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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를 본다. 이제는 소년이다. 흰 아마포로 생각되는 감으로 만든 것으로 발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었다. 그 위에 밝은 빨강의 장방형 천을 걸쳤다. 귀의 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는데, 머리털은 그가 더 어렸을 때 보았을 적보다 더 짙은 빛깔이다.
나이에 비하여 매우 큰 건장한 소년이다, 그러나 얼굴은 정말 어리다. 예수는 나를 바라보고 손을 내밀면서 미소 짓는다, 그러나 벌써 어른이 된 예수에게서 보는 것과 같은 다정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근엄한 빛을 띤 미소이다.
예수는 혼자 있다. 지금은 다른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는 줄곧 오르락내리락 하는 돌이 많은 작은 길 위에 있는 작은 담에 가까이 있다. 그 길 가운데에는 비가 올 때에는 개울로 변하는 움푹 파인 곳이 있다.
지금은 날씨가 좋기 때문에 말라 있다. 나도 담으로 가까이 가서 예수가 하는 것과 같이 주위와 아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줄이 고르게 서 있지 않은 일단의 집을 본다. 높은 집, 낮은 집이 있고, 향이 각각 다르게 앉아 있다.
마치 우중충한 땅에 흰 조약돌 한 줌을 던져놓은 것과 비슷하다. 서투르기는 하지만 꽤 들어맞는 비유이다.
큰 길 작은 길들이 이 흰 가운데에 정맥과 같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담 사이에는 나무들이 보인다. 꽃이 핀 나무도 많고, 새잎이 덮인 나무도 많다. 봄인가보다.
내가 보아서 왼쪽에는 건물들이 있는 세 개의 질서 정연한 단으로 되어있는 큰 집단이 있고, 또 탑들과 마당들과 회랑들이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더 높고 장엄하고 매우 화려한 둥근 지붕들이 달린 건물이 있는데, 그 둥근 지붕들은 구리나 금같은 금속을 입힌 것같이 햇빛에 반짝인다.
이 전체를 요새인 것처럼 M자 모양의 총안이 꼭대기에 장치된 성벽이 에워싸고 있다. 꽤 좁고 불쑥 내민 길에 걸쳐서 세워진 다른 탑들보다 더 높은 탑이 이 넓은 집단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엄격한 보초와도 같다.
예수는 이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처음에 하던 대로 다시 등을 담에 기댄다. 그리고 건물 집단 맞은편에 있는 작은 산, 그 밑에까지는 집들이 있다가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산을 바라다본다.
거기에서 길이 고리 모양으로 되어 끝나고, 그 저쪽으로는 장방형 돌을 불규칙적이고 고르지 못하게 간 길 밖에 없다. 그 돌들은 집정관시대의 로마의 도로에 깔았던 돌처럼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
오히려 비아렛지오(Viareggio-이탈리아의 도시)의 오래된 인도에 깔려 있는 전형적인 돌들과 비슷하다(그 돌들이 아직 비아렛지오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르게 깔리지는 않았다. 나쁜 길이다.
예수의 얼굴이 하도 근엄하게 되어서 나는 그 작은 산 위에서 그의 침울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헐벗은 작은 산이다. 그뿐이다. 그런데 나는 예수를 잃었다.
과연 내가 뒤돌아 보았을 때 예수는 거기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환상을 보면서 깜빡 졸았다.
‥‥이 환상의 기억을 가슴에 간직한 채 잠이 깨었을 때, 모든 사람이 자고 있기 때문에 기운과 평온을 좀 되찾은 다음, 내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느 곳에 가 있게 되었다.
마당들과 샘들과 집들이 있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자들이다 사실 그것들은 집보다는 정자들 같다. 거기에는 옛날 히브리사람들 식의 옷을 입은 많은 군중이 있고 몹시 시끄럽다.
주위를 둘러보고, 내가 예수가 바라보고 있던 그 건물 집단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연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총안이 있는 성벽과 보초를 서는 것 같은 탑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한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에는 매우 아름답고 넓은 회랑들이 기대서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고 있는 많은 군중이 있다. 나는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펄럭이는 긴 옷을 입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가슴 꼭대기와 이마와 다른 부위 곳곳에 귀금속 판을 달고 있는 사제들이 보인다. 대단히 비싼 띠로 허리를 졸라맨 매우 넓은 흰옷 여기저기에서 그 금속판이 번쩍인다.
