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피아산방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07:05)새벽5시에 기상하였지만 잠을 내내 설쳤다. 장터목대피소의 난방시설은 지리산 깊은 산중임을 감안한다면 최고의 시설이다. 담요1장을 마루바닥에 깔고 1장은 덮었지만 옷을 그대로 입고 자야 하기에 많이 불편하다. 하여 연신 담요를 걷어차고 벼개 대용으로 삼은 목보호대의 불편함이 내내 잠자리를 엄습한다. 자는둥 마는둥..그렇게 장터목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은 하얗게 지나갔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고 부시시 눈을 뜨니 친구는 벌써 밖을 다녀온 모양이다. 밤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고 눈도 뜨기 힘들 정도의 얼음바람이 불어온다고 한다. 천왕봉일출을 보기 어려울 듯 하다고 하니 의욕으로 충만했던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일출은 못보더라도 새벽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천왕봉에 올라 하늘의 기와 땅의 정기를 받지 않으면 온 보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천왕봉행을 강행하기로 한다.
취사장으로 내려가 따뜻한 물에 국수를 끓여 속을 뜨겁게 한 다음 보온물통에 뜨거운물을 가득 담고 온통 깜깜하거나 하얀 눈길밖에 보이지 않는 천왕봉으로 가는 길을 손으로 발로 더듬어 올라간다. 제석봉으로 올라가는 길부터는 온몸에 강력한 부딪힘으로 와 닿는 북풍한설에 걷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천왕봉은 그리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앞선간 산님들의 불빛을 따라, 뒤따르는 산님들의 불빛을 받고 눈길을 헤쳐나가니 제석봉도 언제 지나쳤나? 천왕봉 가파른 급사면도 언제 올랐지? 할 정도로 무의식적인 산행에 스스로 놀란다.
이 새벽아침에 천왕봉을 오르는데 육신의 피곤함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천왕봉은 다리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6시15분에 대피소를 출발하여 50분만인 7시5분에 천왕봉에 도착하니 마지막 정상석위로 오르기엔 너무 벅차다.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칼바람이 온 몸을 강타하고 얼음 알갱이들이 북사면을 타고 올라와 우박처럼 쏟아진다. 앞서가서 일출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얼음바람을 피해 통천문바위 뒷편에 꽁꽁 숨어 조용히 일출을 기다리고 몇몇 용감한 산님들은 그 와중에도 연신 카메라를 터트린다.
지금까지 산에 다니면서 오늘 새벽처럼 중무장 한 적이 없다. 지난 12월초에 한라산 남벽분기점에서 만난 눈폭풍때도 팬티위에 바지 하나입고, 웃옷은 티셔츠에 고어점퍼만 입었지만 오늘은 출발부터 다르다..상대는 한민족의 기상이 발원한 곳.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겨울 지리산 천왕봉이 아닌가.. 겨울등산용 내의를 위아래 껴입고 장갑도 두켤레나 켜입고, 양말도 두켤레를 껴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플러를 두개나 착용하고 안면마스크와 모자까지 꼭꼭 눌러썼지만 카메라 꺼내들면 바로 손이 얼어버린다. 모두들 일출을 기대하건만 오늘 천왕봉 일출은 못 볼지도 모른다. 여명이 터오지만 하늘은 벗어질줄 모른다. 동녘하늘로 구름이 두텁게 쌓여있어 해는 이미 떠올랐으나 구름위로 솟구치기까지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먼 발치에서 천왕봉을 흠모하며 기다리다 무거운 발걸음을 정상석쪽으로 옮겨 겨우 이렇게 사진 한 장 남긴다.
四月直凌頭流頂/ 4월에 두류산 산마루에 곧장 오르니 萬壑花明鳥語溫/수많은 골짜기에 꽃은 만발하고 새소리 따사롭네. 一嶺近天作高祖/우뚝한 한 봉우리는 하늘에 가까와 산의 조상이 되고 千峯列地爲兒孫/수많은 봉우리는 땅에 줄지어 서서 손자아이 되누나. 坐看白日生眼底/ 앉아서 바라보니 새하얀 해는 눈 밑에서 돋아 오르고 紅霞碧海相呑吐/붉은 안개와 푸른 바다는 서로 삼켰다 토했다 하네. 谷口片雲三夜黑/골짜기 입구의 조각 구름은 밤새도록 검나니 知是人間大霖雨/인간세상의 큰 장마비임을 알았네. 可笑?標橫擔客/가소롭구나, 지팡이 가로 멘 나그네 顧眄塵喧如火聚/티끌 세상 돌아보니 시끄럽기가 불더미 같네.
