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시커멓게 타서 바람이 숭숭 지나가도록 뻥 뚤려야 한다. 타다 말면 못해 먹는다!” 제법 엄숙하고 비장하게 제가 가끔 속상해서
징징거리는 후배들에게 써먹는 말입니다.
자존심·이론 이런 것들을 버리고 낮아지자는 말이지요. 하심(下心)이랄까, 뭐 그런 말입니다. 노숙자, 장애인, 조금 거친 분들, 상처받은
사람들과 철거민촌에 살다 보면 육체적으로 힘든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끔 방문하는 분들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어서 외적인 모습은 사실 내적인 진통과
투쟁에 비하면 그저 조금 무거운 외투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거운 외투를 교회 안에서조차 질질 끌고 다니는 분들이 많더군요.
‘신 앞에 솔직하게’ 자신을 세우는 구도의 장에서, 죄인들의 공동체에서조차 세속의 차이가 그대로 적용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많이 배우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교회 안에서도 똑같은 대접을
받고 싶어합니다.
나눔의 집은 누구라도 처음부터 빗자루를 잡게 하고, 같이 밥 먹고 바닥에 주저앉아 설거지를 함께하게 합니다.
두 살도 안 되어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가 아홉 살이
되어서야 돌아온 아버지는 그 아이를 거의 매일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말랑말랑해지도록 두들겨 팼습니다.
그러다 나눔의 집에 와서 치료도 받고 학교도 다니면서 새벽에는 신문 돌리고 주말에는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면서도 주일 미사에는 반드시 복사를 서고 월급날엔 만두와 자장면과 함께 봉투에 돈을 넣어
후원금이라고 휙 던져놓고 달아나던 열일곱 살 그 녀석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내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곤 했지요.
나이 서른이 넘어 마친 신학원, 짧았지만 유명하다는 학자들에게서
배웠던 외국의 어느 강의실에서도 내 마음이 그렇게 무너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제 가슴속 한줌 재도 남김없이 텅 비어 오직 당신의 숨결만 넘나들게 하소서!
송경용 신부(봉천동 나눔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