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환갑인 고교 선배님께서 오늘 아침에 이런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을 내서' 내게 오는 사람과
'시간이 남아서' 내게 오는 사람을
구분하며 살아야 한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뭔가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글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대인관계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국내든, 국외든 자주 여행을 다니는 편이다.
이제는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랑'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類類相從'이란 말은 그래서 '진리'다.
또한 '영혼의 코드'가 맞지 않으면 대화도, 간만의 해후도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
모름지기 '지천명'이 지났으면 이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시간을 내서' 내게 오는 사람과 '시간이 남아서' 내게 오는 사람을 이제는 구분해야 한다.
그럴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모두에게 똑같은 '열정'과 '관심'을 쏟을 수는 없는 법이다.
역으로, 내가 '시간을 내서' 찾아가는 사람과 '시간이 남아서' 방문하는 사람과는 분명 그 '우정과 감사'의 '깊이'도 다름을 절감한다.
부인할 수 없다.
현재 내 휴대폰엔 5천명 이상이 저장되어 있다.
은퇴하면 곧바로 90%를 정리하여 5백명 이하로, 고희가 넘으면 다시 200명 이하로 줄일 생각이다.
귀천을 앞둔 자의 겸손한 자세이자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고요', '사색', '집필', '자연', '나눔'.
이런 몇가지 테마에 완전히 동화된 채 살고 싶다.
'바람같이', '이슬같이' 내 인생의 종장을 고요함으로 모자이크하고 싶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일 테니 이 부분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겠지.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그분의 주권과 허락하심을 겸허히 수용하고 싶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 기도하고 있다.
굽이굽이 이어진 인생의 수많은 고갯길들.
나도 지금 내 여정의 7부 능선쯤을 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7부 능선은 여러모로 중요한 분수령이다.
외부적으로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때지만 내부적으로는 장성한 자녀들의 연애, 결혼, 출산 등으로 인해 새로운 혈육이 생기는 축복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만나야할 사람은 역시 '가족뿐'임을 고백한다.
어젯밤, 4월을 마무리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당역에서 우리가족 네 명이 뭉쳤다.
스스로의 힘으로 전셋집을 얻어서 따로 살고 있는 청년들.
어찌 아니 그립겠는가.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당역에서 만난다.
단골집에서 맛있는 음식에 술도 한 잔씩 나눴다.
그동안 교류하지 못했던 대화들이 그칠 줄을 몰랐다.
식후에 자리를 옮겨 커피까지 그리고 카페에서 또 쉼없는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고 저마다 분주한 삶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변함없는 인생의 우선순위 1번은 역시 '가족'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 고맙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청춘들이 미덥다.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3월 중순에 'EBS 극한직업'이란 프로그램에서 전파를 탔던 아들의 방송내용을 동영상으로 다시 보았다.
방송에 나오기까지 며칠간의 촬영과 편집과정 등, 막전막후의 세밀한 내막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그 프로그램을 품평하며 우리는 계속 키들거렸다.
마냥 행복했고 감사했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자 '부처님 오신 날'로 공휴일이다.
모두에게 웃음꽃과 생의 찬미가 충만한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4월 마무리 잘 하고, 더욱 뜨거운 열정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았으면 좋겠다.
온누리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