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일체경(一切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때 생문(生聞)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서로 문안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이른바 일체(一切)라는 것은 어떤 것을 일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란 곧 12입처(處)에 의해 생기는 것이니,(12처는) [안(眼)과 색(色)], [이(耳)와 성(聲)], [비(鼻)와 향(香)], [설(舌)과 미(味)], [신(身)과 촉(觸)], [의(意)와 법(法)]이다.
一切者,
謂十二入處,眼色、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
是名一切。若復說言此非一切,
이것을 일체라고 하느니라. 만일 또 어떤 사람이 '그것은 일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사문 구담이 말하는 일체를 버리고 따로 다른 일체를 세우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말만 있을 뿐이니, 물어도 알지 못하여 그 의혹만 더 커질 것이다. 왜냐 하면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319경>을 보면 '경계'라는 말이 나오지요.
세존께서 말하는 경계란 무엇인지요?..
그런 경계를 강조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참고]
경(境, 산스크리트어: artha, 산스크리트어: visaya)은 경계(境界)의 의미이다. 경계라는 낱말에는 세력이 미치는 범위와 인식작용의 대상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따라서 5경은 5근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이자 5근의 인식작용의 대상인 사물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색경(色境, 색깔과 모양과 크기)은 안근(眼根)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이며, 또한 안근(眼根)의 인식작용의 대상이다. //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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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정글님은 [경계]를 벗어난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境界)의 일차적인 의미는 색성향미촉 5경(境)과 그것들을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법경으로 6근의 대상계가 되는데,
<319경>에 나오는 경계는 일체를 의미한다..
" 나는 이제 사문 구담이 말하는 일체를 버리고 따로 다른 일체를 세우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말만 있을 뿐이니,
물어도 알지 못하여 그 의혹만 더 커질 것이다.
왜냐 하면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면서 일체는 색성향미촉법만이 아닌
"[안(眼)과 색(色)], [이(耳)와 성(聲)], [비(鼻)와 향(香)], [설(舌)과 미(味)], [신(身)과 촉(觸)], [의(意)와 법(法)]" 에서 보듯
6내입처와 6외입처가 결합되어 있는 일체다.
예를 들어 눈으로 무엇을 보면 보았다는 게 생기면, 그것을 인식하려(보려)는 자가 일어나는데..
여기서 경계란 안입처와 색입처가 만나 생긴 게 된다.
@효진 요기서 문젠..
일반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남방 상좌부에서도 6외입처를 6경으로 보아 외부에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 "3차원 현실은 환상입니다"에서 환상이라 하는 이유를..
3사화합에서 식의 대상에 해당하는 명색이.. 6외입처가 아닌 6내입처가 결합된 것이기에 환상이 되는 것으로 본다.
6외입처가 외부에 있는 대상 그대로라면.. 그때 대상은 환상이 아닌 실재라 해야만 한다.
이제 부터는 다른 입장에서 경계를 알아보자..^^
눈좋은 젊은이와 눈이 어두운 노인이 있을 때 이 둘에게 보이는 경계는 같은 가 다른가?..
다르다고 할 밖에 없다.
눈좋은 자에게는 멀리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여 그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눈나쁜 자에게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게 보여 그것을 바르게 설명하거나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권위나 전통, 다수가 경계(=진리)를 설정하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경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경전에 나와도 나의 경계로 삼지 못했으면.. 믿음 에 의지한 것일 뿐 내 경계가 아니며, 상대에게 경계는 더욱 아니다.
건강검진할때 의사가 시력검사판을 늙은이용 따로 젊은이용 따로 뵈줍니까?
@현불사신도회 그러니 부처님을 약사여래에 비유하지만 아주 특별한 의사입니다.
세존께서는 건강검진할때 의사와는 달리 상대 수준에 맞추어 설법하셨기 때문입니다.
근본경전에 말라식이나 아뢰야식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당시 제자들의 경계에 아뢰야식은 들어갈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하리라.
그 말은 근본불교를 말하자는 데 아뢰야식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말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뜻이다.
<39. 종자경>에 나오는 [취음구식]이 나오는데.. 이때 식은 5온식을 낼 수 있는 식으로 본다. 곧 아뢰야식이라고 이름이 될 근거를 제공하는 경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함경에 나오는 식이란 말은 후에 말라식이나 아뢰야식이 불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면 될 것이다.
전오식과 같은 5온식을 낼 수있은 선험적 식은 한동안 아트만적인 식으로 여겼지만 수만년 진화과정 동안 축적된 역시 경험일 뿐인 것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식은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