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농산물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수 없이 많은 농민들의 노동을 보아왔다.
옆에서 보기도 하고 직접 도와주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들의 최종 생산물을 수집하고 포장하고 또는 1 차 가공해서 세상에 내놓는 일이기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그들의 노동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나는 그들의 노동을 착취한 꼴이었다. 1 년 내내 고생하여 생산한 농산물을 그들의 1 년 인건비 이상의 이윤을 붙혀서 팔았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사기를 친 거나 다름 아니었다. 마치 내가 고생해서 농사를 지은 사람 처럼, 그들의 전화 응대에 거짓말을 하면서..그것이 자본주의 마케팅 전략인양 눈가리고 아웅하며....게다가 더욱 엄청난 거짓말은, 웹메니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웹페이지 한장에 그들의 1 년 노동 이상의 효율(생산성)을 일으키고, 또 그것을 기획하고 광고 홍보 하고......
내가 생각해도 이건 사기 치고 착취하고....그런데도 농민들은 자신들의 물건 팔아 준다고 고마워하고....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농산물 먹게 해 준다고 게시판에 감사 인사 올리고....
흣, 이거야 말로 코메디였다.
뭐...자본주의 라는 게 원래 사기치는 일이라지만, 나도 이런 난장판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만....한창 일에 빠져 있을 때는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안중에도 없이 돈 버는데만 혈안이 된다.
그러다, 지금처럼 한가해지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내가 무슨 일은 한 거지? 마치 내가 아닌, 남의 일 처럼 내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그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나보다 더한 사기꾼 같은 농민에게 배추를 잘못 사서 개피를 보고, 집안 살림 거덜 내놓고 이곳 정동진 금진항으로 도망치듯 숨어 들었다. 여름에 옥수수라도 팔려고 했으나, 작년에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도무지 일 할 기운이 나지 않아서 여름내내 놀아 버렸다. 다행히 아내가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관계로 굶어 죽진 않았는데.....
그러던 차에, 10 월 말 경 작년 절임배추를 시켜 먹었던 서울 식당 주인에게 전화가 와서 몇 백포기 주문이 들어왔고, 게다가 고모네 횟집에서 깨끗한 바닷물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웹을 손질하고 광고를 터뜨리고 난장판에 끼여들게 되었다.
약을 별로 치지 않은 배추 밭 하나를 외상으로 사긴 샀는데....
아버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말만 덜컥 믿고 포기수도 헤아리지 않고 산 것이 불찰이었다. 벌써 그곳에서 2 천 포기를 손해 보아야 했다. 벌써 농민들도 사기꾼 대열에 덤벼든 것이었다. 모자란 배추를 농협에서 배달 시켰는데, 이것 역시 개판이었다. 농협이란 곳은 농민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배추값이 형편없다는 것을 빌미로 헐 값에 배추 값을 선불 주고 사서, 제대로 된 이윤을 붙히고 팔아 먹는, 나보다 더한 개같은 놈들이 농협인 것이다.
그 중 두번째 600 포기가 말썽이었다. 첫번째 배추가 좋아서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반품이 들어오고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농협에 전화해서 환불을 요구했으나 담당자는 횡설수설.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벌써 발효되기 시작하는 반품된 절임배추를 들고 농협 하나로 마트 매장에 들이 닥쳐 절임배추 한 상자를 바닥에 전부 내동댕이 처 버렸다.김치 냄새가 매장 전체에 퍼졌다. 쇼핑하던 아줌마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효과는 대단했다. 조합장이 달려 와 용서를 빌고, 나는 의기양양 환불을 받고, 내년 부터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고 나왔다.
이번에 나는 된통 걸려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은 상품이 준비되고 나서도 몇가지 일이 더 있다. 전화를 받고 웹을 만지고 광고를 하고 마지막에는 포장을 해서 택배를 보낸다. 작년에는 후배가 웹마스타 역할을 해주고 포장도 도와 주었는데, 이곳으로 이사 오는 바람에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 웹마스타는 고사하고 배추를 뽑아 올 사람, 포장을 할 사람. 심지어 배추를 절이고 바닷물에 씻을 사람 조차 없었다. 이미 주문은 전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고모를 졸라서 겨우 칠순이 넘은 할머니 두분을 모셨다. 겨울이 되면 어촌에는 도루묵 작업으로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두분은 나이가 드셔서 추운 밖의 일을 하시기 힘든 처지여서 다행히 나를 도와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연세가 드셔서 그들의 일에 대해 내가 일일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야 말로 절임배추가 밭에서 뽑아져서 절이고 포장되고 웹을 통해 팔려 나가는 전 단계에 걸처 일하게 된 것이다.