서산대사(1520~1604)의 천왕봉에 올라.
?攀直上最高峯/ 오르고 올라 곧바로 최상봉에 이르러, 回首塵?一片紅/ 인간세상을 돌아보니 한 조각만하구나. 徒倚烟霞得幽趣/ 구름 속에 기대니 그윽한 운취, 風流不愧晋羊公/ 풍류는 진 나라 양공에게 부끄러울 것 없네.
김돈중(?~1170)고려문신. 동국여지승람
山高步至頂/ 높은 산을 꼭대기까지 걸어 오르니 ?渺飛步天沈沈/침침한 하늘에 뭇 신선들이 날아다니네
이색(1328~1396)의 산고가(山高歌) 도움글 : 장보님 블러그
선조들의 지리산 천왕봉을 사모곡이다. 이렇게 아주 오랜 옛날 GPS도 없고 측량기도 없던 시절부터 지리산 천왕봉은 북녘땅에 지리산보다 더 높고 험한 산이 많았음에도 마음속의 최고봉으로 여겨왔다.
모두들 하산을 서두른다. 조금만 더 있으면 모두들 동상이 걸릴 듯 하다. 장갑을 벗었다 다시 껴입으니 한동안 손가락 끝이 얼얼하고 감각이 없어진다. 친구와 여기까지 동행한 여인들은 모두 대피소로 서둘러 내려가고 난..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천왕봉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지금 보이는 위치가 아마 천왕봉에 있던 성모사자리가 아닌가 싶다. 중산리 통신골방향 저곳이 천왕봉에서 그나마 전체적으로 북풍을 막아주는 곳이기에 성모석상과 마애불이 있던 성모사당이 있던 곳 인듯 하다.
조선 성종3년(1472년) 함양군수인 김종직이 천왕봉에 올라쓴 두류산기행문에는 성모사당에 대해 '사당 건물은 세 칸 뿐이었다. 나무판자로 지은 집으로서 못질이 매우 견고하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려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모'는 석상인데, 눈과 눈썹, 그리고 머리 부분에 모두 색칠을 해 놓았다.'라고 쓰여있다하니 천왕봉 성모석상은 주인인 성모사당이 있던 천왕봉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함양군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에 성모사당을 복원하여 성모석상을 다시 만들어 봉안할 계획을 세웠었으나 그 후로 아무런 결과도 안 나오는 것은 아마도 모조품을 만들어 천왕봉 사당에 모셔 놓는다는 발상자체가 성모석상의 귀향이라는 본래 의미를 함부로 퇴색시키기 때문이다. 중산리 천왕사에 봉안 되어있는 진짜 성모석상이 천왕봉으로 돌아가기전까지는 천왕봉을 옛날 모습으로 되 돌려놓는 것은 아주 요원한 일이 될것이다.(천왕봉 성모사 사진의 원본출처는 지리산국립공원 깃대종)
멀리 반야봉까지 주 능선길은 아직도 어둠속에 잠겨있다. 뒤 늦게 천왕봉으로 오르는 산님들도 모두 낙담하기는 매 한가지다.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도 아직 깨어나지 않고...
통신골을 시작하는 기암괴석들도 아직 취침중이다. 동녘하늘의 두꺼운 구름층은 벗겨질줄 모르고.. 그렇게 천왕봉 일출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운해라도 끼었으면 그나마 아쉬움이 덜 할 것인데 오늘은 일출도 없고 온 산하를 바다로 만들어 버린 운해도 없다.
그저 밤새 내린 눈의 무게만큼 더 두꺼워진 지리산 능선길만 반야봉까지 길에 이어져 있을 뿐이다.
만복대를 따라가는 서북능선길도 보이고..
남덕유산 방향은 어둠속에 갇혀있다.
뒤 늦게 천왕봉에 오른 이도 가끔 있고...
