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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권위와 탐욕을 버린 하나님의 자녀들 원문보기 글쓴이: Daniel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종교>
동남아시아의 역사 기록 보존은 상당히 짧고 사료가 충분치 않다.
그 원인은 적도 부근의 동남아시아의 고온다습한 기온으로 인해,
가죽에 기록한 사료나 나뭇잎과 식물로 만든 종이에 기록한 사료들도 오래 보존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인들은 돌 비문에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기록 연대가 약 1500년 전 것들로 문명의 역사가 그리 길지가 않고
역사의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와 가까운 중국의 지리서나 역사서의 사료에 기록된
동남아시아의 기록들을 유용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시아는 거의 인도의 문명을 수용하여 불교와 힌두교가
동남아시아의 전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선이 가깝기 때문에 중국의 침략으로 중국의 유교가 뿌리를 내렸고
한자를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도 비슷한 문화가 발전해 있다.
인류의 4대 문명지인 메소포타미아의 유브라데스와 티그리스강,
중국의 황허강,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의 땅들은 강의 범람으로
비옥하기는 했지만, 자연재해가 잦고 사철 농사가 불가능 했었기 때문에 그 지역들의
식량 생산은 인구 부양능력이 크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는 사람들 끼리 경쟁이 심한 이유로 잦은 전쟁이 있었다.
하지만, 4대 문명에 속하지 않은 동남아시아는 쌀을 생산는데 있어서
필수 조건인 강수량이 높고, 고온다습하여 연중 2모작, 3모작 까지 가능하여
인구 부양 능력이 높고 현재도 쌀의 세계 수출은 2, 3위를 타투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식량으로 인한 경쟁이 필요하지 않았고 전쟁이 필요하지 않아서
국가 형성이 다른 대륙 보다 늦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인들이 경쟁을 하는 이유는 영토를 넓히는데 목적이 아니었다.
이들이 필요한 것은 인력이었다고 한다.
땅은 넓은데, 개간하여 경작할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하였다.
동남아시아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와 도서부 동남아시아로 나눈다.
대륙부 동남아시아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이고
도서부 동남아시아란 해안지대와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 나라들을 말하는데,
말레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사아, 필리핀이다.
현재 동남아시아의 10개국이 현재의 국경을 뚜렷이 그을 수 있게 된 것은
서양의 식민지 시대였다고 한다.
그 이전의 동남아시아의 국경선은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국경선 개념이 거의 없었다.
어떤 권력의 중심이 생기더라도 금방 다른쪽의 권력에 의해 중복지대가 존재했었고,
한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백지대가 널려있었다.
이렇게 동남아시아의 10개국이 뚜렷한 국경선을 갖기 전에는 동남아시아에는
푸난(부남), 참파, 스리비자야, 사일렌드라, 첸라, 앙코르와 같은 왕국들이 있었다.
이 왕국들이 존재했던 시기는 기원전이 아닌, A.D. 1세기 이후에 존재했었다.
이 왕국들은 무역풍의 바람을 이용하여 동서를 오가며 교역을 했고
이를 통해서 물자가 교환되면서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가 들어갔다.
A.D.11세기 경에는 소승불교가 동남아시아에 빠르게 전파되었는데,
현재의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는 불교가 일반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남자는 청소년기에 사찰에서 일정기간 동안 불교 수행을 하고 나와야 하고,
촌락의 불교사원 까지도 교육, 문화, 정치의 중심지가 되어 사람들이 평생
불교의 가르침에서 산다.
불교가 동남아시아의 문자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교육의 중심이 되어있었으므로
불교의 권위와 지배권이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어디서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서 고정관념이 뿌리를 내리고 사상이 고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아무에게나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원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토지의 신이 '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벼를 수확할 때도 뱀의 형상을 한 낫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낟알만 잘라냈었다고 한다.
이 뱀신의 이름이 '나가'라고 하는데, 이 뱀이 '부처'를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처 뒤에 뱀이 여러마리 있는 그림들과 힌두교의 시바등과 같은 그림 뒤에는
뱀 그림이 펼쳐져 있다.
동남아시아의 특이한 또 다른 문화는 '베텔'이라는 씹는 담배가 있는데,
구장 잎에 조개나 갑각류의 껍질로 만든 생석회 반죽을 바른 후 빈랑 열매나
씨앗을 넣어 둥글게 말은 것이다.
이것을 씹으면 붉은 침이 고이고 입술을 붉게 만들고, 구강을 청결하게 해 주는 동시에
나른한 기분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간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술로 분위기를 띄우는
대신에 베텔을 씹으면서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하며,
여자들이 결혼할 때 필수 혼수라고 한다.
(씹는 담배 만드는 모습)
재미있는 것은 베텔을 많이 씹으면 치아가 검어지는데, 동남아 일부에서는 그래도
이것을 계속 씹기 위하여 치아가 흰 것은 개나 귀신이라며,
치아가 검어야 미인이라는 문화도 만들어냈다.