그리고 그보다 덜 요란스럽게 차린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도 역시 사제계급에 속한 사람들 같으며, 더 젊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들이 율법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인물들 가운데를 방황하고 있으면서, 내가 거기 무슨 볼일이 있는지를 모른다. 나는 신학 토론이 시작된 박사들의 어떤 집단에 가까이 간다. 많은 무리도 그리로 가까이 온다.
“박사들” 가운데에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가믈리엘(Gamaliel)이라는 어떤 사람과, 토론할 때에 가믈리엘을 지지하는 거의 소경이 되다 시피한 다른 노인 한 사람이 낀 집단이 있다.
이 노인은 힐렐(Hillel)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이름 첫머리에 기식음-氣息音-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H자를 붙였다), 가믈리엘이 그를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다루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선생이거나 친척인 것 같다.
가믈리엘의 집단은 더 폭이 넓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더 수효가 많은 다른 집단은 쉬암마이 ( Sciammai)라는 사람이 지휘하는 집단으로 사납고 퇴보적인 비타협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비타협성을 복음성서는 매우 명백하게 설명한다.
많은 제자의 집단에 둘러싸여 있는 가믈리엘은 메시아의 내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니엘의 예언에 의거하여 그는 메시아가 벌써 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예언에서 알려준 바 있는 성전 재건 법령으로부터의 70주가 한 10년 전에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쉬암마이는 성전이 재건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노예상태는 더 심해졌을 뿐이고,
예언자들이 ‘평화의 왕’이라고 부르는 메시아가 가져왔어야 할 평화가 세계에도 없고, 특히 원수에게 압제를 당하는 예루살렘에는 평화의 그림자도 없다고 단언하면서 가믈리엘을 공격한다.
쉬암마이는 적이 일체의 애국적 봉기를 그들의 검으로 진압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로마 군대가 확 들어찬 안또니아(Antonia)탑이 내려다보는 성전의 경내에까지 감히 그의 지배를 몰고 온다고 주장하면서 가믈리엘을 공격한다.
궤변투성이의 토론이 질질 끈다. 양쪽 대가가 박식을 자랑해 보이는데, 그것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듣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 의도는 명백하다.
빽빽한 그 열성분자들 가운데에서 또렷또렷한 어린아이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가믈리엘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군중과 박사들 무리의 동요가 보인다. 방해자를 찾는다. 그러나 찾을 필요도 없다. 방해자는 숨지 않고, 스스로 나타나 ‘선생들’ 집단 쪽으로 가까이 간다.
나는 소년 예수를 알아본다. 예수는 총명한 눈을 반착이며 자신만만하고 솔직하다.
“너는 누구냐?” 하고 사람들이 묻는다.
“율법이 명하는 것을 행하려고 온 이스라엘의 아들입니다.”
과감하고 자신있는 대답으로 인하여 예수는 호감을 얻고 찬성과 호의를 나타내는 미소를 받게 된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소년에게 흥미를 느낀다.
“이름이 무엇이냐?”
“나자렛의 예수입니다.”
쉬암마이의 집단에서는 호의가 줄어든다. 그러나 가믈리엘은 더 친절하게 힐렐과 동시에 대화를 계속한다. 아니 그보다도 가믈리엘이 노인에게 “저 아이에게 뭘 좀 물어보십시오” 하고 공손하게 말한다.
“네 확신의 근거는 무엇이냐?” 하고 힐렐이 묻는다(나는 길이를 줄이고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대답 첫머리에 이름을 써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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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시기에 대해서 그르칠 수가 없는 예언과, 예언이 실현될 시간이 되었을 때 같이 일어났던 표징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70주가 지났을 때는 카이사르가 그의 영토에 호구조사를 명령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가 평온하고 팔레스티나가 조용하였습니다. 그의 제국에 전쟁이 있고 팔레스티나에 반란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간 것과 같이, 성전의 완성으로부터 62주 더하기 1주라는 다른 기간도 끝나 갑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바쳐지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은 백성에게 그 예언의 계속이 실현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심을 하실 수 있습니까? 동방의 현자들이 보았고 바로 유다의 베들레헴의 하늘에 와서 머물렀던 별을 기억 못하십니까?
