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소 유어 페이스'와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으로 유명한 미국의 리듬앤블루스(R&B) 가수 로버타 플랙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변인들은 24일 성명을 내 "영예로운 로버타 플랙이 2025년 2월 24일 아침에 세상을 떠나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가족이 둘러 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로버타는 경계를 무너뜨리며 레코드들을 내놓았다. 그녀는 또 자랑스러운 교육자이기도 했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뉴욕 맨해튼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끝에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고인은 지난 2022년에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을 앓아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1937년 2월 10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나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성장한 고인은 클래식 피아노 연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4년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하워드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클래식 교육을 받은 뒤 가르치는 일에 나서는 한편, 밤에는 오페라 가수들의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쉴 때 팝 스탠다드 곡들을 부르곤 했다.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은 내내, 동기들과 두런런, 슈두비두를 비롯해 온갖 것들을 했다. 해서 다행히 내 일생 내내 음악에 에워싸여 있었다. 바흐와 쇼팽 그리고 슈만까지가 한 편에, 그리고 모든 리듬과 블루스가 있었다."
재즈 클럽에서 노래하던 그를 뮤지션 레스 맥칸이 발견해 레코딩 경력이 시작됐다. 맥칸은 나중에 "그녀의 목소리는 감동적이며 내가 아는 모든 감정을 가두고 사로잡으며 발길질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첫 번째 히트 곡이 나온 것은 고인이 30대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에 감독 데뷔작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1971)의 러브 신에 사운드트랙으로 들어간 이완 맥콜의 '더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소 유어 페이스'가 그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리게 했다. 그래미상 올해의노래를 수상했으며 이듬해 고인은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으로 같은 상을 2년 연속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전해진다. 돈 매클린의 '빈센트'를 들은 스위스 출신 여가수 롤리 리버맨이 듣고 감동을 표하자 노먼 김블과 찰스 폭스가 즉석에서 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했다. 하지만 리버맨의 원곡은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고, 리버맨은 아메리칸 항공 전속 가수가 됐다. 어느날 고인이 아메리칸 항공 여객기를 탔다가 이 노래를 듣고 반해 다섯 번째 앨범 '킬링 미 소프틀리'에 포함시켰는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1974년 '필 라이크 메이킹 러브'로 차트 정상에 오른 뒤 고인은 레코딩과 자선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공연 활동을 잠시 멈췄다. 이어 1980년대와 본인의 경력 전체를 많은 투어 공연에 쏟으며 도니 해서웨이와 마일스 데이비스 등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했다. 1991년 맥시 프리스트와 듀엣을 이뤄 부른 '셋 더 나이트 투 뮤직'(앨범 타이틀도 같았다)로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다. 또 2012년에는 비틀스 커버 곡들로 꾸민 '렛 잇 비 로버타'를 녹음했다. 2018년 '러닝'(Running)이 생애 마지막 18번째 앨범이었다.(2003년에 '할리데이'란 앨범을 발표했다는 기록도 있어 이것을 포함하면 19번째 앨범이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고인은 "난 스스로를 혼이 가득한 가수라고 생각하는데 내 몸과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감정을 노래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진정한 혼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의 노래도 모든 결점과 테크닉을 초월해 불러서 여러분이 그냥 듣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국 재즈 뮤지션 스티븐 노보셀과 결혼해 얼마 안 가 이혼했던 고인은 많은 시간을 뉴욕에 있는 로버타 플랙 음악학교에 쏟았다. 자녀를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故) 제시 잭슨 목사는 한때 그를 "사회적으로 의지할 만하고 정치적으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뇌졸중을 일으킨 일 년 뒤인 2020년에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대단하고 압도적인 영예"라며 "내 경력 전체를 음악을 통해 이야기들을 전하려 애썼다. 이 상은 내 동료들이 내 생각을 듣고 내가 건네려고 애썼던 것들을 해준 것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고인의 노래는 로린 힐의 힙합 그룹 '푸지스'(The Fugees)가 커버한 '킬링 미 소프틀리' 덕에 신세대 팬들에게도 사랑받았다. 이 노래는 그래미상을 받아 시상식 무대에 고인도 함께 서게 했다. 이 노래는 1996년 세계 곳곳의 차트 정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