점점 그 수는 늘어나지만 동녘하늘은 그대로다
서둘러 하산 하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내려가며 혹시 제석봉쪽에서 구름위로 솟구치는 해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내 딛는다.
성모석상의 수난사에 이름을 올리는 통신골의 깊은 수렁을 바라보고...
곧 있으면 제석봉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고사목이 처량하게 서 있다.
통천문을 다시 지나고.. 세상의 모든 산신령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드나들지만 지리산의 산신령들은 모두 이 통천문을 지나야만 하늘로 오를 수 있다.
제석봉으로 내려서면서 동녘하늘에 검붉은 낯익은 그림자가 잡히고..
화대종주중인 산님들은 부지런한 걸음으로 대원사로 가며 제석봉에서 일출을 맞는다.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제석봉에서 한참을 기달려 일출을 맞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눈길을 헤치며 천왕봉까지 오고 갔건만 지리산의 눈 바람은 다시 길을 없에 버린다.
고사목 군락지인 제석봉의 아픈상처를 보듬으며..
이제 쓰러져 몇그루 안 남은 고사목의 마지막 정열을 위로한다.
오랜 기다림끝에 마침내 제석봉에서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솟구쳐 올라오는 해를 바라보며...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했다.
제석봉
참을성이 많은 봉우리다 있는 듯 없는 듯 넓게 펑퍼짐하게 저를 받들고 있다 아래로는 뼈다구처럼 드러난 영혼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솟아 올라 내 발걸음 자꾸 멈춰서 돌아보게 한다 덕을 쌓고 넓히고 베풀어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무엇 하나 미워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잠잠하여 마르기만 할 뿐이다 힘겨워하는 산 사람들 등을 밀어 위로 위로 올려 보내고 구름과 바람은 장터목으로 내려 보낸다 제 몸을 스쳐가는 것들 저를 때려도 그냥 그대로 앉아 있음이여 -이성부-
바람은 길이 나 있으면 다시 없애버리고 그 위에 또 새로운 길을 낸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엔 이렇게 눈길이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새 날을 기다리고 있다.
(08:15)2시간동안의 천왕봉 나들이 후 대피소로 돌아오니 엄청난 식욕이 생겨난다. 누룽지와 라면이 아침식사메뉴의 전부이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다.
지리산 아흔아홉골에 골고루 태양이 비추니 이제서야 지리산이 깨어난다. 반야봉까지의 능선길도...그리고 이어지는 만복대의 서북능선길도 모두 깨어난다.
내려설 백무동계곡의 숨소리도 다시 가빠지고..
대피소 전력을 공급하는 풍력발전기 너머로 남덕유산도 같이 깨어난다.
연하봉도 깨어나고..
하늘아래 첫 우체국 장터목대피소의 우체통엔 지리산에서 보낸 편지 2통째를 넣는다.
1박2일동안 같이 지리산으로 들어온 친구도 기쁨의 얼굴이고...
꽁꽁 감싸쥔 얼굴속에 피어난 미소로 나도 화답한다.
(09:40)중산리방향의 산들은 최소한 카메라에서 만큼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이제 명절 고향앞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백무동까지는 5.8km. 2시간 정도면 내려가지만 급하게 내려갈 일 없는 자유로운 산행이다. 천천히 지리산과 같이 호흡하며 내려가기로 하고 장터목 대피소를 나온다.
장터목대피소는 오전9시에 제석봉실과 연하봉실을 비우고 모든 짐을 천왕봉실로 옮겨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5시까지는 대피소 예약없이도 자유롭게 천왕봉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산길에 만난 백무동계곡의 다양한 모습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지리산의 심장 반야봉의 힘찬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장터목대피소도 다시 돌아보고..
지리산 깊은 속살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가락 모양의 소나무의 괴기함에 놀라고..
소담스런 조릿대 숲도 반갑기만 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눈발이 오가며 시야조차 좋지 않았지만 오늘은 막힘없는 새파란 하늘이다. 하루만..아니 몇시간만 시간이 더 빨리 왔다면 천왕봉일출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인데 슬프기 그지 없다,. 그렇게 되니 또 다시 천왕봉일출을 보러와야 된다는 또 하나의 계획이 생겨난다. 이번이 첫번째 도전이니 성공할때까지 천왕봉일출에 대한 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비록 장엄한 천왕봉일출은 못 보았지만 어제 오늘 지리산 눈꽃산행만큼은 정말 원 없이 했다.
