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70) - 볼거리가 풍성한 강경 나들이
어제(10월 24일)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싱강(霜降), 바야흐로 가을이 무르익는다. 블로그에 오른 이해인의 시, ‘익어가는 가을’을 읊으며 우리 모두 충실하게 익어가기를 비는 마음이다.
익어가는 가을
이해인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사진작가인 지인의 작품, 포도밭에 내려 앉은 가을하늘
지난 토요일, 가까운 인척들과 함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을 찾았다. 열차 타고 수없이 지나면서도 강경 땅을 밟기는 처음, 일행 모두 처음 찾는 고을이다. 오전 10시 반쯤 강경역에 도착하니 예보에 없는 빗방울이 스친다. 가랑비를 피하여 식사부터 하기, 앞선 여행자가 인터넷에 올린 정보를 참조하여 역에서 가까운 곳의 해물국수전문점으로 향하였다. 식당은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로 북적, 이내 식탁에 오른 푸짐한 양푼국수가 먹음직스럽다. 식사 후 밖으로 나오니 점심시간에 맞춰 찾은 고객들이 무리를 지어 입장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맛 집으로 알려진 곳인 듯. 어느새 맑은 하늘이다.
역에 도착하여 얻은 지역정보, 강경은 조선후기부터 해방 전‧후까지 2대 포구(원산항, 강경포) 전국 3대 시장(평양 시장, 대구서문시장, 강경시장)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200년 넘게 이어온 국내최대젓갈축제가 열리고 있는 중(10월 19~22일). 식당 가까운 곳의 버스터미널에 들러 강경의 볼거리들을 안내하는 게시물을 살폈다. 성당과 교회가 여럿인 것이 특이하고 금강하구로 연결되는 갑문과 주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녀봉, 읍내 곳곳에 산재한 근대문화유산들이 일목요연하다.
국내최대젓갈축제가 열리고 있는 금강 둔치의 모습
주민에게 옥녀봉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멀리보이는 언덕을 가리키며 둑길 따라 쭉 올라가라고 일러준다. 그 길 따라 걸으니 강경갑문 지나 금강하구의 넓은 둔치에서 요란하게 펼쳐지는 젓갈축제장 입구에 이른다. 그 맞은편이 옥녀봉.
옥녀봉은 평지에 돌출한 높이 40여 미터의 낮은 언덕, 계단을 올라 언덕마루에 이르니 19세기말에 인천에서 강경에 이르는 뱃길 따라 이곳을 찾은 선교사가 세운 강경침례교회 최초예배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읍내를 한 눈에 조망하는 경관이 아늑하다. 옥녀봉 길 따라 읍내로 이어지는 길목은 근대역사문화거리, 한옥으로 보존된 성결교회예배당,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서린 강경성지성당과 김대건 신부 사목지, 구 연수당 건재약방, 오랜 역사를 지닌 관공서와 초중고교들을 지난다. 성당주위의 수많은 젓갈상점들이 눈길을 끌고 강경여중‧고는 스승의 날 발원지로 소개되기도.
강경침례교회 최초예배지의 모습
읍내를 돌아보며 인상 깊게 새긴 기록 두 가지.
1) 조선시대부터 강경은 상거래가 크게 이루어지는 곳으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09년에 조사된 민적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의 직업별 분포는 농업이 약 84%로 절대다수이고, 상업은 6%에 지나지 않았는데 강경은 농업 24%, 상업 27%로 다른 지역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2)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서울 마포를 출발하여 한 달 만에 상하이에 도착, 8월 17일에 그곳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2주일 뒤 귀국길에 올라 11월 중순에 강경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듬해 5월 14일,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황해도로 향하던 중 체포되어 해주 감영을 거쳐 우포도청으로 압송되어 수많은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으니 이때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해주 감영에서 한 마지막 진술, ‘사람이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것은 결코 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一生一死 人所不免) 이제 저는 하느님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이를 살피노라니 얼마 전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아시아인 최초로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성상이 세워진 것, 논산에 그의 이름을 딴 대건고등학교가 있는 것이 떠오른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 후 발을 디딘 강경의 행적
아내의 지론, ‘이 세상에 만만한 사람은 없다.’ 이를 원용한 나의 견해, ‘이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도, 나라와 고장도 없다’ 하루 동안의 나들이를 통하여 강경에 서린 범상치 않은 역사와 기상을 확인하는 발걸음이 뿌듯하다. 아름답도다, 고을마다 간직한 풍경 너머 숨결이여!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개로 나올지니라’(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