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訃告 문자가 떴다.
앞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다.
사흘 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딸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었는데....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치원 원장으로 오래 일하셨고 작년에 제주에 오셨다.
딸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해 왔는지 한국말이 능숙했지만 할머니는 좀 어눌했다.
하지만 '언니, 들어 와' 초대 받아 가 보면 할머니는
아이패드를 세워 놓고 인터넷 서핑에 빠져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집 정리하고 와야겠다고
'엄마를 부탁한다'며 한 달간 집을 비우고
'아들 결혼식에 서울 간다'고
'갑자기 부산 출장을 가게 됐다'는 등으로 2,3일씩 부탁 받을 때는 곤혹스러웠다.
할머니가 거동은 하지만 다섯시에 일 끝나는 내게는
부담이 됐다.
홈쇼핑으로 부식을 배달받았는지 할머니는 잘
지내셨고
가끔, 없는 솜씨에 채소를 잘게 썰어 삼삼하게 무치고 곰탕, 갈비탕을 포장해 와 냉장고에 넣어 두기도 했다. 입맛에 맞을런지도 걱정됐는데
복도에서 왔다갔다 운동하시는 할머니와 마주치면
'나물 잘 먹었어'
'국 잘 먹었어' 고마워 하셨다.
운전하는 도중에도 전화를 걸어 와
'언니,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 집에 좀 들어가 봐'
비밀번호를 따고 방에 들어가 보면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곤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언니, 엄마가 코피 터졌는데 지혈이 안돼.'
119를 부르고 한밤중에도 나를 당황하게 하는 일이 한두번 아니었다.
한동안 할머니가 안 보여 안부를 물으니
병이 악화돼 '기저귀를 차고 계신다'고 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창가 쪽에 놓여
있는 싱싱하던 넝쿨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넝쿨이다.
할머니가 복도 끝 문턱에 올려 놓고 물과 영양제로
정성껏 키우던 초록색 잎사귀들이 주인 손을 잃고 축 늘어졌다.
몇 번 물을 줬지만 살아나지 않는다.
할머니 병환이 깊어질수록 넝쿨은 까맣게 죽어갔다.
어느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오는데 넝쿨은
빙빙 감겨 화단 구석에 버려지고 화분은 플라스틱
수거함에 버려져 있었다.
청소 아줌마가 치운 모양이다.
왠지, 할머니의 삶이 다 한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휠체어와 어르신보행기는
계단 손잡이에 묶여 먼지에 쌓여 있다.
할머니의 자존감은 지팡이만 고집했다
같이 동네길을 걷고
농담도 주고받고
항상 빙그레 웃으시던 예쁜 할머니.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첫댓글 좋은일
많이하섰내요
마음이 따라주어야하는일이쟌아요
저도 아파트 살때는
옆집아주머니가 항상칭찬해줬어요
별거아닌데 의지가
많이됐던거 같아요
심성이 고운아줌마였는데
제가 이사를 한다하니
무척섭섭해 하셨어요
직장 다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무 도움도 못 드렸지요.
몇 번 요강을 치운 것 외에는.
이웃간에 情이라도 나눠야
살 맛이 나지 않겠어요.
감사합니다.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아프고 4개월 만에 돌아가셨네요.
그래도 큰 고통없이 하늘로 가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속에서 아우라님의 마음을 읽고 갑니다.
오랫만에 안부인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올해 90세인지라 큰 아쉬움은 없지만
아마 넋은 우즈베키스탄의 넓은 광야와
자신이 오래 일했던 유치원을 뱅뱅 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우라님~
심성이 착하십니다.
좋은일 하셨습니다.
친정어머니도 90세에 돌아가셨는데
효도를 못했습니다.
무더위에 고생하지 않고
덜 고통스럽게 가신 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잘만나서 ㅎ암튼 수고하셨어요
복지관에서 놀다 오신 할머니 놀려
줄 심산으로
"어르신, 거기 할으방들도 많이 있수광?" 했더니
"아바이들 있듸."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쿠 ~
눈물 나려 하네.
잘 읽었습니다.
정 주고받던 구십 앞집할머니가 돌아가셨군요.
복도에서 왔다갔다 운동하시다가
화분과 힐체어와 어르신보행기를 남기고...
수고하셨습니다
길가 화단턱에 앉아
지팡이 잡은 손에 턱을 괴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시던 할머니.
스티로폼을 드렸더니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앉았던 자리만 움푹 들어간 누런 스티로폼이
한동안 화단 구석에 세워져 있던데
아마 쓰레기통에 들어갔는가 봅니다.
따스한 삶의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요즘은 시멘트처럼 각박하기 만한 도시인들 인심이 보통인데 이웃 간에 소소한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은 주위에 귀감이 될만 합니다. ^^~
보통은 다 그렇치 않을까요.
예전에 시골에선 결혼이나 장례식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다들어
거들어 주곤 했지요.
그때는 5일장도 했고
결혼식 때도 집에서 돼지 10마리도 잡아
잔치 하고 했으니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