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21)
아멘!
성도는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용서도 어려운데 용서하고나서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그리고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도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 받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가 무엇이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오늘 요셉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판 형들, 원래는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그 형들, 원수일 수밖에 없는 형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요셉이 자기들의 악을 갚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아버지가 자기들을 용서하라고 했다며 거짓말까지 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 자기들은 요셉의 종이라고 합니다.
악했고 지금은 비굴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 형들을 요셉은 위로합니다.
간곡한 말로 형들을 위로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형들과 형들의 자녀를 기르겠다고 하면서 간곡한 말로 형들을 위로합니다.
충분히 미워하고 충분히 원수를 갚을 수 있었는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알았던 요셉은 도리어 형들을 위로하며 안심시킵니다.
용서할뿐 아니라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하며 안심시킵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진정 원수 갚은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의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용서며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그가 누구든간에 자기에게 상처를 주면 잘 용서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내 뜻과 다르거나 내 뜻이 막히면 그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를 원수로 여깁니다.
원수로 대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충분히 원망할만 하고 원수를 갚을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형들을 용서하고 도리어 불안해 하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합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요셉처럼 그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따뜻하게 대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아니 모를지라도 간곡한 말로 위로하고 안심시키고 사랑을 표현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절)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