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4 단양 신라적성비 학술회의 참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협의회 충북지회(지회장 :윤수경-전 단양 군의회 의장)에서 주최하고 단양군,단양문화원,단양향토문화연구회에서 후원한 단양 신라적성비 학술회의에 초대받아서 참관을 했다.
인터넷에 필자가 억수로 홍보하고 역사문화여행을 주장('개털기사,적성비'-검색)하면서 읊었던 단양적성을 주제로 하는 학술회의에 참관한 것을 개인적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전에 적성비(赤城碑)를 본 적이 두번 있고...이번에 둘째날 적성산성을 올라보고 설명을 들어보고 주변 경치,환경과 비교하여 보면 참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양 신라적성비의 의의를 누가 필자에게 질문한다면 한마디로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북진을 시작했다~!'
한강유역을 점령하기 위한 삼국의 영토전쟁~!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 전국협의회 회장님의 인사
뒷줄 좌에서 첫째부터, 유지상 충북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장창은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 장준식 충북문화재연구원장,조범환 서강대 사학과 교수,여섯번째가 경북대 사학과 교수인 이영호,일곱번째가 (사)비화가야역사문화연구소 하노검(구명 하강돈) 소장,앞줄 우측부터 국편 사료조사위원 전국회장 윤승창, 한사람 건너 국편 충북회장 윤수경,충북부지사, 정영호 단국대 명예교수 ,김태식 홍익대 사범대학장
단양 신라적성비(국보 198호) 학술회의는 발견된지 37년만에 처음으로 단양에서 열렸다.정영호 단국대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오셨다가 우연히 발견한 발굴에 관한 전말을 당사자인 정영호 교수님으로 부터 직접 들은 좋은 기회였다.
단양 신라적성비 발굴계기는 인터넷 검색하면 많이 보인다.그러나 첫 학술회의 자료에서 정영호 교수님의 자료를 제일 밑에 5장을 첨부한다.한번 읽어 보면 37년전 발견 당시의 가슴벅찬 환희를 당사자처럼 느낄 수 있다.
스승인 고 황수영 박사와 정영호 교수 .
적성비 발견당시 기념사진을 찍으신 분들은 벌써 다 고인이 되셨고 혼자 남으셨다고 안타까워 하신다.
조범환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께서 적성비의 절교사(節敎事) 부분에 대해서 발표를 하신다.
장창은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발표
윤수경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충북지회장이 발표한 단양지방의 關防施設
윤수경님의 산성의 척(尺)과 보(步)의 개념
죽령산성(우측위)
대동여지도상의 죽령산성 주변
죽령산성전투
임란때 의병을 일으키고 향병 600과 함께 봉화 노루재(화장산 기슭) 전투에서 순절한 柳宗介와 부친인 柳贇(인터넷 자료)
정용호 교수의 보충설명
단양 적성비가 발견(수습)된 직후 몇일이 지나서 일본 역사학자가 적성비를 탁본을 해갔다고 언론에서 발표가 있었다고 한다.몰래 가만히 와서 땅을 파고 들어가서 도굴하듯이 탁본을 해갔다고 한다....황금으로 만든 금상감철검이 일본에 있는데 탁본을 해간뒤 더이상 어떤 학술발표나 연구를 못하고 (일본에 불리하니까) 죽었다는 내용이다.
위 사진에서 우측 끝에 앉은 분이 지성룡 단양문화원 이사이시다.
가운데 한복을 입은 분이 강경모 경북 향토문화재단 이사장(상주출신)이시다.
앞줄 좌에서 세번째는 단양군 어성천로에서 선암오토켐핑장을 운영하시는 배형순님이시다.방곡리 도화마을에 의병전투가 있다고 하시는데 언제 답사를 가봐야 겠다.
정영호 교수님의 건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