그리고 야곱 시대부터 근후로 예언들과 환상들이 그곳을 베들레헴 출신인 다윗을 통하여 야곱의 아들의 아들의 또 아들인 메시아의 탄생을 맞아들이기로 된 곳으로 가리킨다는 것을 기억 못하십니까?
순결과 믿음으로 인해서 눈이 뜨이고 귀가 열렸던 동방의 현자들은 그 별을보고 ‘메시아’라는 그 별의 이름을 알아차리고, 세상에 켜진 빛에 경배하려고 왔습니다.”
창백한 시선을 한 쉬암마이: “너는 베들레헴 에프라타에 별이 나타났을 때 메시아가 났다고 말하는 것이냐?”
예수 :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쉬암마이 : “그러면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얘야, 너는 헤로데가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서 난지 하루에서 2년까지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게 했다는 것을 모르느냐? 성서를 그렇게도 잘 알고 있는 너니까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헬이 제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것이다’하는 이 말도 알겠구나. 죽어가는 라헬의 울음을 거두어들인 베들레헴 의 산과 골짜기는 그 울음소리로 가득하였고, 어머니들이 학살된 그들의 아이들을 슬퍼하며 되풀이하였다. 그 어머니들 가운데에는 분명히 메시아의 어머니도 있었다.”
예수: “노인장 어른, 틀리셨습니다 라헬이 ‘고통의 아들’을 낳았던 그 곳에서 새로운 라헬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 그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아들,
그의 왕권 아래 모든 백성들을 모으고 그들을 가장 무서운 노예상태에서 해방하기로 되어 있는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라헬의 울음은 호산나로 변했습니다.”
쉬암마이 : “그렇지만 그가 죽었으면 어떻게 그렇게 되겠느냐?”
예수 : “엘리야에 대한 말씀을 읽지 못하셨습니까? 엘리야는 불 수레에 실려서 들려 갔습니다. 그런데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임마누엘이 당신 백성의 메시아가 되도록 그를 구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발을 적시지 않고 그의 땅에 도달하도록 모세 앞에 바다를 갈라놓으신 그분이 당신의 아들, 당신의 그리스도를 잔인한 사람에게서 구하라고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지 못하셨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확실히 말합니다만, 그리스도는 살아 있고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때가 오면 그의 능력을 가지고 나타날 것입니다.”
마지막 말을 할 때에 예수의 목소리는 쩡쩡 울려 공간을 채운다. 그의 눈은 한층 더 빛나고 능력과 약속으로 자극되는 것 같으며, 그는 어떤 선서를 하는 것처럼 오른팔과 손을 내민다. 그는 한 소년이다. 그러나 어른과 같이 엄숙하다.
힐렐 : “얘야, 누가 그 말을 가르쳐 주었느냐?”
예수 : “하느님의 성령입니다. 저는 사람인 선생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 입으로 들으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힐렐 : “얘야 ! 너를 자세히 보게 우리 가운데로 오너라. 네 믿음에 접하니 내 바람이 다시 살아나고, 내 영혼이 네 영혼의 태양으로 빛난다.”
그러면서 예수를 가믈리엘과 힐렐 사이에 있는 높은 의자에 앉히고, 그더러 읽고 해석하라고 두루마리들을 갖다 준다. 이것은 규정에 따른 시험이다. 군중이 몰려와서 듣는다.
예수는 앳된 목소리로 읽는다.
“‘내 백성아, 마음을 달래라. 예루살렘의 노예생활이 끝났으니, 그의 마음에 말하고 그를 위로하여라‥‥ 광야에서 외치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주의 길을 닦아라‥‥그러면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쉬암마이 : “나자렛 아이야, 보아라 ! 여기서는 노예상태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같이 노예생활을 한 적이 일찌기 없었다. 여기에서 선구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구자가 어디 있느냐? 너는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다.”
예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선구자가 권고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과 선생님 비슷한 분들에게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은 주의 영광을 못보실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옹졸함과 오만과 허위가 선생님을 보고 듣지 못하게 방해하겠기 때문입니다.”
쉬암마이 : “선생님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예수 :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 이해관계 위에는 주님의 이해관계가 있고, 제가 진리의 아들인 만큼 진리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 덧붙여 말씀드리지만, 예언자가 말하고 저도 말하는 노예상태라는 것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노예상태가 아니고, 완전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완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메시아의 공로로 사람은 그를 하느님께서 떼어놓은 악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인호가 일체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그의 영원한 통치에 복종하는 모든 영에 박힙니다.