땅(자연)과 농민의 물질대사, 즉 유용 노동으로 탄생한 농산물이 상품으로 팔려나가는 모든 단계에 내가 일일이 간섭을 하게 된 것이다. 농민과 농협 역시 상품으로서 배추를 나에게 팔아 먹었지만, 나는 그들의 이윤에 1 차 가공하여 더욱 폭발적인 이윤을 붙혀 착취를 하였다. 그 착취한 노동 중에 나의 어설픈 노동도 포함이 되었고, 나는 비로서 맑스의 응고된 사회적인 노동 일반을 이해하게 되었다.
워낙 나이가 드신 할머니들인지라, 다음 날 몇 포기 필요합니다 라고 부탁을 해 놓아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주문이 펑크가 나기 다반사였다. 생산과 상품에 대한 모든 비난과 하자가 나에게 쏟아졌다. 더구나, 절이는 염도에 대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요즘 가정에서는 염분 섭취를 줄이는 경향이 강해 싱겁게 먹는 추세인데, 어촌에서 태어나 지금껏 사신 할머니들에게는 그런 점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부탁을 해도 고집 불통 할머니들의 아집은 도저히 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될데로 되라. 올해 경제도 안좋은데 김장이라도 짜게 먹어야 반찬값이라도 아낄게 아니겠는가 라고 항의 전화에, 말도 안되는 응답을 해주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할머니의 그런 노동과 말도 안되는 나의 뒤죽박죽 노동이 어우러져 나의 절임배추 상품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 상품은 당당하게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 촌에 입성을 한 것이다. 거기에 붙어 있는 이윤은 처음에 내가 만지고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 광고비로 빼앗기고 그리고 우리나라 포탈사이트에 광고 솔류션을 제공한 미국 회사에 나누어 지고, 배달사고 몇 번 일으켜서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은 택배회사에도 주고 외상한 평창의 박스 공장과 농산물 도매 시장의 김장비닐 공장. 마지막에는 노구를 이끌고 나를 도와 준, 자식들도 어려워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써야 할 우리 금진항의 할머니들의 인건비로 나가고, 그 나머지가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프리카 어느 초원에서 얼룩말 한 마리가 죽었는데, 그 시체를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뜯어 먹고 그 다음 포식자가 또 나머지를, 그리고 또 나머지를 어떤 유기체가 청소하고..이런 자연의 법칙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는 정글의 법칙이다 라는 내 지론이 여지 없이 들어 맞았다고 쾌재를 부른다.
하여간, 내 상품 절임배추는, 비록 금진항 할머니들이 추운 겨울 날 두 손을 호호 불면서,집에 있는 손자 밥 차릴 걱정하시면,나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 하시면서,당신들이 하실 수 있는 최대한의 노동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모른 척하고 소비자에게 전달이 될 뿐이었다.
그것이 상품이고 그것이 그 상품에 포함된 응고된 노동 일반인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정글의 얼룩말 시체처럼 상품에 포함된 이윤은 갈가리 찟겨지는 것이다. 그 얼룩말이 남겨 놓은 새끼 얼룩말의 슬픔에는 포식자들은 아무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래야 상품이고 그래야 정글의 법칙인 것이다.
그 이윤의 포식자에는 웹페이지 한 줄에 농민들 1 년 노동보다 더한 생산성을 올리는 포탈사이트와 그 포탈사이트에 솔류션 하나 제공한 댓가로 엄청나게 이윤을 나누어 먹는 미국의 모회사와 나에게 사기 친 아버지 초등학교 동창생 할아버지 농민과 농민들 등처 먹은 농협과 불쌍한 금진항 우리 할머니와 작년에 진 빛을 갚아야 하는 내가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일 많이 하고 누가 고생하고 누가 약삭 빠른지 누가 머리가 좋은지 누가 멍청한지 그런 것도 필요 없다.
그저 묵묵히 사바나의 얼룩말 시체를 먹어치우는 포식자들 처럼 묵묵히 차갑게 나누어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이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성이고 노동 일반인 것이다.
그 상품 어느 곳에도 금진항 할머니들의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여느 노동과 똑 같은 응고된 노동 일반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할머니들이 얼마나 나이가 먹었는지 할머니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추워했는지 할머니들이 노동을 하면서 집 나간 자식들과 자신들에게 남겨진 손자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그녀들의 쥐꼬리만한 임금이 당신들의 겨울을 날 돈인지, 조금도 관심도 없는 것이 내가 올해 생산한 절임배추 상품인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이곳 금진항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인 웹을 이용해 사기를 쳐서 먹고 살 것이다. 강릉 시내에서 이곳으로 도망쳐 와도 정글의 사바나에서는 벗어 날 수는 도저히 없다.
절임배추가 끝나면 할머니들을 모시고 옥계 읍내로 나가 새로 생긴 고깃집에서 고기나 많이 사드려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