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어송라이터 존 레전드가 이웃 나라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르완다에서 공연하고 있는 데 대해 후폭풍이 일자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영국 BBC가 24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지난주 수도 키갈리 공연을 마친 뒤 "그들의 지도자들과 우리의 뜻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르완다 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벌 줘선 안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르완다가 지원하는 DRC 투치족 M23 반군들이 지난 몇 주에 걸쳐 광물이 풍부한 동부의 큰 도시 둘(고마와 제2 도시인 부카부)을 장악했다. 르완다는 국경 너머 4000명의 병력을 파병해 반군들을 돕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이 때문에 수십 만명의 민간인들이 살던 집을 떠나 떠돌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강간하는 등 폭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있다.
에미, 그래미, 오스카, 토니상을 석권한 'EGOT'로서 레전드가 공연을 취소한다는 발표를 했어야 한다고 꼬집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미상을 함께 수상한 템스는 22일 르완다 공연을 취소하며 "현실 세계의 문제들에 대해 결코, 절대로 무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레전드는 비정부조직(NGO) 글로벌 시티즌이 운영해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수천 명의 팬들을 키갈리로 모이게 만든 '무브 아프리카'(Move Afrika) 공연의 간판 주자로 나선 자신의 결정을 옹호했다. 그는 공연 대가도 받지 않지만, 이른바 월드 투어를 내세우고도 국제적인 스타들이 외면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투어 수용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나는 (DR 콩고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으며 내가 이 쇼를 하면 안된다는 요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브 아프리카'의 소명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진짜 믿는다"고 방송에 털어놓았다.
매진된 공연에 기뻐한 팬들도 공감했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트를 인스타그램에서 삭제하르는 압력이 일 정도로 후폭풍이 상당했다.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데니스 자네사는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메시지를 통해 르완다 국기 아래 공연하는 것은 "압제 자체에 협력하는 꼴"이라고 개탄했다. 시모네 움바는 틱톡 동영상 설명으로 "르완다가 콩고 동부를 공포로 몰아넣는 것을 정상이라고 선전하는 소프트 캠페인에 블랙 아메리칸 문화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적었다.
레전드가 정치적 주장을 해놓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 아주 낯선 모습은 아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거침 없이 얘기해 왔다. 한때 멘토로 여겼던 카니예 웨스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의 출마가 흑인들이 민주당 후보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막으려는 트럼프 캠프의 술책에 휘말리는 것이라고 의심하며 손절한 일로 유명하다.
르완다가 유명인들을 끌어들여 선전에 활용하는 일도 처음이 아니다. 인권 유린 논란을 은폐하려고 국제 축구대회를 유치하는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에 열심이라는 비판도 꾸준히 나온다. 동아프리카의 이 나라는 한 해에 외국 원조를 10억 달러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관광 당국은 '비지트 르완다' 프로그램을 통해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망과 후원 계약을 맺어 재미를 봤다.
이 주제에 대해 레전드의 생각을 듣고 싶었으나 그의 참모는 음악 자체에 대해 얘기해야지 된다는 이유로 답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방송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