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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보물상자 :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
2.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비버 (1644~1704)
<잘츠부르크 미사(Missa Salisburgensis)> 중 '자비송(Kyrie)'
- 폴 매크리시(지휘),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 가브리엘리 콘소트 & 플레이어즈
(5:51)
본명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Heinrich Ignaz Franz von Biber).
폰 비베른(von Bibern)이라고도 한다.
체코 서부 보헤미아지방의 바르텐베르크 출생으로, 바로크시대의 작곡가이자 뛰어난 바이올린 대가로 꼽힌다.
하찮은 직위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위직과 음악감독(1676)에 이르기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궁정음악가로서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에서 보냈으며, 연주자로서 널리 연주여행을 다녔다.
작품은 대체로 자신이 즐겨 연주하는 바이올린곡이었다.
바이올린과 클라비어를 위한 소나타, 통주저음이 있는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등은 구성이 훌륭하며 상당히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바이올린의 여러 연주방법, 특히 스코르다투라(특수효과를 위한 비정상적인 조율)의 사용 등이 개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들 가운데 마리아의 생애 가운데의 사건을 묘사한 《15개의 신비한 소나타 15 Mystery Sonatas》,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사칼리아 G단조 Passacaglia in G Minor》가 가장 유명하며, 실내악곡과 협주곡, 오페라 《치 라 두라, 라 빈케 Chi la dura, la vince》(1687) 등 무대를 위한 작품도 작곡했다.
17세기 독일 음악원에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꼽으라면 응당 비버를 꼽아야 할 것이다.
크로메리츠, 에겐베르크, 리히텐슈타인 등의 궁정음악가를 거쳐 1673년엔 잘츠부르크 궁정에 입성, 결국 악장이 되었으며, 1684년엔 레오폴트 1세 황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바흐로부터 파헬벨에 이르는 당대의 어떤 음악가도 바이올린의 기법에 관한 한 비버를 당할 수 없었다.
신비주의적인 장식이 가득한 그의 바이올린 세계는 여러 가지 기법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특히 스코르다투라 기법은 최고로 발전된 형태를 확립해 놓았다.
그 가장 좋은 예가 그가 남긴 솔로 바이올린 소나타들이다.
1693년에 간행된 <기교적이고 즐거운 합주>, '마리아 생애의 15개의 신비에 대한 예찬'이란 부제가 붙은 15개의 <로잘리오 소나타>, <현을 위한 10개의 춤곡집> 등은 모두 신비한 음형과 바이올린 기법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곡이다.
비버의 곡들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가 현대에 들어 고음악에 대한 복원 과정에서 비로소 대접받게 되었다
언제나 나에게 은혜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미스테리 소나타(로자리오)소나타에 대해서 요약 1678년경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로 15개의 소나타와 무반주 파사칼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기악곡이라는 독특한 구성과 스코르다투라(scordatura) 기법을 비롯해 파격적이고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미스테리 소나타〉는 체코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하인리히 이그나츠 폰 비버가 1678년 무렵에 완성한 작품이다. 바이올린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로 15개의 짧은 소나타와 무반주 파사칼리아 1곡이 〈미스테리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로자리오 소나타〉(묵주 소나타)라고도 불리는데, 15개의 소나타들이 묵주 기도를 드리는 과정과 같다는 뜻에서 붙은 제목이다. 〈미스테리 소나타〉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승천까지의 전 생애를 성모 마리아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과정을 기악곡으로 그려냈다는 구성부터 독특하다. 전체 15개의 소나타는 5곡씩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 부분은 ‘기쁨의 미스테리’, 두 번째 부분은 ‘슬픔의 미스테리’,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영광의 미스테리’라 불린다. 이 세 부분을 구성하는 각각의 소나타에도 역시 예수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부제가 붙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인 ‘기쁨의 미스테리’는 예수의 탄생 과정과 유년 시절을 주제로 담고 있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그녀의 몸에서 예수가 탄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수태고지를 시작으로 천사와의 만남, 예수의 탄생과 아들을 신에게 바치는 예식, 그리고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게 되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두 번째 부분인 ‘슬픔의 미스테리’는 청년으로 성장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난을 당하는 과정이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예수가 빌라도에게 끌려가 채찍을 맞는 장면으로 시작해 심판과 십자가 죽음 등이 묘사된다. 이 부분은 특히 아들의 고난과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슬픔과 고뇌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전체 악곡 중에서 가장 정적이고 음울하며 비통한 정서를 담고 있는 부분으로 꼽힌다. 마지막 세 번째 ‘영광의 미스테리’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 성령의 강림, 그리고 이어지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부활과 구원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부분으로, 앞선 ‘슬픔의 미스테리’의 비통하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구원과 희망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화된 신비롭고 장엄하게 펼쳐진다. 15곡의 소나타가 모두 끝나고 나면 피날레 음악으로 파사칼리아가 등장한다.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사칼리아의 악보 첫머리에는 천사를 그린 동판화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이 곡이 1647년 10월 2일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수호천사 축일 축제를 위해 작곡되었음을 시사한다. 바소 콘티누오 없이 오직 바이올린만으로 연주되는 파사칼리아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악성과 기교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는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미스테리 소나타〉를 작곡한 비버는 체코에서 태어나 주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했는데,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그는 〈미스테리 소나타〉를 통해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연주 기법들을 선보였다. 