(10:46) 약 1시간동안 3.2km를 걸어 내려와 참샘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다. 남은 거리는 2.6km 넉넉히 1시간이면 내려가지 않겠는가. 길에 논이 수북히 쌓여 내딛는 발에 완충작용을 해 주기에 푹신한 흙길을 걷는 편안함이 있었다.
이렇게 수북히 쌓인 눈길을 걸어 본 느낌은 모두 똑 같을 것이다.
(11:11)하동바위를 지나고.
돌탑도 지나고...
백무동을 1.2km남겨놓고는 그 많던 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딛는 발목에서 전해오는 느낌부터가 달라진다. 푹신한 눈길을 걷다 모처럼 만만한 돌길을 만나니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진다.
(11:53)마지막 다리가 나오고.
(11:58)백무동 탐방안내소 통제센터 입구까지 내려왔다. 5.8km를 2시간18분이 걸려 내려왔으니 참샘까지는 빠르게 내려왔으나 참샘이후는 수북한 눈길이 없어지면서 꽤 지루한 길과 시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성모석상이 백무동에도 있다. 원래 있어야 할 천왕봉 정상에서 천년세월 모진 풍상을 버텨오다 근래들어 갖가지 수난으로 지금은 중산리 천왕사에 봉안되어있지만 산청군시천면 두류산악회원들의 성모석상 복귀운동에도 불구하고 성모석상은 원래위치인 천왕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여 최근엔 중산리관광휴양단지에 새로운 성모상을 제작하여 봉안해 놓았으나 지금 백무동에서도 성모석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1월 초순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 백무동으로 하산할 때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공사의 흔적이 있는 것이 아마도 함양군에서 천왕봉정상에 성모사당을 설치하여 새로운 성모석상을 모시려한 계획을 수정하여 백무동 탐방안내소 입구에 세워 놓아 천왕봉 성모석상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것 같다.
백무동의 성모석상.
천왕봉에 있을때의 성모석상. 중산리 천왕사로 옮겨간 성모석상 중산리 관광휴양단지에 새로 만들어진 성모석상
백무동과 동서울터미널을 하루8편을 오가는 고속버스 시간표와 백무동에서 인월면을 거쳐 함양으로 가는 버스시간표. 인월터미널에서는 남원, 전주, 광주로 연결되어 가며 함양에서는 진주,대구,부산으로 연결되어 간다. 그리고 백무동에서 대전으로도 매일 1편의 차량이 운행된다. 백무동 주차장에는 주차요금을 징수한다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으나 현재는 무료개방이다.
점심은 인월면소재지 시장내에 있는 30년전통 삼대째 이어온 원조토종순대국밥집인 시장식당에서 은은한 문풍지 조명아래 매콤한 흑돼지국밥과 순대국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지리산 백무동탐방안내소쪽으로 하산하여 지리산IC로 빠져나가기전에 있는 남원군 인월면 소재지에서 목욕도 하고 가까운 시장통에 들러 매콤한 흑돼지국밥으로 기력을 회복하고 돌아가면 더 멋진 산행이 되지 않겠는가. 시장식당 ☎063-636-2353 ☏011-670-3647 대표 최병선 주소 :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251번지(시장내)
지리산 천왕봉으로의 1박2일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광주로 돌아오면서 또다른 천왕봉으로의 일출산행을 계획해 본다면?... 다음 산행은 1월29일 덕유산이며 1박용 취사용품과 간이의자를 스폰한 문흥백두산악의 석해경대표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굿뉴스피플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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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impro의 반백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simpro
첫댓글 내가 갔다 온건 아니고 다른 사람 글이지만, 재작년 겨울, 1박2일 갔을때(김영관.허현도 같이) 카메라도 안 가지고 가고 눈밭에서 고생했던 생각도 나고,....
경치와 시 구절이 탐이나서 빌려 왔어요. 즐감 하시고 혹시 함 가시고 싶은 분 ????? 뜻 한번 모아 봅시다. 아 !!!! 볼수록 또 가고 싶어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2.01.26 12:48
이삼수를 산행대장으로 추울 때 말고...
삼수,재미없다고 안 갈라 할낀데.
재청이요,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