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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효과
드라마 속 원빈의 유명한 대사다. 잘생긴 남자 배우가 사랑의 아픔을 표현할 때면 괜찮겠지만, 현실에서 헤어지는 마당에 쏟아내면 지독히 아프다 못해 분노가 차오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짧고 생활은 길다 하지 않던가. 혼인 관계를 정리하려면 이혼 그 자체보다 얼마에 정리할지 따지는 일이 훨씬 복잡할 때가 많다.
부부는 경제적 공동체로 살아오면서 쌓아온 재산을 정리해야 하고, 각자 앞으로 살아가는 일 역시 생각해야 한다.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어떻게든 헤어지는 일에만 몰두하다 크게 후회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마면 되는 일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파혼에 관해 살펴보면서 손해는 돈으로 물어내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해라는 말은 잘못한 사람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법원이 이혼에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잘못한 쪽이 먼저 나설 수는 없고, 잘못한 사람을 상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혼을 청구한다는 원칙이다. 그렇게 이혼을 청구하는 쪽이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하는 것이다. 부부로서 신뢰를 깨뜨린 불법행위에 대해 물어내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얼마면 될까? ‘이는 무엇을 손해로 볼 것이냐’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법원은 일반적으로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유지했을 재산 상태와 불법행위가 벌어진 현재 재산 상태의 차액을 손해로 본다(대법원 1992. 6. 23. 91다33070). 차액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살펴보자.
간단하게 자동차 사고의 예를 들어보자. 주차하다 실수로 다른 자동차 뒤범퍼를 심하게 긁었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더라도 그대로 가버리면 요즘엔 ‘뺑소니’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연락처를 남겨 당연히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
우선 차의 상태에 따라 도색을 하거나 아예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자동차 자체가 망가져 입은 것으로서 적극적 손해라고 부른다. 수리하는 동안 차주는 비슷하거나 같은 차량을 렌트하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자동차를 쓰지 못해 입은 소극적 손해라고 한다. 사람이 다쳤다면 어떨까? 병원 치료비가 적극적 손해고, 입원한 동안 일을 못해 벌지 못한 돈이 소극적 손해가 된다. 구체적인 손해배상 액수는 얼마나 비싼 자동차였는지, 일당으로 따져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입원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잘잘못의 크기보다 손해의 크기에 따라 물어주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기는 하다. 돈이 많은 편이라면,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물어줘야 할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 혹은 그 사람의 자동차라도 다치게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되는 ‘갑질’의 배경에는 우리 법이 손해배상을 따지는 방법도 기여하고 있다. 얼마면 되냐고 고액권 몇 장 쥐어주고 끝내려는 태도 말이다.
아무튼 위 기준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재산상 손해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혼하면서 재산상 손해라는 것이 있을까? 남편이나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없어진다고? 그건 부부로서 부양의무를 지켰던 것이다. 이혼으로 남남이 되면 그럴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혼 그 자체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원칙적으로 없다(뒤에 살펴볼 재산 분할은 별개의 문제다). 대신 정신적 손해, 일반적으로 위자료라고 부르는 문제가 남는다.
김새는 얘기부터 하자면 우리 법은 정신적 손해에 많이 박하다.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봤더라도 재산상 손해를 배상받으면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부터도 회복된다고 본다(대법원 1991. 6. 11. 90다20206).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남겨준 물건처럼, 가진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을 망가뜨렸더라도 원칙적으로 ‘물건값’만 물어주면 된다는 뜻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재산상 손해배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위자료 청구를 허용한다(대법원 1995. 5. 12. 94다25551). 그러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아니고서는 실제 인정해주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혼에 관한 판례들은 아니지만, 기본적 입장이 그렇다 보니 이혼소송에서도 파격적으로 달라지기는 쉽지 않다.
