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69) - 눈높이에 못 미치는 권력의 속성
하늘 높고 말도 살찌는 눈부신 가을날, 주민센터의 건강프로그램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주변의 쓰레기 줍기에 나섰다. 모두가 함께 가꾸는 공동체, 깨끗하고 반듯하여라.
쓰레기줍기에 나서며
어제(10월 17일)는 민주헌정을 총통제에 가까운 독재체제로 후퇴시킨 10월 유신선포 51주년, 심심파적으로 살핀 TV역사물 코리아케이트에서 10월 유신의 선포과정을 다루는 화면을 접하며 정치권력의 속성과 무상함을 되새겼다. 화면에서 접한 박정희의 어록, 유신체제로 10년쯤 기틀을 잡은 후 물러날 테니 일사불란한 태세로 힘을 보태라.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엄정, 그는 7년 후에 뜻밖의 유고로 우리 곁을 떠났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온 국민의 염원은 민주정체의 회복이었는데 예기치 않은 복병이 12‧12 군사변란을 획책한 후 유신체제의 아류로 권력을 앗아갔다. 이후 두 차례나 정권을 움켜잡은 군부세력은 종래 민주화의 물결에 휩쓸려 주권자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 권력을 이어받은 민주투사들도 가족 비리 등 한두 가지 흠집을 남겼고 최근의 두 대통령은 탄핵과 감옥살이의 불명예를 안았다. 아! 아쉬워라, 주인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권력의 속성이여!
일주일 전에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집권당 후보가 참패하며 큰 충격파를 던졌다. 국민의 심판은 엄정, 성서는 이렇게 교훈한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잠언 14장 28절)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여 후보로 내세운 이가 일패도지한 것은 권력자의 언행에 대한 엄중한 심판,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주권자의 감시와 기대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선, 중동의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격돌 등 국제정세가 일촉즉발이고 국내외 경제환경도 총력대응이 필요한 때 아닌가. 현상황에 대한 평가와 처방 중 하나, ‘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라는 칼럼에서 저간의 사정과 대응방향을 살펴보자.
‘중도·청년·중산층이 여권에 등을 돌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1년7개월 전 지지했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경고였다. 17%포인트 차 대패는 여권의 자업자득이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보궐선거에 원인제공자를 출마시키는 용산의 결정에 그 누구도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마음을 닫은 것은 집권 이후 1년5개월 동안 보여준 정권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주요정책에 대한 국민 설득이 부족했고, 야당과의 소통은 아예 없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안 하고 있다. 일방통행의 독주만 있었다. 내로남불이 아닌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는데 자질과 도덕성이 함량 미달인 인사들을 줄줄이 기용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장관 후보자가 걸어 나가는 최악의 장면까지 나왔다. 이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이다. 그런데 머슴이 주인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으면 참모들에게도 그런 결기를 허용하고 언로(言路)를 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가 충정에서 쓴 소리를 했더니 왜 너까지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윤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변화와 쇄신의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내부 비판과 언로가 계속 막힌다면 아부꾼의 심기경호에 길들여진 벌거숭이 임금님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면 보선 참패는 전화위복이 된다. 이념 대통령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실용 대통령이 돼야 한다. 범부(凡夫)의 고달픈 현실을 어루만지기 위해 겸손한 표정으로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내부 통합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행여 권력에 취할까 봐 자신을 경계하고 민심을 향해 직진하기 바란다.’(2023. 10. 16 중앙일보 이하경 대기자의 ‘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에서)
* 시월유신(十月維新)은 1972년 10월 17일, 대한민국 제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의 국회 해산 및 정당·정치 활동 정지 등에 관한 특별선언을 시작으로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 즉 유신체제가 성립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헌정 중단 사태이자 친위 쿠데타로 꼽힌다.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그해 11월 21일에 실시, 12월 27일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유신체제가 시작되었다.
시월유신을 선포한 당시의 신문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