특히 그는 몇몇 소나타에 기존의 조현법과 다른 음높이로 바이올린 현을 조율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조율에서 벗어나 다른 음정으로 현을 조율하는 변칙적인 조율 방식인 스코르다투라를 사용하면 정상적으로는 연주가 불가능한 음정들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비버는 정상적인 조율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기묘한 불협화음과, 색다른 화성감을 그려냈다. 스코르다투라 외에도 비버는 두 줄을 한 번에 울리게 하는 기법인 더블 스토핑과 같은 난해하고도 다채로운 기법을 사용해 작품에 한층 신비스럽고 종교적인 느낌을 강화했다. 17세기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바로크 바이올린 악파의 음악적 특징을 집대성한 곡이라는 점에서 음악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미스테리 소나타〉는 낭만 시대에서 볼 수 있는 표제음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비버는 가사가 없는 기악 음악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와 성모 마리아의 감정의 변화를 생생하게 그려내려 했으며, 그런 의도 하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 안에 각각의 부제를 가지고 있는 소나타를 사용한 일관성 있는 구성을 취했다. 또한 비버는 각 악장의 다채로운 분위기의 변화를 위해 각각의 악장을 알르망드, 사라방드, 쿠랑트, 지그와 같은 춤곡 악장으로 구성한 모음곡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작품의 주제를 더욱 잘 부각시키기 위해서 악보 첫머리에 각 소나타의 부제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린 동판화를 새겨 넣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비버는 15곡의 작품이 지루하지 않게 연결되면서도 개별 작품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완성된 비버의 〈미스테리 소나타〉는 오늘날 19세기 낭만 시대에 등장한 표제 음악의 이상을 미리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요약 영국 출신의 바로크바이올리니스트. 원전연주에 관심을 갖고 고음악 앙상블을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으며, 트레버 피녹의 잉글리시 콘서트 악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바로크바이올린으로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레이첼 포저는 1968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영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덟 살 때 독일로 건너가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추구했던 부모님은 그녀를 대안학교의 일종인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관현악곡들을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바흐나 비발디 같은 바로크 음악을 특히 좋아했다. 양친이 모두 원전연주단체인 몬테베르디 합창단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은 그녀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포저는 대안학교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와 길드홀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 후 포저는 데이비드 타케노(David Takeno)와 미카엘라 콤베르티(Micaela Comberti)에게 바로크바이올린 연주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짐승의 창자로 만든 거트현을 사용한 옛날 악기의 주법을 익히고 원전 악보를 분석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음악원 재학 시절부터 고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과 앙상블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졸업 후에는 바흐의 음악으로 독주 앨범을 발표하면서 연주자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1999년, 레이첼 포저는 채널클래식스(Channel Classics) 레이블을 통해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바흐의 음악을 통해 성공적으로 음악계에 입성한 레이첼 포저는 이후 독주와 앙상블, 그리고 오케스트라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길드홀 음악원 시절 친구들과 결성한 ‘팔라디언 앙상블’(Palladian Ensemble)에 이어 보다 큰 편성의 ‘플로릴리기움’(Floriligium)을 결성해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무대에서 선보였다. 1997년에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트레버 피녹(Trevor Pinnock)의 러브콜을 받고 5년 동안 피녹이 이끄는 잉글리시 콘서트(The English Concert) 악장으로 활동했으며, 피녹과 함께 바흐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를 녹음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포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텔레만의 작품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열두 개의 판타지〉를 녹음한 음반으로 디아파종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비발디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 스트라바간차〉(op.4) 전곡 녹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폴란드의 원전악기 연주단체인 아르테 데이 수오나토리(Arte dei suonatori)와 함께 폴란드의 한 성당에서 녹음한 이 음반은 그해 그라모폰의 바로크 기악음악상과 디아파종상을 차지했다. 바로크바이올린을 고집하는 그녀가 선택한 악기는 1739년에 제작된 페사리니우스(Pesarinius)로,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나 과르네리(Guarneri)처럼 유명한 악기는 아니지만 포저는 악기의 복원 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자신만의 명기로 다듬어갔다. 레이첼 포저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좋은 음악은 변함없는 감동을 준다는 믿음 아래, 2007년부터 영국 브레콘 지역에서 브레콘 바로크 페스티벌의 음악 감독을 맡아 바로크 음악 알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다른 표기 언어 Salzburg Festival 요약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여름 음악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 Festival)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독일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과 함께 유럽의 3대 음악제로 손꼽힌다. 잘츠부르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출생지로도 알려졌다. 모차르트의 생일이 있는 1월에는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주간(Mozartwoche)이 열린다. 3월에는 잘츠부르크 비엔날레(Salzburger Biennale)를 통해 현대적인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이어 바로크 음악 중심의 부활절 음악제(Salzburger Osterfestspiel)가 열린다. 가을에도 잘츠부르크 가을 재즈 축제(Salzburger Jazz-Herbst) 등 크고 작은 음악제가 이어져 잘츠부르크에서는 일년 내내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부터 시작해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개최된다. 축제 기간 잘츠부르크 시내 전역에서는 200여 회의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은 독주회와 실내악, 관현악, 교회음악, 오페라, 연극 등 다양하게 진행한다. 