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 1501~1736)




사파비 왕조 또는 사파위 제국은 사파비 가(家)의 이스마일 1세를 시조로 하는 이란의 왕조(1501년~1736년)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왕조들이 수니파를 믿은 것과는 달리 사파비 왕조는 파티마 왕조와 함께 대표적인 시아파 이슬람 왕조이다.
이스마일은 시아파 제7대 이맘의 자손으로서 1502년 아제르바이잔의 아크 코윤루(Ak Koyunlu:白羊) 왕조를 꺾고, 타브리즈에서 독립했다. 그 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했다. 그는 아라비아어풍의 술탄 칭호를 배척하고 페르시아어의 존칭 '샤'를 사용하였으며, 또 12이맘파(派)를 국교로 정하는 등 이민족 지배에서 벗어난 이란 민족주의를 강조하였다.
시아파를 지도 정신으로 하는 이 왕조는 무굴 왕조나 우즈베크계의 칸국들과도 원정을 하기도 했었고 또는 수니파(派)의 오스만 제국과 대항하게 되어 투르크의 침입을 받아 천도하였다. 그러나 아바스 대제가 나오자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영국인의 지도로 군제(軍制) 개혁을 단행하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광대한 실지(失地)를 탈환하였다. 또 내정에도 빛나는 치적(治績)을 올려 수도 이스파한의 장려함은 유럽 세계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아바스 대제의 사후 사파비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다시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을때마다 영토를 잃게 된다. 또 1722년에는 아프간족에게 수도를 점령당함으로써 사실상 쇠퇴하였으나 왕통(王統)은 11대 1736년까지 존속되었다. 이후 이란 지방은 18세기 말 카자르 왕조에 의해 재통일되었다.
사파비 왕조 시대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여러 나라가 페르시아의 비단을 얻고 오스만 제국에 대하여 공동 전선을 펴기 위하여 친분 관계를 맺었다. 또한 인도 동쪽의 식민지와의 연락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투어 우호 관계를 맺었다.
첫댓글 수니파와 시아파, 사우디와 이란이 적대관계로 돌아서서 우리나라로서는 난처하게 됐습니다. 이슬람교과 분열을 초래하는 것은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서 결코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없습니다. 사우디는 이란의 적수가 되지 않지만 미국이 개입하면 이란은 또다시 고립을 자초하는 격이 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