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동진(和光同塵)
화광은 빛을 늦추는 일이고, 동진은 속세의 티끌에 같이 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혜를 자랑함 없이 오히려 그 지혜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동화함을 말한다. 즉 재덕을 감추고 세상과 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和 : 화할 화(口/5)
光 : 빛 광(儿/4)
同 : 한 가지 동(口/3)
塵 : 티끌 진(土/11)
출전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56章
불교에서 부처가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해 부처의 본색(本色)을 감추고 속세에 나타나는 것을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뒤부터 이 노자(老子)의 말을 받아들여 썼다고 보아야 한다.
이 성어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56장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을 말하지 않으며, 앎을 말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 아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진정한 앎이 있는 사람은 그 이목구비를 틀어막고 지혜의 문을 닫으며, 지혜의 날카로움을 꺾으며, 지혜로 인해 일어나는 혼란을 풀고, 지혜의 빛을 감추어 나타내지 않고(和其光), 속세의 티끌과 하나가 된다(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한다.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그러므로 이와 같이 현동(玄同)의 사람에 대해서는 친해질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으며, 이득을 줄 수도 없고 해(害)를 줄 수도 없으며, 귀(貴)하게 할 수도 천(賤)하게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서 가장 귀(貴)한 것이 된다.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為天下貴.
노자에 의하면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빛, 자신의 지덕(知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속세와 어울린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유래됐다. 실속 없는 말이나 얕은 지식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뜻으로 쓰인다.
화광동진의 광(光)은 어떤 개별 대상을 배타적으로 비추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빛이다. 그러나 노자에 따르면 도는 그런 게 아니다.
이 세상에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니 자신만의 빛을 포기하고 다른 빛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차이가 드러나지 않게 처신하는 게 좋다.
讀老子 / 白居易
노자를 읽으며 / 백거이
言者不如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말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의 침묵만 못하다고, 내 이 말을 노자에게 들었네. 만약 노자 역시 아는 사람이라 한다면, 무슨 까닭에 (도덕경) 5천이나 되는 글을 지었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