공연장 이외에도 광장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감상하는 등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가 된다. 매년 2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이 시기 잘츠부르크를 방문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세기 말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International Mozarteum Foundation)’이 개최한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Salzburger Musikfest)에서 유래했다. 모차르테움 재단은 모차르트 연구 기관으로, 모차르트 생가(Mozarts Geburtshaus)가 있는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음악 축제를 기획한 것이다. 축제는 1877년부터 8년간 열렸으며 재단은 1880년 모차르트 박물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 8월 22일 호프만스탈의 연극 <예더만(Jedermann)> 공연으로 시작됐다. 공연은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광장인 돔플라츠(Domplatz)에서 열렸으며 라인하르트가 연출을 맡았다. <예더만>은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도덕극 <에브리맨(Everyman)>을 호프만스탈이 각색한 것이다. <예더만>은 나치 시대를 제외하고 매년 상영됐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상징하는 연극으로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이끌어 간 것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다. 1940년대 후반부터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카라얀은 195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유명 오페라들을 페스티벌에 녹여내는 한편,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 등 외부 관현악단을 초청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잘츠부르크에 더 큰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그의 의견에 따라 1960년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이 세워졌다. 대축제극장의 첫 공연작은 카라얀이 지휘를 맡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였다. 카라얀은 1960년까지 맡았던 예술감독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지휘자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카라얀과 더불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성장시킨 것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페스티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준 높은 연주로 축제를 이끌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잘츠부르크 전역이 연주회장으로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관객이 많이 찾는 곳은 돔플라츠(Domplatz)와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 모차르트 하우스(Haus für Mozart),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이다. 이외에도 잘츠부르크 주립 극장(Landestheater)이나 대학 강당 등 잘츠부르크 시내 곳곳에서 공연이 열린다. 돔플라츠는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광장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상징인 연극 <예더만>이 상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카피텔플라츠(Kapitelplatz)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오페라 등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펠젠라이트슐레는 본래 여름 승마학교로 쓰이던 곳이다. 암벽을 파서 만든 승마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음향이나 연출 면에서 독특한 분위기가 난다. 좌석은 1,500석으로 대개 작은 앙상블이나 현대 오케스트라 공연 등이 열린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에서 합창 경연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도 알려졌다. 모차르트 하우스는 2006년 설립한 공연장이다. 1925년부터 있었던 소축제극장(Kleines Festspielhaus)이 오래되어 홀의 음향 상태가 좋지 못하자 재건축한 것이다. 이름처럼 모차르트 음악을 중심으로 독주회와 실내악, 오페라 공연 등이 열린다. 대축제극장은 2,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이다. 무대 길이가 좌우 50m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큰 편에 속한다. 카라얀이 의뢰해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가 만든 건물로 1960년 완공되었다. 자리에 따라 시야 확보나 음향 차이가 크지 않은 편으로 알려져있다. 첫 공연작은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였으며 지금도 큰 규모의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나 공연에 사용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로 공연하는 극장이기도 하다. 오페라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르다. 극과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오페라 공연은 축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페라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중심이 된 것에는 카라얀의 영향도 크다. 그는 베르디(Giuseppe Verdi) 오페라나 비제(Georges Bizet)의 카르멘(Carmen)과 같은 세계적인 오페라를 페스티벌에 정착시켰다. 카라얀은 축제를 위해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을 모으기도 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통해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나 이탈리아 출신의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와 같은 오페라 가수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축제 기간에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도 상영한다. <세비야의 이발사>나 <피가로의 결혼> 등 유명 오페라를 60분 정도로 축소해 선보이는 공연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연 티켓의 최대 90%를 할인하는 등 오페라나 공연을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젊은 가수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대상은 13세에서 29세로 오디션을 통해 참가자를 선발한다. 선발된 사람들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여러 예술가와 작업할 수 있으며 축제에서 공연하는 오페라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페스티벌의 중심으로 매일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솔리스트들의 독주회와 실내악 등의 공연도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휘자와 연주자, 성악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기회로 손꼽힌다. 연극의 경우 음악회나 오페라보다 적은 수의 공연이 열린다. 가장 유명한 연극은 <예더만>이며 이외에도 괴테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축제 기간 개최된다.
