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창선면 대벽리에 가면 논과 밭·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아한 자태의 큰 나무가 시원스럽게 서 있다. 바로 이 나무가 껍질이 약용으로 쓰이는 후박(厚朴)나무다. 밑동 둘 레가 12.6m, 나무 높이만도 9.5m가량 나가는 수세(樹勢)가 좋은 노 목(老木)이어서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까지 됐다.
옛날 이곳에 살던 어부가 잡은 큰고기의 뱃속에서 나온 씨앗이 자란 것이라는 전설과 임진왜란때는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하고 이 나무밑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니까 수령(樹齡)이 대략 500살은 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이는 오래됐지만 매년 5~6월에 황록색 꽃이 펴 장관을 이룬다.
후박나무는 이름 그대로 옛날부터 두툼한 껍질이 서민들의 생활에 요긴하게 쓰였다.
나무껍질이 오래돼도 갈라지지 않고 매끄러워 보는 느낌이 편안하고 벗겨낸 껍질은 후박피(厚朴皮)라 불리면서 한약재로 애용됐다. 중국에서 들여온 약재도 많지만 후박나무는 우리 토종 한약재다.
덕분에 후박나무는 시련도 많이 겪었다. 동네 어귀나 뒷산 등 가까이서 자라던 후박나무는 사람들의 손에 껍질이 송두리채 벗겨지는 수난을 당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 주위에도 옛날에 후박나무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몇그루외에는 큰 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뭍의 후박나무가 그 효용가치로 수난을 당했다면 울릉도와 제주도의 후박나무는 다행히 모진 사람의 손길을 피해 갔다. 특히, 울릉도는 오늘날 후박나무가 가장 흔한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산에 붙어 살아가므로 감히 베어낼 엄두를 내지 못한 탓도 있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인 까닭도 있었겠다.
울릉도 주민들 얘기로는 울릉도 특산 「호박엿」이 옛날에는 「후박엿」이었다고 한다. 만약, 「후박엿」으로 계속 불렸다 면 울릉도에서도 후박나무 구경하기가 어려울 뻔했으니 호박엿으로 변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후박껍질을 넣어 약 용으로 후박엿을 만들어 먹었으나 언제부턴가 호박엿이 됐다한다. 토종 한약재답게 후박나무 껍질은 옛부터 귀중하게 사용됐다. 조선왕조실록에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보내는 물품에 후박이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널리 사용됐음 을 엿볼 수 있다.
후박은 음식물이 소화안돼 배에 가스가 차고 헛배가 불러오는 증상에 쓰면 잘 낫는다. 복부를 따뜻하게 하고 가스 의 배출을 쉽게 유도하므로 대변을 잘못보는 증상에도 효험이 있다.
특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 소화가 안되고 식욕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사용된다.
동의보감은 「후박껍질은 배가 부르고 끓으면서 소리가 나는 것, 체하고 소화가 잘 않되는 것을 낫게 하며 위장을 따뜻하게 한다. 토하고 설사하는 것을 낫게 하고 담을 삭히며 기를 내리고 위장과 장의 기능을 좋게 한다. 또 설사 와 이질 및 구역질을 낫게 한다」고 약효를 소개했다.
한방에서는 위가 빈 것같고 위장이 냉하고 사르르 아픈 증상에 진피, 생강, 적복령, 목향, 감초, 대충 등을 함께 달여 만든 「厚朴溫中湯」을 복용하면 된다 했다. 독성은 없으나 경험상 임산부는 피해야 한다.
/후박나무, 일본목련과 자주 혼동잘 구별햐 약재로 써야/
후박나무는 일본 목련과 자주 혼동된다. 일본에서는 자기네 특산인 일본 목련을 한자로 후박(厚朴), 또는 박(朴) 이라고 하고 진짜 후박나무는 중국이름 그대로 남(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조경업자들이 일본목련을 수입해 들여올때 후박나무로 번역해 버린 탓에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약재로 쓰려면 이름이 같은 두나무를 똑똑히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박 이용한 민간요법
후박은 한약재로 사용된 지가 오래된 만큼 특정 질환에 효과가 있는 민간요법도 많이 전해온다.
▲비뇨기 계통치료=여름~가을에 걸쳐 껍질을 채취해 잘게 썰어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 소변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오줌을 눈 후에도 개운치 않을 때는 후박피 10g을 1일량으로 달여 2~3회 나누어 마신다. 장기간 복용하면 효과가 좋다.
▲요통=9~10월에 흑자색의 열매를 따 껍질채로 달여서 1일 2~3회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 ▲입냄새제거=20년 이상된 후박나무 껍질을 채취해 그늘에 말려 5g 가량 달여서 복용하며 소화불량으로 생긴 입 냄새를 없앨 수 있다.
▲호흡기계통질병·기관지·천식=술을 담가 먹으면 효과가 있다. 후박술은 뿌리와 껍질을 이용해 담거나 새순을 따다 담는 방법이 있다. 뿌리와 껍질을 채취해 잘 고른 후 재료의 2~3배 가량 되는 독한 술을 붓고 밀봉해 지하 실에 5~6개월 보관후 마시면 된다.
새순을 이용한 후박술은 4~5월께 새순을 따다가 술을 담는데 역시 독이나 항아리에 담아 재료의 3~4배 분량의 독한 술을 붓고 2~3개월 보관후 마신다.
후박술은 소화불량·위경련·복통에 한잔 마시면 즉효가 있고 감기로 인한 두통이나 열에도 잘 듣는다. 오래두고 먹으면 호흡기 계통의 질병, 기관지·천식치료에 좋고 속이 더부룩한 증세의 치료도 가능하다. 한방에서 본 후박
후박은 중국후박나무 및 일본후박나무의 껍질을 약용으로 사용한다. 성미는 쓰고 맵고 따뜻하며, 주로 작용하 는 장기는 비장과 위장, 대장이다. 그 효능을 보면 습기를 없애고 체기를 뚫어주는 화습도체(化濕導滯)기능과 기(氣)순환을 원활히 해주며 속을 따뜻하게 도와주는 행기온중(行氣溫中)작용이 있다.
행기의 작용이 있어 복부창만, 소화불량에 특효를 나타내고, 배가 더부룩하고 음식을 꺼리면서 설태가 두껍게 끼는 증상, 식욕부진에 사용하는데, 이때는 흔히 창출, 진피 등의 약물을 배합하여 사용한다. 복부가 차서 일어 나는 설사에 유효하며, 해수와 천식을 가라앉히는 효능도 있는데, 행인, 반하, 소자 등의 약물과 함께 배합하여 사용한다.
임상에서 후박을 사용하는데 있어 배합하는 약재에 따라 그 작용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예를들어 습체(濕滯) 가 있으면 창출을 배합하여 습기를 없애면서 비위를 도와주고, 기체(氣滯)가 있으면 목향을 배합하여 기(氣) 순환을 도와 통증을 없애며, 식체가 있을 때는 건강(乾薑)을 배합하여 더부룩함과 팽만감을 없애며, 열체가 있을 때는 대황을 배합하여 열을 제거하여 체기를 없애고, 폐기(肺氣)가 울체되어 기침을 할 경우에는 마황과 행인 등의 약재와 배합하여 사용한다.
약리를 보면, 위궤양과 십이지장경련, 위액분비를 억제시키고, 중추신경 억제작용, 혈압강하작용이 있으며, 비교적 강한 항균작용을 나타낸다. 임상보고에 자궁절제수술시 수술전에 복용하면 수술 중에 나타나는 고창 (鼓脹)현상을 완하 시킨다 하며, 급성장염, 세균성, 아메바성 이질에 효력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