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y Magdalene
Image of Mary Magdalene_(2)
Mizmor S린.의 추천 공간 MARY MAGDALENE → http://www.bible-art.info/MaryMagdalene.htm
1525
CORREGGIO (b. cca. 1490, Correggio, d. 1534, Correggio) Noli me Tangere about 1525 Oil on canvas, 130 x 103 cm Museo del Prado, Madrid
1580-85
El Greco (b. 1541, Candia, d. 1614, Toledo) St Mary Magdalene 1580-85 Oil on canvas, 108 x 87 cm Rockhill Nelson Gallery of Art, Kansas City
1582-87
TINTORETTO (b. 1518, Venezia, d. 1594, Venezia) St Mary Magdalen 1582-87 Oil on canvas, 425 x 209 cm Scuola di San Rocco, Venice
1585-90
El Greco (b. 1541, Candia, d. 1614, Toledo) Penitent Magdalene 1585-90 Oil on canvas, 109 x 96 cm Museu Cau Ferrat, Sitges, Barcelona
1596-97
CARAVAGGIO (b. 1573, Caravaggio, d. 1610, Porto Ercole) Magdalene 1596-97 Oil on canvas, 122,5 x 98,5 cm Galleria Doria-Pamphili, Rome
1615
FETI, Domenico (b. cca. 1589, Roma, d. 1623, Venezia) Saint Mary Magdalene Penitent 1615 Oil on canvas Museum of Fine Arts,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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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RCINO (b. 1591, Cento, d. 1666, Bologna) Mary Magdalene in Penitence Oil on canvas, 121 x 102 cm Museo del Prado, Madrid
1622
GUERCINO (b. 1591, Cento, d. 1666, Bologna) Mary Magdalen and Two Angels 1622 Oil on canvas Pinacoteca, Vatican
ANTOLINEZ, Jos? (b. 1635, Madrid, d. 1675, Madrid) Assumption of Mary Magdalene Oil on canvas, 105 x 163 cm Museo del Prado, Madrid
1635
RENI, Guido (b. 1575, Calvenzano, d. 1642, Bologna) The Penitent Magdalene 1635 Oil on canvas Walters Art Gallery, Baltimore
1640-41
RIBERA, Jusepe de (b. 1591, J톞iva, d. 1652, Napoli) Mary Magdalene in the Desert 1640-41 Oil on canvas, 226 x 181 cm Museo del Prado, Madrid
1660-70
DOLCI, Carlo (b. 1616, Firenze, d. 1686, Firenze) Magdalene 1660-70 Oil on canvas, 73 x 56 cm Ga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1674
PIOLA, Domenico (b. 1627, Genova, d. 1703, Genova) Magdalene in the Desert 1674 Oil on canvas, 300 x 198 cm Oratorio di Santa Maria Maddalena, Laigueg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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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마리아!" 하고 부르시자, 그는 돌아서서 예수께 히브리어로 "랍부니!" 하였다.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요한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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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부니(랍오니)~
...예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실재를 살아내신다. 그러기에 라자로(나사로)가 죽은 뒤에, 예수는 마르타(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리고 이어서 당신을 믿는 사람은 이미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얻었다고 선포하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으며 하늘로 들어올려져 창조주와 하나 된 삶을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례성사(침례/세례)의 의미이다. 우리는 온갖 금기나 죄의식과 함께 묵은 종교에 죽고, 하느님(하나님) 안에서 자유에로 들어올림 받았다.
일상생활에서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하나님)께 들어올림 받았다는 사실이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는 그것을 잊고 살기가 쉽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그것이 나의 현실인양 행동하도록 우리는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하느님(하나님)과 하나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삶 안에서 가장 중요한 현실임을 진정으로 자각하게 되면, 우리는 삶의 어떠한 어려움도, 십자가형 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신포도주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물을 포도주로변화시킬 능력'이 있으며,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자유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으며, 모두 절망에 빠져있을 때조차 경축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어둠이 드리워질지라도 어둠의 힘은 이제 그 명이 다 끝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둠의 힘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이제 묵은 포도주는 다 떨어졌다. 이미 새포도주가 넘쳐 흐리기 시작했고, 하느님(하나님)은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신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하느님(하나님)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가 부활과 관련된 요한복음의 이야기(유일하게 요한만이 전하고 있는)를 통해서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 부활한 예수께서 당신을 동산지기로 오해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다. 본문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어로 '랍부니'하고 불렀다."그리고 복음사가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이 말은 '선생님이여'라는 뜻이다." 그러나 선생님을 뜻하는 말은 '랍비'이지 '랍부니'는 아니다. 랍부니는 다른 뜻을 지닌 말이다. 구약성서 部分譯(Aramaic Targum)에서 '호세아'를 '랍부니'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 뜻은 남편이다. 아람어 부분역 본문에 "그날이 오면 너는 나를 랍부니라 부르리라..."고 되어 있다. 호세아 예언자가 말한 '그날'에 '믿는 이'들을 대표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를 끌어안고 호세아 예언자의 말의 빌려 그분을 '랍부니', 즉 '낭군'이라 부르며 하느님(하나님)과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확인한다.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를 붙잡지 말라"고 이르신다. 그리스어로는 '나를 계속 붙들고 늘어지지 말라'라는 말로, 이는 단지 손을 대는 정도가 아니라 매달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마리아는 예수께 의존적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더 이상 의존하여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그녀는 종이 아니라 벗이 되어야 하며 예수는 주인이 아니라 낭군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를 높이 들어올리심으로써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믿는 이들을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신다. ...