이혼에 대해 우리 법은 과실 있는 상대방에 대해 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따로 정하고 있다(민법 제843조, 제806조). 다행히도(?) 정신적 고통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못 박아놓았다(제806조 제2항). 이혼 소송에 관해서 만큼은 예외가 아니라 법에 의한 위자료 청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 법원은 위자료 청구의 상대방을 배우자로 한정하지 않는다. 혼인 관계에 부당하게 끼어들어 결국 이혼에 이르게 만든 시어머니도(대법원 2000. 11. 10. 2000므995), 결혼한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 불륜을 부추겨 부부 사이를 갈라지게 만든 사람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15. 5. 29. 2013므2441). 특히 간통죄가 없어진 이후로는 배우자와 바람을 피운 사람을 상대로 한 소송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 과연 얼마나 청구해야 할까? 배우자가 아니라 원수라고 할 만큼 이를 갈 정도라 가정해보자. 가정 폭력으로 10여 년을 시달리면서도 뒷바라지하느라, 자녀들 돌보느라 세월을 보냈는데, 늘 속을 썩였던 배우자가 이제 와 새로운 사랑을 찾았노라 하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리 백세시대라도 뒤늦게 잃어버린 청춘을 무슨 수로 되돌릴 것인가. 명백하게 상대방 잘못이다. 상대방이 수억 원대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그거라도 뺏어야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돈이라도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위자료를 계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얼마인지 환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받게 된 충격, 슬픔, 명예훼손처럼 이혼에 따른 고통이 있다. 가정 폭력이나 부정행위 때문이라면 그 자체가 주는 고통도 있다. 그런 것들은 물건처럼 수리하는 데 얼마가 든다고 값으로 매길 수 없다.
그래서 법원도 위자료에 대해서는 변론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청구하는 쪽에서 얼마인지 일일이 입증해야 하지 않는다. 법원이 유책행위를 저지른 이유와 정도, 함께 살았던 기간, 경제적 상황, 앞으로 예상되는 생활 같은 것을 직접 따져 책정한다. 결론적으로 위자료 판결 액수는 대개 1천만 원 내지 2천만 원 정도다. 법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3천만 원 정도를 기본으로 삼아 이것저것 따진다. 뉴스에 나올 정도의 최고 액수가 5천만 원이었다.
1~2천만 원은 누군가에게는 판결이 있어도 실제로 주지 못할 돈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푼돈일 것이다. 정신적 손해배상에 인색하다는 우리 손해배상 제도의 논쟁거리가 이혼소송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나마 법으로 정해놓은 덕분에 잘못이 분명하면 안 주는 법은 없으니 위안 삼아야 할까? 돈 때문에 아픈 가슴을 꾹꾹 내리 누르며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이혼소송에서 따지는 돈이 위자료만은 아니다.
평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한 아내의 사연을 가정해보자. 20대 초반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생겼고, 숙명이라 여겨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어렸기에 쉽지 않은 시작이었지만 열심히 살았다. 남편은 성실히 직장에 다녔고 아내도 허튼 낭비가 없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이후 아내는 학습지 교사 같은 아르바이트로 살림살이를 돕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시댁 지원으로 마련한 전셋집은 자그마한 아파트로 바뀌었고, 두 차례 평수도 늘려 옮겼다. 셈이 빠른 아내 덕에 이런저런 재테크로 금융자산도 꽤 모았다.
그런데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경제적 ·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아내는 회의에 빠졌다. 자신의 삶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랐다. 남편에게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을 느끼기도 어려웠다. 백세시대라는데 남은 오십여 년을 이렇게 산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마침 학원 일을 하는 친구로부터 함께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집을 비롯해 전 재산은 남편 것이다. 남편에게 법적인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위자료를 생각할 수도 없다. 조금이나마 기반을 가지고 시작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그녀의 마음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도덕적 갑론을박은 하지 말자. 남편이 협의이혼에 응한다고 했을 경우, 그녀가 얼마만큼의 돈을 요구할 수 있을까만 따져보자. 부부는 결혼해도 별산제가 원칙, 그러니까 각자 벌이는 각자의 것으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는 데다, 사례에서처럼 오랜 시간 공동체로 살다 보면 내 것, 네 것 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긴다. 헤어지는 마당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법은 부부가 이혼할 때 상대방에게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협의이혼을 할 때도, 재판상 이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이를 함께 사는 동안 마련한 공동의 재산을 청산해서 분배하는 일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혼 후 상대방의 생활 유지를 어느 정도 보조하는 일이라고까지 하는가 하면(대법원 2000. 9. 29. 2000다25569), 상대방 잘못으로 이혼하는 경우에는 정신적 손해배상을 해주는 성질까지 포함한다고 한다(대법원 2000. 7. 28. 99다6180). 제도의 취지를 폭넓게 보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아직은 여성이 경제적 ·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아서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혹시 위자료에 관해 서운했던 마음이 들었다면 이어지는 설명으로 마음을 풀 수도 있을 것이다.
