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재(齋)'와 '제(祭)'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본다.
* 재(齋) :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
* 제(祭) : 1.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
2.나라에서 천신()에게 지내던 제사
쉽게 말하면 ‘재(齋)와 제(祭)의 차이’는 '재(齋)'는 불교의식이며 '제(祭)'는 유교의식이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건넌방에 제청을 차려놓고 만 2년을 모신 후 탈상(3년상이라고 함)을 했다. 그때 나는 혼자 제청을 모신 건넌방에서 잠을 잤다.
다른 사람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궁금해 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했던 나는 할아버지의 보호로 동네 악동들로부터 전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께서 나를 지켜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제청을 모시는 것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매일 조석으로 처음 푸는 하얀 쌀밥(일반 가정에서는 매우 어려운)을 제청에 올린다.
이를 상식(上食)이라 한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아침에는 제청의 휘장을 걷고 부부가 젯상 밑에 두었던 상복을 다시 차려입고 곡을 하며
삭망제(朔望祭)을 올린다. 돌아가신 후 일년이 지나면 오전에(가문에 따라 밤에 지내기도 함) 장례식에 준하는 소상(小祥)을 지내고,
2년 뒤에는 대상(大祥)을 지내고 나서야 제청을 치우는 탈상(脫喪)이 이루어 진다. 이것도 조선 초기에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하던
시묘(侍墓)살이(양반이나 가능)에 비하면 간소화한 것이다.
왜 3년상이냐 하는 것에는 2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부모가 나를 키울 때 낳아서 3년 정도는젖 먹이고 똥 오줌 가려주며 키워 주셨으니
돌아가신 후 그 기간 정도는 하면서 부모은공을 생각해야 한다는 설이 있고, 두번 째는 망자가 돌아 가신 후 황천에 이르는 길은 멀어서
도착하는 동안 모셔두고 시장하실 테니 식사를 드린다는 설이다.-
위 사전적 의미 ‘제(祭) 2번에 나와 있듯이 사실 제사는 하늘에 올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올리는 의식이었지만, 사회 발전에 따라
하향평준화 된다. 즉 ‘나라(왕)→왕족→귀족→평민→모든 가정’으로 변하고, 그 대상도 하늘에서 조상으로...!
마을 거주자의 변동이 거의 없던 농경사회에서는 3년 탈상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농경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산업화의 진행에 맞추어
바빠지고 직장에 따라 사는 곳이 흩어져 변화가 된다. 어느 사이 2년 탈상(만 1년)으로 변하더니 이것도 길게 느껴져 6개월로 단축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농촌에서는 3년상을 고집하는 가문도 있었다. 이것은 유교에 입각한 제례 방식이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린 것이 불교의 49재이다. 불교에서는 장례 후 일주일 마다 명부의 시왕으로부터 심판을 받으며 7일 씩 7번이 지난 맨
마지막에는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으므로 절차가 모두 끝난다. 유족들은 마지막 49일째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 7번의 재에
참석을 하지만, 마지막 49재가 가장 성대하고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유교의 탈상으로 그대로 옮겨져 49일째 되는 날 가정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유교방식의 제사를 지내고 ‘탈상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49재’가 아니고 ‘49제’가 되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49제도 없어져 장례식과 함께 탈상이 이루어 지게 될 것이다. 다른 종교를 가진
가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미 없앤 가문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