또 덥고 습한 기후 덕분에 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옷 대신 문신을
몸에 새겨 넣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문신은 숲에서 적들로부터 자신들이 눈에 잘 띄게 하지 않게
한다고 한다.
이후 문신은 용맹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으나, 유교, 불교, 이슬람, 기독교가 동남아시아에
들어가면서 문신 문화는 점차 줄어들었다.
레19;26, 31
너희는 무엇이든 피채 먹지말며 복술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말며
머리가를 둥글게 깍지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네 몸에 무늬(문신)를 놓지 말라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동남아시아에서 외국인은 중국인이 가장 많다.
10세기 중국에 송나라 때부터 중국의 주변국들에게 시달리던 중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의 각국에 이주해 가기 시작하였다.
중국인들은 현지에 살면서 중국 문화를 유지하면서 상업, 광업, 농업, 건설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노동력은 중국에서 조달하였다고 한다.
이후 서양인들이 동남아시아를 식민화 할 때는 중국인들이 중간 매개자 역할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태국만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여 식민지를 면할 수 있었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서양의 식민지가 되었었다.
프랑스가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영국은 미얀마, 말레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스페인과 미국은 차례로 필리핀을
또 2차 세계 대전 때는 스스로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했던 일본이 동남아 일대를
완전 점령한 적도 있었다.
서양의 식민 시대는 동남아시아의 국경을 명확하게 되었다.
그 이후 독립하면서 20세기에 한 국가의 영토 내부의 여러 민족 통합체인 국민이 생겨났고,
민족주의가 발전하게 되면서 10개의 국가가 성립되었다.
이후 동질의식을 가지고 아세안(ASEAN)라는 기구를 만들어서
경제 협력을 하면서 대륙 간의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고왕국 시대의 동남 아시아에는 어떤 왕국들이 있었는지 몇가지만 알아보자.
1.푸난(부남)
동남 아시아의 고대국가로 1~7세기 베트남의 남부 서쪽에서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일부까지 영향권 내에 두고 있었고,
메콩강 델타(삼각주)에서 농업과 해상 교역으로 발전하였었다.
이로 인해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해상 무역 중개 지점으로 있으면서,
힌두교와 대승 불교가 공존 했었다.
당시 푸난 사람들은 중국의 오나라와 국교를 맺고,
우리나라의 백제와도 국교를 맺고 교역을 했었다.
푸난은 '산'이라는 뜻으로 산에 정령이 있다고 생각했다.
산에 힌두의 '시바' 신을 두고, 남성근을 상징하는 링가를 세우고
숭배하는 의식도 행했다.
이렇게 영산을 정해 놓고 우상숭배하는 문화는 중국과 한국에도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민비가 왕자의 건강을 빈답시고 금강산 1만2천 봉우리 마다 쌀 한 섬,
베 한필, 돈 백냥 씩받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2.첸라(진랍) - 앙코르 왕국
현 캄보디아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앙코르 제국으로 발전했다.
12~13세기가 전성기였으며, 흰두교와 불교가 절묘하게 조합되어 앙코르와트를 세웠다.
또 위에서 본 것처럼 링가, 발기한 남근상을 숭배하는 의식도 있었는데,
이집트의 남성근 '오벨리스크'를 숭상하는 것과 같다.
(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링가는 창조 능력, 다산, 풍요를 의미한다고 한다.
링가는 파괴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구현한다는 힌두의 시바의 화신(化身)이다.
시바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링가는 왕권의 상징이 되기도 했는데, 이것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여성의 상징인
요니와 결합시켜 놓은 「링가와 요니」라는 것도 있었다.
(요니와 링가)
이것은 현재 베트남 중부에 있고 이것을 모토로한 일주사라는 사찰을 하노이에 있는
연못 안에 세우고 관음보살을 들여놓았는데, 이는 힌두교와 불교의 건축 기술의 조합이다.
(하노이의 일주사)
하지만 베트남은 인도의 영향에서 예외적이다.
B.C.2세기부터 중국의 본격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10세기에 독립했지만,
중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남쪽으로 팽창하면서 국가체제를 정비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유교와 문화가 현저하다.
또 베트남은 인류의 평등과 성불을 통해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승불교를
중구의 남부로 전파했고, 그것이 중국의 중부로 올라갔다.
동남아시아는 토지의 신이 뱀, '나가'라는 뱀이다.
따라서 이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불교외 힌두교의 조합과 아울러 뱀을 넣는다.
북베트남의 옛 건축물에는 브라만, 태양, 용등이 장식되어 있고, 캄보디아에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고대 동남아시아의 거대한 장식물에는 나가의 뱀 상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왕궁과 사원 곳곳의 계단, 다리, 난간, 모서리, 지붕의 용마루에
모두 뱀 상이 있다.
이 '나가'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여 나가와 악어가 결합한 모습으로 둔갑하고,
베트남에서는 '용'의 모습으로 되었고, 남중국으로 올라가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존재로 변형되었다.
