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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해를 보내며 ▣▣▣ (제2-1부;서언과 수원화성소개)
한반도 대한민국 서울하늘 아래
남산 북쪽기슰 중구 신당동 315번지
己丑년 拾月에 한강의 여의주를 품은 청룡이
북한산 정기를 받아 태어난 雲峰은
625 동란이 터지자 서울에 부동산 재산도 북괴의 포화로 사라져 우리가족은 알거지로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율포1리 45번지로 피난하여 와 부친이 병작과 이장으로 농사를 지으며 자랐지요 928 수복후 상경하잔 가족의 말을 아니듣던 선친의 고집이였지요
전철1호선을 타고 하행하면서 지나가며 찍었던 개발 전 율포리 동촌과 좌교리와 임줄,해창리가 보임니다
내가 자란율포리 동촌 필자는 hm109를 졸업하고 hm고교 9회 졸업식날 선린상고를 다녔던 중학동창이며 동네친구 대원이가 서울에서 와 졸업을 축하 해 주었지요
취업중 22세 되던해에 2,3사중 광주상무대로 입대하고 군 장기복무 20년을 한 연후에 백마부대 근무당시 부하의 도움으로 BR사에 입사 직장생활 14년과 어간에 자영업 5년후 어언성상 39년간을 보내느라 잠시 고향을 잊었었지요 아니 잊은게 아니라 나날이 분주하게 산업전선에서 열시미 살다보니 막내가 살고있던 율포리 고향을 떠나 송탄으로 이사하고 보니 연고도 없어지니 잘이노 못갔었지요 그 동안 그 얼마나 변했을까요?
이렇게변했다요 하기사 삼성 반도체단지가 고덕지구 개발로 한창 진행중이니 그래두 불행중 다행입니다~세계적인 기업의 터전으로 발전하게 될터이니 삼성반도체가 세계적인 명품 메이커로 거듭 난다면 국가도 회사도 좋고 바람직하겠지만 어릴적 향수 율포리는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올 늦가을 전철로 지나면서 보니 이렇다요
선친은 이곳 율포리에서
새마을 지도자와 이장을 20년간을 연임하시면서 새마을 사업을 주도하셨지요(4H창설,다리공사, 농수로 개량공사, 마을길 포장공사,전기인입사업 가구별 스피카 설치작업,저수지 관리,농업영농기술 위해 농촌지도소와 협의로 농업기술 지도,농촌주택 개량사업등 업적은 이루 말 할수 없었다 이장월급도 없었던 당시 그시대 매년가을에 벼 한말식 이장조로 받으면서 말이다 후에 이장 20여년에 판공비조로 쓴것이(비료값)누적되어 농협에 빚을 져 부친 사후 필자랑 형님이 10년여년을 갚았지요
평택시 고덕면 율포리 동촌 45번지에서 5살때 서정리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
최초 장소팔이와 만담을 했었던 당시19살 춘자누님 당시 육군 중위(매형)에게 모친이 출가를 시켰지요
손우홍 동문이 찍어준 고3 수학여행때 명배와 속리산 문장대에서/당시 내가 입었던은 조끼는 둘째형수가 짜준 울 털실조끼
어릴적 추억은 이제는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와서 올해와 몇년전 추억을 더듬어 보자요 수원지역부터
가끔 필자는 배란다에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자주 추억에 잠겨본다요 왜나하면 퇴직한 우리나이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영광된 그 시절이 그리운 법이니까
▣▣▣ 수원 화성 소개 ▣▣▣ (마하수리는 자칭수원홍보대사인지라) 필자는 용의 도시요 효의도시인 수원으로 둥지를 틀었지요
특히 1989년1월말 명예로운 청룡은 군에서 승천하지 못하고 수원광교저수지로 둥지를 마련후 어언 26 성상중 안양평촌에서 10년, 다시 수원으로 이전하여 오니 만 16년을 수원에서 살아온 셈이네요
장안구 조주공에서 답답하면 팔달산 서장대에 올라 수원시내와
저 멀리 광교산을 바라보며 지난 온 생애를 회상 해 본다요 사진속 11;30분 방향이 필자가 기거하는 조원주공 1,2단지, 좌측으로 03;00시 방향은 한일타운 아파트 우측 13;00시 방향은 우만주공3단지
성곽의 꽃 수원화성은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이1794년(정조18년)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후인 1796년(정조20년)9월에 완공하였다 정조는 그의 생부 사도세자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화산으로 옮기고(융능) 부근에 용주사를 세워 부왕의 명복을 빌었다 -후에 순조때 사도세자를 장헌황제로 추종하다-
-국내 행궁 6곳중 가장 크고 화려한 화성행궁-