다윗 가문이여, 네게서 난 싹으로 온 땅을 뒤덮고 하늘에까지이르는 큰 나무가 된 네 앞에 모든 민족이 머리를 숙일 것이다. 하늘과 땅에서 모든 입이 그의 이름을 찬미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축성을 받은 사람이며 평화의 왕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모든 피로한 영혼을 쉬게 하고 굶주린 모든 영혼을 배불리 먹여줄 그 사람, 땅과 하늘 사이에 계약을 맺을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에집트에서 나오게 하셨을 때, 아직도 그들을 종으로 취급하면서 그들과 맺으셨던 것과 같은 계약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에 구세주의 공로로 그들에게 새로 부어진 은총과 더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생각을 새겨 넣으면서 맺는 계약입니다.
구세주를 통하여 모든 착한 사람이 주님을 알 것이고 하느님의 성전이 다시는 쓰러지지도 헐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쉬암마이 : '야 ! 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말아라! 다니엘을 상기하여라. 다니엘은 그리스도가 죽은 다음 성전과 성도가 그를 위해서 올 국민과 두목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는 하느님의 성전이 다시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구나! 예언서들을 존중하여라!“
예수 : “선생님께 확실히 말씀드립니다만, 예언자들보다 나은 어떤 사람이 있는데 선생님은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알지 못하시고 후에도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것이 모두 참말이라는 것을 선생님께 단언합니다. 진짜 성전은 다시는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같이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고, 세상 마칠 때에는 하늘에서 살 것입니다.”
힐렐 : “얘야. 하깨는 이렇게 말한다. ‘‥‥뭇 민족이 바라는 이가 올 것이다. 내가 내리는 영광이 이 성전에 차고 넘치리라, 그리고 지금 짓는 이 성전이 예전의 성전보다 더 영화로올 것이다’ 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 네가 말하는 것과 같은 성전인 모양이구나?'
예수: “선생님, 그렇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선생님은 정직하시기 때문에 빛을 향해 가시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제헌이 완성되면 평화가 선생님께로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악의가 없는 이스라엘의 자손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믈리엘 : “얘 예수야, 예언자들이 말하는 평화 말이다. 만일 전쟁이 와서 이 백성을 파멸시키면 어떻게 그 평화를 바랄 수 있단 말이냐? 말 좀해서 나도 밝혀 다오.”
예수: “선생님은 그리스도가 나던 날밤 거기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하십니까?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천사들의 무리가 노래했다는 말을요? 그러나 이 백성의 뜻은 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백성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백성은 인간적인 권력을 지닌 왕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정신의 왕이기 때문에 의인이요,
구세주인 그 왕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백성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설교하겠기 때문에
이 백성은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전차와 기병대를 갖춘 적과 싸우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창조된 사람의 마음을
극악한 향락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영혼의 원수들과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스라엘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승리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아, 너의 왕은 ‘암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즉 이스라엘의 의인들과 이방인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나귀새끼가 그에게 더 충실해서
암나귀보다 앞서서 그를 따를 것이고 진리와 생명의 길에서 커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악의 때문에 평화를 잃을 것이고,
그들로 인하여 고통의 인간이 되리라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들의 왕에게 당하게 한 것과 같은 고통을
여러 세기를 두고 당할 것입니다.”
쉬암마이: “나자렛 녀석아, 네 입에서는 유치한 말과 동시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 나온다. 대답 좀 해보아라. 그래 선구자가 어디 있단 말이냐? 언제 우리가 선구자를 언제 가졌었단 말이냐?”
예수: “선구자는 존재합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하고 말라키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선구자는 바로 그리스도를 앞서 옵니다. 선구자는 그리스도와 같이 벌써 와 있습니다.
만일 주의 길을 닦는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여러 해라는 간격이 있으면, 모든 길이 막히고 빗나가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선구자가 다만 한 시간만 주인보다 앞서 가도록 결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선구자를 보시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전도가 시작 되었구나’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만, 그리스도가 이 길로 해서 오게 되면 많은 눈을 뜨게 하고 많은 귀를 듣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생님의 추종자들도 아니고 선생님 같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선생님네는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갖다주는 대신에
죽음을 그에게 줄 터이니까요.