이 용 상징은 한국으로 건너가서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고,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바다의 신, 용을 섬겨야 한다며, 인간 제물을 바다에 던져 죽게 하는 일도 있었다.
세상 신이 마귀, 즉 용, 옛뱀이라는 성경 말씀이 하나 틀린 것이 없다.
마귀는 전 세계의 정치, 권력, 종교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을 세뇌시켜서 옥죄고 있음은
틀림 없다.
(황제의 용포)
계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동남아시아에서도 왕은 신적인 존재로 인식이 되기 위해서 신과의 교류를 통하는
뜻의 각종 의식을 행했다.
그 파렴치한 극치는 앙코르 시대의 '데바라자' 의식에서 잘 나타난다.
왕은 우주의 주재자라는 데바라자의 대리인이라고 하며 왕의 권위를 극대화했다.
또 태양신 '수리야' 등등에 '보호'를 의미하는 '바르만'이라는 말을 붙여서 왕의 이름을
불렀고 왕을 신격화하면서 의식들로 백성들을 세뇌시켰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자기 자신의 사후 화장한 재를 묻기 위하여 앙코르와트를 세우고
이곳을 우주의 형상으로 만들면서 메루산을 상징하는 중앙탑 꼭데기에 힌두의 비누슈
상을 세웠다.
메루산이란,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우주의 중심에는 ‘마하 메루’가 우뚝 솟아 있는
신의 영역이 있고,
그 주위에는 '부우루 로카'라고 하는 청정무구의 영역이 펼쳐져 있으며,
그 바깥쪽에 인간의 영역이 있다고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왕의 권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백성들의 기대치는 점점 커지는 법이고,
왕이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왕권은 도전받고 내전이 벌어지게 되는 법이다.
이렇게 동남아시아에서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왕들은 교체되어 갔다.
3.참파(임읍)
2세기 말엽~17세기 말 현재의 베트남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인도네시아계인,
참족이 세운 나라로 피부가 검고 머리가 곱슬거리는 말레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참족은 옛날부터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192년경 중국의 후한의 지배에서
독립해 중국인이 임읍(林邑)이라고 부른 참파를 건국하였다.
이후 매우 번성하였으나 중국의 송나라와 수나라의 침략을 받아 국력이 위축되었고,
10세기 이후 중국에서 독립한 베트남 역대 왕조와 격렬한 항쟁을 되풀이하면서
북베트남인의 남하로 남쪽으로 점점 밀려나가다가,
결국 참족의 거점도 모두 베트남인에게 빼앗겨 참파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그리하여 참인은 현재에는 소수민족을 형성하고 있다.
4.스리비자야(스리위자야)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초기국가들은 동서교역으로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성장했다.
말레이 반도 중부의 항해 중심지로 동서 물류 교역과 인적 교류, 종교 전파의 장이 된
동남아시아의 도서부 스리비자야는 거대한 세력 아래서 통합되고 바뀌면서 7세기에
현재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 동남부에 있는 파렘방을 중심지로 하였다.
중국 당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11세기에 번창하다가 인도의 촐라 왕국의 공격을 받아
쇠퇴하고,
13세기에는 그 지대의 해양 교역의 주도권을 인도의 자바 섬의 신흥 왕국인
'마자파힛 왕국'에게 넘져 준 채 소멸하였다.
5. 사일렌드라
도서부 동남아시아와 대륙부 동남아시아를 동시에 지배했던 왕국으로,
8~9세기에 걸쳐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있었던 왕조이다.
그 이름은 '산의 왕가', '산의 주일'을 의미하는
인도어의 산스크리스트에서 유래하며, 중부 자바의 크두스 대지의 남부와 그에 이어진
프람바난의 평지를 지배하였다.
사일렌드라는 과거 푸난의 중심지와 참파와 베트남까지 공격하였고,
스리비자야까지 점령하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대승불교를 숭상하여,
현재의 인도네시아 자바에 '보루부두르 사원'을 자신들의 메루 산으로 선정하여
그 위에 부처에게 헌상하는 우주 모형을 세웠다.
한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언덕을 깎아내면서 그 위에 아홉 층의 부처상이 있는데
총길이가 5㎞, 높이 30m로 2000개의 복잡 다양한 부조(도드라지게 새기는 조각)를
새기고 400개의 석불상을 만들었다.
한편, 자바 동부에는 힌두교를 숭배하는 '마타람 왕국'이 등장하여 세력을 견주게되었다.
이후 마타람왕국에 의해 자바에서 축출된 사일렌드라는 수마트라에서 다시 성장한
스리비자야 왕조와 합체되었다.
고후4;4
이 세상 신이 (마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첫댓글 아래 인도사부터 읽으시면 더 잘 정리됩니다.
이 동남 아시아의 뱀신(사탄)이 말입니다.
북쪽 베트남으로 올라가면서 용으로 변신해가지고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임금의 용포에도 용이 그려지게 되었고,
바다 신 용을 섬기며, 인신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사탄이 쥐어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탄을 "세상 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즈텍에 케삿코틀이라고하는데 이것도 뱀 사탄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