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제는 노동이사제, 어제는 친기업…윤석열 진심은 뭔가중앙일보
남자천사
2021.12.18. 07:00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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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제는 노동이사제, 어제는 친기업…윤석열 진심은 뭔가
중앙일보
입력 2021.12.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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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15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노조가 요구해온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윤 후보 입장에 재계는 당혹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원칙 저버린 정책 뒤집기, 포퓰리즘 아닌가
야당, 기업 경쟁력 훼손 노동이사제 반대해 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연이틀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면서 스스로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동계가 요구해 온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덜컥 찬성하더니, 바로 다음 날(16일)엔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 “네거티브 규제로 제도를 바꿔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정부 때문에 손해 본다는 생각이 안 들게 하겠다”며 전날의 친노동 입장과는 정반대의 친기업 메시지를 던졌다. 규제 혁파를 약속하면서 정작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새 규제를 들이미는 모순을 그대로 노출한 셈이다.
선거철에 표만 되면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인이라지만 유력 대선후보가 불과 하루 만에 손바닥 뒤집듯 굵직한 정책 방향까지 바꿔가며 상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건 무책임하다. 윤 후보가 평소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제 강행 등을 비판하며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는 걸 고려하면 노조 표 구애를 위해 보수 정당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노동이사제의 경우 노동계는 줄곧 입법을 요구해 온 반면, 주요 경제단체들은 “법으로 경영권 침해를 강제하는 것은 시대 역행”이라며 결사 반대하는 등 양립 불가능한 사안이란 점에서 더더욱 논란거리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재계는 “일단 공공기관에 도입되면 민간 도입은 시간 문제”라며 반발해 왔다.
윤 후보 한마디에 국민의힘도 머쓱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강하게 추진해 온 탓에 국민의힘은 “이재명 하명법”이라며 노동이사제 입법에 강하게 반대해 왔는데 윤 후보가 느닷없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반대할 명분이 사라졌다. 논란이 이어지자 윤 후보 측은 “당에서도 (노동이사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공당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또 기업 경쟁력 훼손을 걱정하는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킬 제도적 보완에 대한 복안은 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노동이사제는 순기능도 분명 있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노사가 공동책임을 지는 구조라 생산성을 높이고 낙하산 인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성 노조 입김이 셀수록 견제보다 노사 야합을 통한 방만 경영이라는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윤 후보 측은 “일단 시행하면서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판단하자”는 안이한 입장이다. 명분을 앞세워 전 국민을 부동산 패닉으로 몰고 간 현 정부의 임대차 3법과 뭐가 다른가. 덥석 법부터 만들 게 아니라 부작용을 줄일 정교한 설계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