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 협력해 이룬 모든 것들이다. 공동명의로 샀거나, 살림살이에 필요한 가재도구 같은 것은 물론이다. 별산제 원칙에 따라 누구 한 사람 명의로 돼 있다면 일단 그 사람만의 재산으로 보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도 부담한 부분이 있다면 공동 소유로 봐서 나눠 가져야 한다. 사례에서처럼 전 재산이 모두 남편 명의로 된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전업주부의 경우 특히 그렇다.
법원은 설령 남편 이름으로 된 재산이라 하더라도 그걸 유지하는 데 아내의 헌신적인 가사노동이 있었다면 그 몫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한다. 내조의 가치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사례에서의 전세 자금처럼 밑천을 시댁에서 가져왔더라도 그걸 키우는 데 기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준다(대법원 1993. 6. 11. 92므1054).
재산 분할 역시 당사자가 협의해서 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다툼이 있는 경우 법원이 정해주는데, 위자료를 정할 때처럼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재산 현황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각자의 재산명세표를 내라고 한 다음 틀림없는지 상대방의 확인을 받는다. 얼마인지 애매한 물건들은 전문기관에 의뢰해 가치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빚이 있다면 그걸 뺀 순 자산을 계산한다.
그다음 각자 얼마만큼 재산 형성에 기여했는지를 살펴본다. 누가 얼마를 벌었는지, 가사 노동은 얼마로 칠지, 혼인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와 함께 이혼 후에 자립할 수 있을지 역시 고려 대상이 된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따지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려 법원이 볼 때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비율을 정한다(대법원 1993. 5. 25. 92므501). 결론적으로 대개 여성이 30~50%가량을 인정받는다. 여성에게 직업이 있는 경우, 혼인 기간이 20년 이상 장기간일 때 더욱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단 비율을 정하면 다음은 어떻게 나눠 가질지의 문제가 남는다. 전체 재산을 돈으로 환산한 다음 현금으로, 그것도 일시불로 주도록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부동산처럼 규모가 크고, 당장 처분이 곤란한 경우에는 공유로 바꿔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문제들을 살펴보자.
퇴직금은 나눠 가질 수 있을까? 일정 기간 일을 했다는 것이니 일할 수 있도록 내조한 사실이 있으면 당연히 재산 분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퇴직금을 받기 전인 모호한 나이에 이혼할 때다. 법원은 아직 손에 쥐지 않았더라도 머잖아 목돈 받을 것이 확실하다면 나눠 가지라고 한다. 다만 그 금액은 이혼 시점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니까 20년 직장 생활을 하다 이혼했다면, 그때 퇴직한 것으로 가정해 받을 돈을 계산하라는 것이다. 이혼한 이후 임원으로 승진해 퇴직금이 폭발적으로 늘었더라도 그것까지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퇴직금을 일시불이 아니라 연금 형태로 받는다면 어떨까? 특히 공무원이 매월 일정한 금액으로 받는 퇴직연금이라면 말이다. 공무원 연금의 일부는 월급 일부를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주는 것이고, 일부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살아 있는 기간에만 지급한다는 특징도 있다. 법원은 이 역시 매월 받는 돈의 일정 부분을 나눠주라고 한다. 다만 그 비율은 공무원으로 일한 기간 중 혼인 기간이 얼마냐에 따라 다르게 정한다(대법원 2014. 7. 16. 2012므2888).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가난한 남자 주인공을 뒷바라지해 성공시켰는데 배신당한다는 스토리가 종종 등장한다. 직장 생활을 하며 고시생 키워 판검사 만들어 놨더니, 부잣집 사위로 가버리더라는 식이다. 그런 전문직 자격이나 박사 학위처럼 장차 많은 돈을 벌 것으로 예상되는 어떤 것도 재산으로 봐서 나눠 가지라고 할까? 그것까지는 어렵다(대법원 1998. 6. 12. 98므213). 하기야 의사, 변호사라는 전문직 자격증만으로 고소득이 보장되는 시대는 끝나기도 했다.
