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이례적인 일
어제부로 비 그친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오전 내내 몇차례 비가 흩뿌렸다.
오후 2시경.
파트타임 일 끝내고 온 남편과 뒤늦은 점심 식사.
그새 갠 하늘은 구름 사이로 쨍한 햇빛을 내리 쏜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반.
대낮이다.
나, 지금 어디 있게?
히히히~
나, 지금 모처럼 방에 있다.
엥? 방에 있는 게 뭐 어때서?
어떠나마나 간간이 햇빛 내리꽂는 훤한 대낮에 방에 있다니~
그건 나로선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날씨 꿍꿍한 우중충한 날에도 방에 있는 날이 드문데 비 그친 화사한 날 대낮에 방에 있다는 건
그만큼 이례적인 일.
이런 이례적인 일이자 사단이 벌어지려고 여러차례 조짐과 징후가 있었다.
몇달 만인가 몇년 만인가 모처럼 우리 털보와 야영 가는 와중에 때 아닌 잠이 쏟아지더라니~
어지간해선 낮잠도 안 자는 내가 백주대로 달리는 차 속에서 꾸벅꾸벅 졸다니~
벼 익어가느라 누렇게 변해가는 황금 들녘도 못보고 미풍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제대로 못 보면서 말여~
나~참~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져 야밤 내내 쿨쿨 자는 처지에 대낮에도 졸다니~
여행 갈 때 뿐이었간디~
읍내 5일장 보러 갈 때도 차만 타면 졸아요 글쎄~
나는 내가 늙으 말년에 잠충이가 된 줄 알았어~
근데 그건 착각이었나 봐~
몸뚱이가 자꾸만 휴식달라는 싸인이었는데~
그런 기미와 징조를 무시했으니 사단이 난게지 뭐~
오늘따라 아침에 닭 밥 주고 온 울 털보가 그러더라구~
"멧돼지가 자네 옥수수 싹 훑어버렸네~" 라고.
"뭐시여?"
이제나 저제나 여물기를 바라며 복주머니 회원들에게 보낼 때 만을 기다리던 자식같은 내 옥수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애써 가꾸던 내 옥수수.
이 망할 놈의 멧돼지 새끼덜이~~
내 이 새끼덜을 그냥 콱!!
(이히히~ 근데 거긴 여름에도 눈이 오나벼~ ㅎ~)
좌우지간, 아침 밥 묵자마자 농장으로 내 쐈겠다.
외발수레 열심히 밀면서.
농장에 다다라 비닐하우스 커텐 걷어주고 뽕뽕다리 건너 온실에 급거 도착한 이 아낙.
오메메~~ 이 ㅆ ㅂ ㄴ ㅁ 멧돼지 새끼덜~~
여리디 여리게 여물어가는 내 옥수수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씻지 않은 더러운 돼지발로
무참히 짓밟아 부렀구나~
흐미~ 미치긋따~
씩씩대던 이 촌년.
급기야, 길고 짧은 녹 슨 하우스 쇠파이프 몇개 찾아들고 멧돼지 구멍 막으러 유르트로 출동.
개도 아닌 주제에 꼭 개구멍으로 드나드는 이 후안무치한 멧돼지 잡으러~
아니 못 오게 막으러~ㅎ~
호기롭게 망치 휘두르며 쇠파이프 박는 것까진 좋았는데~
엄마야~~
갑자기 허리에서 뚝! 소리 나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이 촌년.
숨이 턱! 막히는 통증.
옴마야~ 촌년 죽네~~
한참을 땅에 주저앉아 밍기적 뭉기적~
기어다니는 저자세로 겨우 멧돼지 구멍 막고 엉금엉금~
닭 알 주우러 닭장으로 들어갔더니 내 거동이 심상치 않았는지 수탉들이 물통 위로 올라가
고개를 갸웃갸웃~
"저 아짐씨 오늘따라 거동이 수상하네~" 하며 덮칠듯이 노려 본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도 쬐꼬만 촌년이 자기들이 애써 낳은 알을 딸콩딸콩 걷어가는 게 못내 마땅찮아
대들기도 여러번 했겠다~
번번이 촌년 손에 들린 쬐끄많고 빨간 물통의 반격에 기가 죽어있었더랬는데~
근데 오늘은 내가 그 쪼그만 빈 물통 들 정도도 안됐걸랑~
허리 아파서 꼿꼿이 설 수가 있어야지 나~ 원~ 참~
어쩔 것이여~
그래도 알은 주워야제~
안 줍고 놔두면 버르장머리 없이 깨뜨려 먹는데~
엉금엉금 알 주워 외발 수레에 싣고 수레를 미는지 끌려가는지 모르게 집에 당도.
내 거동이 수상쩍었던지 옆집 할머님이 수레를 집 안으로 끌어다주시네~ 앗싸~ㅎ~
그건 그렇다치고,
뭐~ 집에 도착했다해서 그길로 방 안이냐~
천만의 말씀~
울 산적이 내린 명령을 이행해야되거던~
계란 8 박스 포장해놓고 팔러나갈 계란도 준비해야하고,
(추석 지나자 계란 앵벌이가 쉬원찮네~ ㅎ~)
밥도 지어야하고 설겇이도 해야하고,
어제 빻아 온 고추가루도 통에 담아야하고.
''''''''''''
아고~ 나 주껐따~~
어쩐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온다 했어~
신나는 여행길에서도, 이쁜 신랑신부 시집장가 가는 놀이마당 운암제에서도~
끄응~
아이구~허리 아파~~
아이고~ 촌년 죽네에~~~
ㅎㅎㅎ~
2010.10.05. 아낙네( http://산적소굴.kr )
첫댓글 남은 아파 죽겠다는데.... 글을 읽는 저는 그런 아짐씨 모습을 상상해 가며 웃었습니다. 일꾼은 몸이 제일큰 제산입니다. 재산 잘 챙기십시요. 그럼~
그랑께요. 하던 일이 있어논께 쉽게 쉬지도 못하고. 방안에 누워서도 할일만 생각나고. 이를 어쩐답니까? 앞으로도 평생 써묵어야할 허린께 눈 딱 감고 푹~쉬셔요.
어... 허리에 무리가 오면 안되는디... 한번 그라믄 자꾸 탈이 나요. 좀 쉬시고 허리를 자주 뒤로 젖히시기를.
우짭니꺼, 쉬지도 못하고....
오메..클 났네요..얼릉 나으세요..언제나 글 잘 읽는 독자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