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정원 외 2편
김예강
도시는 딱딱하고
싱싱한 꽃이 피었다
망망 초원이고
게르이고
검고 작은 씨앗이고
누구의 배꼽
도시는 싱싱한 꽃을 팔았다
가설했다 도시는 향기를 가설하고
가을을 가설하고
가설한 행복을 심었다
도시에 사이렌이 울고
가설정원은 개장했다
정원 관람객은
시들지 않는 꽃들을
관람했다
유랑극단 서커스를
상상하고 나는
수직정원 꽃들을 소비했다
꽃을 사러 왔나요 핸드메이드
꽃들은 신발을 벗지 않았다
벽에 붙은 꽃은 뛰어내리지 않았다
도시는 밤에 꽃들을 방목했다
혹자가 유목정원이라고 했다
도시는 트럭에 가을정원이라는 간판을 떼어 넣고
가축을 몰고 초원을 찾아 떠났다
피노키오의 기도
심장의 말이 차오르면 말하는 눈을 달아 주세요
눈동자가 생기기도 전에 말해버린 말들은 불 태워 주세요
당신의 얼굴이 비춰지는 눈동자를 박아 주세요
심장이 차오르면 말하는 손을 달아 주세요
발소리가 들리는 구두를 신겨 주세요
커다란 웃음을 만드는 입을 달아 주세요
도서관 계단을 올라서 뜨거운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손, 손을 잡고 구두를 신고 춤을 출 발,
무덤과 무덤사이에서
내가 당나귀였던 나의 울음을 기억할 귀를 달아 주세요
귀뚜라미의 영혼이 귓전에서 속삭이는 말을 듣게 해 주세요
차오르는 심장을 달아 주세요
수국정원
거짓말이 핀다 폭탄이 되려고
이 정원은 푸른
말만 부푼다 자동차가 달릴 때마다 도로는
거짓말을 퍼뜨린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할 거짓말이 지나간다 거짓말이 피어 있다
구역질이 나는 참말이 점점 붉은 말로 색을 바꾼다
이 구역, 저 구역이 얼굴을 붉힌다
눈이 사라진 자리에 입술은 지저귄다 귀가 사라지고 입술이
코가 퇴화하여 입술로 입술이 한 송이 꽃이
흔들린다 붉은 참말이 흔들린다
거짓말이 거짓말에 기댄다 이마가 맞붙고 속삭인다
가녀린 몸이 휘청거린다 너무 많은 입술이 실려
기우뚱하다가도 피어 있다
도로는 정원의 거미줄에 걸려 긴장하다 곧 도로가 된다
잎사귀가 귀와 바꾼 꽃이 입 속에 나비를 한가득 물고
삼키려다 뱉어 버리려다 물고만 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이어받고 거짓말이 자란다
둥근 얼굴이 완성된다 흩트림 없이 얼굴은 유지된다
건드리면 터질지도 모를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거짓말 휘고 구불해지고 늘어지는
저항이 퇴색되어 가는 이 정원은 더 이상 비밀이 유효하지
않을 때 색을 벗는다 정확히 폭발 직전에 정원은
입을 벌려 나비를 날려 보낸다
그러고는 폭발한다
―김예강 시집, 『가설정원』 (시인의일요일 / 2023)
김예강
경남 창원 출생. 부산교육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 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고양이의 잠』 『오늘의 마음』『가설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