조선행궁 건축의 백미 수원화성행궁은 1789년(정조13년) 수원 신읍치 건설후 팔달산 동쪽기슰에 건립한 행궁으로 수원관아로 사용되어 오다가 1794년(정조18년) ~1796년 (정조20년)에 걸쳐 진행된 화성축조기간에 화성행궁을 확대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정조는 13차례나 융능을 참배 방문하였으며 이 기간중 정조는 행궁에서 유숙하셨다 건립당시 봉수당,복내당,유여택, 신풍루,남북군영,우화관,득중정등 600여칸으로 정궁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유여택에서 정조대왕복 체험을 위하여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갈아 입는데 이때 백마사령부에서 같이 근무했었던 청솔선배가 (운영자) 이 장면을 찍어 모 카페에 올린걸
필자가(운영자) 보고 댓글로 확인하여 수원 화성행궁에서 만나게 되어 답사도 같이 다니면서 카메라도 이 선배 덕에 많이 배웠으며 지금도 각별하게 알며 지내고 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선배가 대위때 율포리 중촌 군 부대에서도 근무 했었다 한다 인연은 인연
조선왕 제22대 정조대왕 체험한 인증#1
찰라 인연으로 왕비복을 착용중인 여인과 이심전심형 인증#2
여유롭고 현숙한 현모양처 형 인증#3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 그 당시에는 그 여인의 부군이 앞에 있어서 제안만 했지 사설은 한마디도 못했지요 ㅋㅋㅋ
화성행궁 신풍루앞 외줄타기
수원화성 문화제(제50회)때 정조대왕 배역 배우 한의사 윤성민씨와
팔달시장
팔달 시장에서 산양산삼 막걸리를 즐기시는 정조대왕
수원화성의 수두문 북문 장안문은 주적이 북쪽에서 공격해 오므로 주문으로 정하고 백성이 편안하라고 장안문이라 정조가 명명했다
장안문 내부야경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동북적대에서 바라다 본 동북포루 방향 성곽로
화산동 융능을 찾아 사배도 올리고
가끔 화성을 돌아보며 화서문앞 주막에서
막걸리도 한잔 걸치고 신선정자 같은 방화수류정
화성의 백미 방화수류정/동북각루는 신선들이 노니는 곳 같고 아름답다 하여 미국 CNN방송이 선정한 세계 100대 명소중 하나이지요
방화수류정은 머므름이 구름정자와 같고
또 방화수류정은 화성성곽 속 복속건물이긴 하나 그 아름다움은 과연 걸작이라
침투하는 적을 감시하는 임무와
때로는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요 선비들이 시를 짖던 낭만장소이기도 하였지요
방화수류정과 용연/ 용연은 용이 살았다는 설로 용연이라 하고
야경; 방화수류정/화홍문/서장대
연무대;조련장과 국궁거리 50m/250m
연무대 편의시설; 1층 전면 국궁사선
국궁연습을 하는 필자
서측 장안문
장안문 좌우에만(팔달문 미 복원)설치되어 있슴 /북동적대,북서적대
북수문/화홍문
남수문 복원식;2012년 6월 9일
화성의퀘에 의해 90년만에 복원된 남수문
남수문 복원 축하 연
동북적대앞에서 바라 본 성곽과 동장대(연무대)방향
동일포루에서 바라 본 창룡문과 광교산
방화수류정에서 바라 본 장안문 야경
1997년12월 6일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수원화성박물관은 정조대왕의 모든것과 역사등이 수록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필수 답사코스
서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조화로움은 서로 잘 어울리는 포터포인트
필자는 가만이 컴 앞에 앉아 지난 세월을 더듬으며 차를 한잔 한다요
장녀 상희는 화서동에 3년전에 이미 독립을 시켰고 아들은 올 가을에 결혼하여 분가시켰으니 이젠 우리 부부만 남아 집안일을 협력 해 가며
향후에는 삼식과 살림을 돌봐가며 보람된 일과 여생지락을 도모하며 건강 하게 보내면 될것같다
기호식과 균형식도 맞추고 생활 습관과 일과시간도 변형을 주면서 여행도 국내에서
점차 해외로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겠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올 한 해에도 카메라 샷다는 그 얼마나 눌럿던고?
솔로 산책시나 산행시나 여행시나 모임시 마다 또는 답사때 마다 수없이 눌렀댓지
그러다가 문득문득 군 복무시절 백마사령부에 근무했던 동기들이 생각난다요
제1부 끝 제2부로 이어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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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쩜 사진도 저리 잘 찍으셨을까? 거기다 멋진 해설까지요.. 담편기대합니당
핫
과찬에 대단하게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