그러나 이 성전보다 더 크고,
지성소에 들어 있는 장막보다 더 높고,
지품 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영광보다도 더 높이
구세주가 그의 옥좌와 제단에 앉게 되면,
하느님을 죽인 자들에 대한 저주와
이방인들을 위한 생명이
그의 수없이 많은 상처에서 흘러 나올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시는 선생님, 되풀이 해서 말씀드립니다마는,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지배를 하는 왕이 아니고, 영적인 왕국의 왕이며,
그의 신민은 오직 그들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의 영으로 다시 태어날 줄을 알고
또 요나와 같이 한번 태어난 다음 다른 고장에서 다시 태어날 줄을 알
그런 사람들 뿐이겠기 때문입니다.
즉 참 생명을 인류에게 줄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재생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될 사람들 말입니다.”
쉬암마이와 그의 측조자들: “이 나자렛 녀석은 사탄이다!”
힐렐과 그와 추종자들: “아니오. 이 아이는 하느님의 예언자요. 얘야, 우리와 같이 있어라. 이 늙은이가 아는 것을 네 지식에 넘겨주겠다. 그러면 너는 하느님의 백성의 스승이 될 것이다.”
예수 : “진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많이 있으면 구원이 이스라엘에 올 것입니다.
그러나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목소리가 제게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때가 오기까지 고독한 가운데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때가 오면 제 입술과 제 피로 예루살렘에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제 운명은 예루살렘에 의하여 돌로 맞고
암살당한 예언자들의 운명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존재 위에는 주 하느님의 존재가 있어,
저를 당신 영광의 발판을 삼으시라고 저 자신 그분께 복종하면서
그분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다립니다.
제 때에 저를 기다리십시오.
이 돌들이 다시 제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제 마지막 말을 듣고 떨 것입니다.
이 목소리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목소리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을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왕국을 줄 것인데,
여러분의 이기심이 그 왕국이 순전히 인간적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지만,
사실은 천상적인 것입니다. 이 나라가 임하라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당신의 종이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을 완수하기를 열망하니, 그 뜻을 완전히 이루십시오’ 하고.”
그리고 여기서 영적인 정열로 불타는 얼굴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팔을 벌리고 어리둥절한 박사들 가운데에 서 있는 예수의 환상이 끝난다.
1944년 1월 29일
저는 여기서 확실히 신부님의 관심을 끌 두 가지 일을 말할 것이 있고, 또 잠이 깨면 그 말을 쓰겠다고 결정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다른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나중에 쓰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말하려고 하던 것을 여기에 쓰겠습니다.
신부님은 오늘 제가 어떻게 힐렐과 가믈리엘의 이름과 쉬암마이의 이름을 알 수 있었느냐고 물으셨지요. 그것은 제가 ‘제 2의 목소리’라고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가 이런 것들을 제게 말해 줍니다. 이것은 제게 쓰라고 불러주는 내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보다는 좀 덜 느낄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들은 벌써 말씀드렸고 다시 되풀이해 말씀드렸지만 진짜 목소리들인데, 제 영적인 오성이 그것을 마치 인간의 목소리인 것처럼 지각합니다.
저는 그 목소리들을 마치 어떤 사람이 아주 가까이에서 제게 말하는 것과 꼭 같이 다정스럽거나 분개한 목소리로, 유쾌하거나 슬픈 목소리로 느낍니다.
그런데 이 ‘제2의 목소리’는 반대로 제 영안에서 말하는 빛, 또는 직관 같은 것입니다. 제 영 ‘안’에서라고 했지 제 영 ‘에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노인 옆에서 몹시 열렬히 말하는 저명인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토론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가까이 갔을 때, 제 안에 있는 ‘제2의 목소리’가 ‘가믈리엘-힐렐’이라고 말했습니다.
예, 먼저 가믈리엘의 이름을 말하고 다음에 힐렐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생각해 보고 있는데, 그 내적 지도교사가 마침 가믈리엘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에 기분 나쁜 제 3의 인물을 제게 가리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리사이파 사람같이 보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내적 지도교사는 제가 예수님 돌아가신 후의 세계를 보고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환상을 볼 때에는 이런 일이 매우 자주 있습니다.
이 내적 지도교사가 저 혼자서는 파악하지 못할 터인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어떤 세부사항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설명을 잘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게 말씀하기 시작하시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쯤으로 끝내겠습니다.
(하느님이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마리아 발또르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