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대표로 사건에 참가했다고 밝힌 '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구로항쟁동지회) 소속 회원 박성준씨(51)는 "당시 경찰이 투표함을 가져 갔는데 어떻게 투표함이 중앙선관위로 다시 이송됐는지 선관위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행사 진행을 가로막았다.
그는 또 "한국정치학회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투표함을 개함하는 것이냐"며 "선관위가 정치학회를 내세워 실질적으로 행사를 주관하면서 일종의 쇼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로항쟁동지회는 투표함과 관련된 당시 13대 대통령선거 전반에 부정투표 의혹을 밝혀야 한다며 그동안 투표함 개봉을 반대해왔다. 선관위 관계자들이 박씨를 제지했지만 박씨가 고성을 지르는 등 계속해 문제를 제기해 행사가 10여분가량 지체되기도 했다.
◇차분히 마무리된 개표, 추가적 조사 계속 필요해
소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선관위는 행사를 속개했고 마침내 오전 10시12분 투표함의 겉뚜껑이 열렸다. 30여년간 굳게 잠겨있던 자물쇠가 절단기에 의해 3초도 되지 않아 손쉽게 잘려나갔다.
이후의 일정은 계획된 대로 진행됐다. 겉뚜껑에 이어 안뚜껑의 자물쇠가 열리고 투표지를 담은 회송용 봉투가 5개의 바구니에 나뉘어 계표사무원들의 앞으로 분배됐다. 회수용 봉투의 수는 4325개로 사전에 파악한 수와 일치했다.
오전 10시55분쯤 회수용 봉투가 개봉되고 계표사무원들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계표사무원들은 회수용 봉투 안에 들어있는 속봉투를 꺼내 다시 수량을 확인하고 투표지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계표사무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장 한장 투표지를 분류해 나갔다. 한점 흐트러짐도 없었고, 옆 사람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계표는 오후 1시50분에 종료됐다. 계표 결과 4325명 중 3133명이 기호 1번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를 찍었고 이어 3번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575표, 2번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404표, 4번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 130표 순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관위와 한국정치학회는 앞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통한 과학적 검증과 함께 당시 사건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구술자료들을 확보해 추가적인 조사와 연구를 계속해 나가겠다며 향후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1987년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행사장을 찾아 30여년 전 사건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당시 혹한의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투표함을 지켜냈다"며 "당시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노력들이 역사 속에 남아 현재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첫댓글 굉장히 의심스러운 결과네요
그렇죠..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개표과정 및 결과라고 봐야합니다.
저걸 왜 당시에 투표시간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개표소로 옮기려 했는지도 수상하고요.
한번 사는거 깨끗하게좀 살지 역사에서 더러운 놈이라고 수백년간 욕먹을텐데 그렇게까지 대통령이 하고싶었을까
제왕적 대통령제라서 권한과 떡고물이 어마어마하니깐요~ 그렇다고 그들의 과오가 용서될 수는 없죠
친구들과 지키려 갔었죠
부재자 투표함이면 군인이기 쉽겠네요. 당시 군대투표는 거의 공개투표 였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