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강론>(2023. 10. 6. 금)
(루카 10,13-16)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루카 10,13-15).”
성경에는 이 말씀의 제목이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로 되어
있는데, 말씀의 뜻을 생각하면 ‘응답하지 않는 고을들’이
제목으로 더 적절할 것입니다.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고,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 즉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는 복음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또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신앙인답게 살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불행하여라.”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입니다.
여기서 ‘불행’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라,
‘구원’의 반대말이고, ‘멸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확정된 일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끝까지 응답하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경고이고,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응답하고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들이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라는 말씀은,
여기서는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복음’으로 해석됩니다.
‘티로’와 ‘시돈’은 하느님을 모르고 있고, 안 믿고 있는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회개했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매일미사책의 설명은 잘못된 설명입니다.>
이 말씀은, “만일에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면,
그들은 너희들보다는 응답을 더 잘했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을 칭찬하신 말씀이 아니라,
믿는다고 자처하는 이스라엘을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라는
말씀은, 12장에 있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루카 12,47-48ㄱ).”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만 한 종”입니다.
이방인들은 “주님의 뜻을 몰라서 죄 속에서 살았던 종”입니다.
똑같은 죄를 지어도, 죄라는 것을 알면서 죄를 지은 사람의 죄가,
모르고서 죄를 지은 사람의 죄보다 훨씬 더 큽니다.
“죄라는 것을 몰랐던 경우에도 죄가 되는가?”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죄는 죄이고,
몰랐다고 해서 죄가 죄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해 줄 뿐입니다.
우리는 죄가 아니라 은총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큰 은총’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은총에 응답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채로 살았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누렸던 은총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은총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꾸짖을 수는 없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라는 것을 알고 있는 죄들을
거리낌 없이 행한 것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교만과 자만심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이 말씀은, 선교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교만해지면
안 되고, 실패했다고 해서 의기소침 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활동의 성공은 제자들의(선교사들의) 성공이
아니라 주님의 성공이고, 제자들이 잘난 체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패한 경우에는, ‘주님의 실패’ 라고 표현할 수는 없고,
아직 말씀이 열매를 맺을 때가 안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생활과 선교활동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받으시는 미움과 박해에 동참하는
일이 되고, 반대로, 신앙인이 세상의 찬양을 받는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받으시는 찬양과 영광에
동참하는 일이 됩니다.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을 아버지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이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자기 자신이 찬양받으려고 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신앙인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했던 말을
모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인간들이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