3.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 (1644~1704)
<로자리오> 소나타 1번
- 레이첼 포저(바이올린), 마르친 스비아트키비츠(오르간), 데이빗 밀러(테오르보)
(6:04)
성모 마리아의 시선과 묵주 그 어느 것도 내 취향과는 맞지 않으나 음악 자체로 보면 너무나 훌륭하다. 바로크 음악은
시대
바로크
분류
고음악 > 바로크, 기악음악 > 소나타
제작시기
1678년경
작곡가
하인리히 이그나츠 폰 비버(Heinrich Ignaz Franz von Biber, 1644~1704)
출판
1905년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기악곡
파격적인 기교를 사용한 표제 음악의 효시
4. 미하엘 하이든 (1737~1806)
플루트 협주곡 D장조 MH105 중 2악장 Andante
- 린데 브룬마이어-투츠(플루트), 볼프강 브루너(지휘), 잘츠부르크 호프무지크
(5:46)
5.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주 G장조 KV 423 중 3악장 Rondeau
- 레이첼 포저(바이올린), 제인 로저스(비올라)
(5:24)
레이첼 포저
분류
연주자>기악 연주자>현악 연주자
출생일시
1968년
유형
바이올린 연주자
수상
• 2002년 디아파종상
• 2003년 그라모폰 바로크 기악음악상
• 2003년 디아파종상
데뷔
1999년, 데뷔앨범 《Bach's complete sonatas and partitas for violin solo》
레퍼토리
비발디,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음악 바로크바이올린으로 완성한 포저의 음악 세계
그녀가 들려주는 바로크 음악의 진수
6.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Liebestod)'
- 제시 노먼(소프라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7:14)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위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행사시기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행사장소
대축제극장, 모차르트 하우스, 펜젠라이트슐레 등
발생시기
1920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도시로 유명하다. 과거 여름이면 귀족들은 수도인 빈(Wien)을 떠나 상대적으로 한적한 잘츠부르크나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에서 휴가를 즐겼다. 귀족들은 여행하면서 자신이 후원하는 음악가들과 동행했으며, 자연스레 두 도시에서는 여름이면 음악회나 오페라 등의 공연이 열리곤 했다. 유래와 역사
20세기 초 잘츠부르크에 상설 음악 축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를 위해 1917년 잘츠부르크 축제극장 기구(Salzburger Festspielhaus-Gemeinde)가 설립됐다. 1918년에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연출가인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등의 예술가들도 동참했다. 라인하르트는 잘츠부르크 도시 전체를 무대로 만들어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기획했으며, 이것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기반이 되었다.
1922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첫 오페라 공연이 열렸다. 공연된 작품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를 맡았다. 이 작품을 위해 빈 국립 오페라단이 초청됐으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 Philharmonic Orchestra)가 반주를 맡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오페라 반주는 전통적으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담당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돈 조반니> 이외에도 <토스카(Tosca)>나 <카르멘(Carmen)> 등 다양한 오페라가 공연됐다. 1930년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전성기를 이뤘으나 이후 나치 시대엔 규모가 축소되고 <예더맨> 공연이 취소되는 등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공연장
공연
오페라
음악회와 연극
첫댓글 이건뭐죠ㅋㅋㅋㅋ 자료가 방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