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2.12.12. -
사랑이란 서로의 바깥이 되는 것. 편안하게 읽히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시. 복잡한 비유나 상징이 없어도 이렇게나 감동적이고 좋은 시를 만들 수 있다. 겨울 여행을 며칠 앞두고 ‘밤눈’을 읽었다. 겨울밤 노천 역이 얼마나 춥고 을씨년스러운지, 밤늦게 서울역에 내려본 사람은 알리라. 저 멀리 보이는 따스한 방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전동차에 올라타 기어이 내 방에 도착했을 때, 칼바람을 막을 집이 있다는 행운에 나는 감사했다.
이 시가 수록된 김광규 선생의 시집 ‘좀팽이처럼’ 뒤에 붙은 해설에서 평론가 이남호는 이렇게 썼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뚦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 그의 시는 또렷하고 건강하고 욕심이 없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들은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논리가 아니라 불현듯 떠오르는 웃음,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