로또, 그러니까 거액의 복권 당첨금을 받게 됐다면? 씁쓸하지만 어느 설문 조사에서 1위 응답이 이혼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럼 그 돈이라도 나눠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대법원까지 간 사례는 없지만, 지방법원 판결들은 안 된다고 했다. 부부의 공동생활 자금으로 산 것도, 공동생활에 필요해서 산 것도 아니니까. 물론 당첨금으로 부동산이라도 마련하고, 그 이후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그 재산을 유지해 갔다면 공동의 재산으로 바뀌기는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법원은 재산 분할을 할 때 이혼 사유를 누가 제공했는지, 이혼 후의 생활 유지는 어떠한지까지 고려한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이다. 본질은 부부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이룬 재산이니 헤어질 때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쪽, 설령 도의적으로는 한 푼도 요구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이혼 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오해하거나 혼동하기 쉬운 몇 가지 점들을 짚어보자.
3회 <적과의 동침>에서 살펴보았듯 사실혼 배우자들끼리도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사실혼 관계일 때 받는 가장 큰 불이익은 서로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두 사항이 겹치면서 문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함께 살았던 기간도 십수 년을 헤아리는 고령의 사실혼 부부가 있다. 사실혼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전 재산을 남편 명의로 해놓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아내는 병원에서 남편의 마지막을 지킨다. 마침내 세상에 홀로 남은 날, 법대로라면 아내는 어떤 상황에 놓일까? 그렇다, 상속받을 권한이 없으니 무일푼으로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 법적으로 상속 권한을 가진 남편의 자녀나 형제자매가 모든 걸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법원은 의식불명일 때 사실혼 관계를 끝내고, 재산 분할 청구를 하라고 한다. 그래야 함께 모은 재산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009. 2. 9. 2008스105). 남편이 쓰러질 때 법원에 간 아내는 노후를 보장받지만, 병실만 지켰다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참으로 야속해 보이는 법이지만 현재의 체계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미연에 방지하려면 생전에 증여 같은 대책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이런 상황은 특정한 권리나 의무의 유무가 어떤 사실이 일어난 시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어난다. 술 때문에 속 썩이는 한 남편이 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각서를 받기로 한다. 한번만 더 술을 마시면 이혼할 때 남편이 재산 분할 청구를 포기하겠노라는 내용이다. 무일푼으로 쫓겨날지 모르니 술을 좀 줄이겠거니 기대하는 것이다. 손도장도 찍게 만들었고 공증까지 받았다. 혹시라도 정말로 이혼한다면 효력이 있을까?
없다. 왜냐하면 재산 분할 청구권은 이혼할 그 시점에 비로소 생긴다. 있지도 않은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의 논리다(대법원 2000. 2. 11. 99므2049). 실제 저런 각서들을 많이 쓰는데 대부분 내용대로의 효력은 없다. 굳이 법원에 들고 가면 남편이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구나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점과 관련해 한 가지만 더 짚자. 50 대 50으로 재산 분할을 하라고 했는데, 현금으로 환산하는 시점은 언제로 잡을까? 부동산처럼 시가가 변하면 언제를 기준으로 값을 매길지 애매하다. 바로, 재판이 끝난 날이다. 그러니까 그날 땅값이 1억 원이었고, 토지를 공유하는 대신 돈으로 받기로 했다면 5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에 정말 우연히도 그 직후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면? 저 인간과는 아주 끝까지 운이 나쁘구나 하는 수밖에 없다.
발행일 : 2018. 05. 21.
저자 양지열 법무법인 가율(대표 변호사), 시사평론가
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 간의 여러 분쟁으로 이혼을 하거나 재산 다툼을 하고, 죽음으로 유언과 상속을 남기기까지 법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산다.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데 능한 양지열 변호사는 높게만 보이는 가족법의 문턱을 다양한 사례와 솔루션을 통해 낮추어, 독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이야기 민법〉, 〈이야기 형법〉, 〈법은 만인에게 평등할까〉, 〈그림 읽는 변호사〉, 〈헌법 다시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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