[ 새로운 눈으로 보는 성서/ Is the Bible True? ] 제1부 성서는 과연 진리인가? 제7장 복음서을 읽는 방법 ~중에서 부분 발췌~ by David Robert Ord & Robert B. Coote, 강우식 譯/ 바오로딸 刊
[ 새로운 눈으로 보는 성서/ Is the Bible True? ]
저자 David Robert Ord는 뉴올리언즈 장로교의 목사이시며,Robert B. Coote는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교 구약성서 교수이십니다. 저자는 개신교 목사와 신학자이시고, 번역을 해주신 강우식님은 가톨릭 신학교를 졸업하신 분이시며 펴낸 곳은 가톨릭 출판사인 바오로딸입니다. 제게는 성서해석에 대한 깊은 동의와 이해를 준 소중한 책으로 새로운 시각과 자세를 제시해준 책으로 소개 드립니다. S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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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ev shel shoshanim (밤에 피는 장미) / Nana Mouskouri
_posted by Mizmor S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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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BIBLE ART GALLERY 가서 놀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근디..
구에르치노인지 게르치노인지..그 화가는
참회하는 막달레나가 우찌 앞 가심을 다 풀어 헤치게 했는지 궁금하다능...
외국어 이름, 우리 국어로 표기하는 거 참 그렇지요?
딱 그 발음도 아닌 것이... 구에르치노^^*
17세기 이탈리아 작가입니다.
근데... 솔직히 질문이 질문이 아니라~
Sophie님께서 주시는 관심 끝 精인것 같습니다. 아닌지요? ^^*
참회하는 막달레나 마리아가 우찌 앞 가심을 다 풀어헤쳤냐고라???
저도 답 아닌 답을 한 번 지 맘껏 해드려 볼까요? ^^*
구에르치노의 또 다른 작품이 밑에 있는 'Magdalen and Two Angels,1622'로군요.
이 그림 속 마리아는 어떠신지요?
좀 더 편히 보시도록 포스트의 그림 위치를 변경했습니다.
작가의 활동 당시 미인상, 여인상을 볼 수 있는 모습이겠지요.
바로크미술의 특징을 잘 살여주는 작가로 이해하고 있는데
제가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여튼 교회미술가로 많은 성화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님의 장난끼어린 질문에 미소 머금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육체, 특히 여성의 육체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예술가들의 찬미의 대상입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다루고 싶은 소재이고요.
미술을 공부하는 학도치고 누드 스케치 한 번 안 해본 사람 없잖아요?
구에르치노도...
그도 당연히 여성의 아름다운 육체, 그것도 여성성의 대표적 특징인 가슴을 풀어헤쳐 그려준 것 아닐까요?
사실 당시 여성들의 복식들을 보면 온 몸을 몇 겹 드레스로 칭칭감고 또 쇼울로 감싸고 하던데...
상대적으로 그림 속의 여성들은 초상화가 아닌 이상, 많이들 벗겨놓죠. ^^*
그런데 마리아는 1세기 여인으로 딱히 속옷이랄 것 없는 통옷을 걸쳐 입고 살던 시대의 여인 아닙니까?
몸부림 잘못하면 훌러덩 벗어져 버릴... 남자나 여자나...
그런 복식을 부르는 용어가 있는데, 튜닉은 아닌 거 같고... 뭐, 여튼 로마시대로 이어지는 헬레니즘 문화 속의 의상.....???
결론적으로 다분히 예술적, 미적 작가의 욕구에서 표현되어진 것이지 않을까 우선 생각해 보았구요,
보다 진지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Mary Magdalene in Penitence,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회개의 진정성, 그 진심, 애통하고 통회하는 그 마음.
우린 종종 '가슴을 찢는다'라는 표현을 쓰지요?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 가슴을 찢으며 회개한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등의 진정성을 대변해 주는 듯한 상징적 이미지...
그래요. 가슴을 찢듯 몸부림쳐 회개하는 여인의 간절한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닐까 덧대어 말해보죠.
그 위에 똑같이 Penitent Magdalene,
회개하는 막달레나를 그린 인형같이 예쁜 엘그레코의 마리아와 비교해 볼까요?
가심을 풀어헤친 마리아가 훨씬 가슴에 와닿지 않나요?
블라블라~
이상은 님께서 하신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작가에게 직접 물어보년 충분히 틀릴 수 있음)
친근히 농을 건내듯 던져주신 Sophie님께 드리는 비전문가 리니의 情입니다.^^*
아항...
회개하느라 가심을 찢는거구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