껍데기 안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소라껍데기가 담아 두었던 소리를 토해내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연희야, 거기서 뭐해? 학교 가자!”
서영이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앞에 있던 할머니와 좌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서영이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말했다.
“서영아,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야.”
“뜬금없이? 그래, 넌 꼭 필요해. 내 친구잖아. 너 주말 동안 어디 갔다 왔어? 연락해도 전화도 받지 않고.”
서영이의 목소리와 표정, 말이 정겹게 나를 감싸 안았다.
“서영아, 너는 나 안 불쌍해?”
“얘가 뭐래. 네가 왜 불쌍한데? 주말에 집콕하고 있었던 내가 불쌍하지.”
‘서영아, 미리 말 못 해서 미안!’
가슴 안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 같이 마음이 시원했다.
“서영아, 우리 뛰어갈까?”
“오케이! 자, 출발!”
우리는 손을 잡고 힘차게 뛰었다. 아침햇살이 다가와 내 빈손을 꼭 잡았다.
- 제 14호 <<생명과 문학>> 2024. 가을호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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