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왠지 내가 면요리 요리사를 해야할 것 같은 광고 카피에 못이겨 '그래 뭔가 면요리를 하자' 라는 생각에 '뭘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한 androgyny. 그러다가 봉지에 담긴 3-5분이면 조리가 끝난다는 녀석들 말고 색다른 걸 색다르게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결국 '파스타' 를 만들어보기로 하고 파스타 중에서도 모든게 듬뿍듬뿍, 큼지막하고 자극적(?)인 그런 녀석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모양? 모양이 뭐지? 그런거 모른다.
먼저 장을 보러갔다. 호오, 그냥 무심코 '라면 어딧어' 라는 생각만 하며 지나친 면류 진열대에는 생각보다 많은 파스타 재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알게된 '푸실리' 라는 단어. 아 이게 푸실리구나 하면서 한참을 기웃기웃!
크기, 양, 색상별로 정말 다양한 푸실리들이 있었다. 우아 신세계였어@_@),
도저히 뭘 골라야할지 갈피가 안잡히는 상황!
결국 크기도 크고 색깔도 좀 알록달록하게 있는 ↑ 이녀석을 고르게 되었다. TESCO Tricolore fusilli 즉, 한국말로 3색 푸실리. 너란 녀석은 어떤 맛일까라는 생각으로 푸실리 구입에 임한 androgyny.
면도 넓은 면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스파게티면이 아닌 넓직넓직한 면을 고르게 되었다. Barilla 라는 회사의 La Collezione Pettuccine. 도대체 이거 어떻게 읽는 건지 좀 알려줘여. 넓어서 그런지 다른 면들에 비해 2배 정도 비싼 가격이었다.
콩기름 말고는 써본 기름이 없던 나는 엄청난 식용유 종류들에 놀라고 말았다. 이것 또한 신대륙이다. 뭘 골라야할까 하다가 가운데에 있는 보르게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저녀석을 고르게 되었다. 이유는 없고 그냥 좋은 거 한번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사실 더 비싼애들은 너무 비쌌다ㅠ
화이트루? 휘핑크림? 다필요없다. 난 그냥 진짜 크림치즈로 만들꺼다. 내 요리 신념은 무조건 포인트가 되는 재료를 맛이 날때까지(!!), 내가 만족할떄까지 퍼넣는거다. 내 군대 후임중 취사병 한명이 말했다. 사람들이 '맛없다' 그러면 자기는 다음에 똑같은 걸 만들때 설탕을 한 팩이고 두 팩이고 엄청나게 퍼넣어버린다고한다. 그러면 다들 '맛있다' 그런다고 한다ㅋㅋㅋㅋ 거기서 얻은 군인 정신, 필승의 신념이 전역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시 군대란...
굳이 나 파스타 재료 살때 편하라고 브로콜리랑 양송이 버섯이 같이 진열되어있었다. 으히- 어떻게 아셨지- 처음으로 마트에서 양송이 버섯이라는 것을 사봤다. 너무 귀엽게 생겨서 날 것으로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이 역시 군대에서 배운 인내의 자세로 가뿐히 참아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슬라이스 되어있는 베이컨과, 우유, 양파도 샀다.
이제 집이다. 파스타 면을 삶기에 적당한 냄비를 어디서 구해와서는 면을 삶기 시작했다. 면을 삶을 때에는 적당하게 소금을 뿌려주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어느 블로그의 레시피에 그렇게 적혀있었다. 간을 맞추려고 하는건지 아니면 조금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물의 끓는 점을ㅋㅋㅋㅋㅋ높여 면을 좀더 부드럽게 하려고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는 그냥 면 삶으면서 마땅히 할 생각이 없길래 한 추측일 뿐이다ㅇㅇ 간 때문이겠지 뭐...
사이좋게 진열되어 있었던 브로콜리랑 양송이를 잘 씻어서 놓고, 베이컨을 뜯어, 접시에 담아놓았다. 브로콜리는 마음대로 크게크게 팍팍 썰었고, 양송이는 두번 썰어 1/4 등분했다. 베이컨은 적당히 크게(!) 잘랐다.
면이랑 푸실리가 끓고 있는 모습이다. 오 근데 진짜 이거 얼마나 끓여야하는지 전혀 감이 안잡혀서 계속 푸실리 하나씩 집어먹었다. 그냥 밀가루 맛인데, 은근히 이게 씹히는 맛이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굳이 아직 덜 끓인게 뻔한데도 계속 주워먹었다.
베이컨을 먼저 펜에 볶기(이걸 볶는다고 하는게 맞나여..) 시작했다. 저기 노란 액체는 올리브유다. 생각보다 노랗고 점성이 있어서 놀랐다. 한참을 볶다가, 잘라놓은 브로콜리와 양송이 버섯, 그리고 집에 있던 마늘을 넣었다. 마늘은 그냥 냉장고 안에 있길래 괜찮겠지 하고 넣었다. 참고로 나는 어느 날 김치볶음밥을 만들면서 냉장고 안에 미숫가루가 있길래 괜찮겠지 하고 넣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지금까지도 김치볶음밥엔 미숫가루를 항상 넣는다. 맛있다.
우어, 우유를 왕창부었다. 붓고나서 솔직히 이거 너무 무지막지한거 아니었나 싶었지만 우유는 금방 줄어들었고, 적당히 끓을떄 크림치즈를 넣었다. 계속 넣었다. 그냥 왠지 더 넣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분으로, 마치 모든 반찬에 설탕을 때려붓던 취사병 최X영 병장을 생각하며 크림치즈를 때려넣었다. 향기가 너무 좋았다. 정말.
마지막으로는 양파를 넣는다. 왜 양파를 마지막에 넣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린내 같은거 없앨때 양파를 넣는 걸로 알고잇는데 치즈나 우유 비린내 때문인가? 라고 또 혼자 생각해보았다.
요렇게 되었다. 면을 잘 삶기고 있었다. 중요한건 펜에는 디게 크림치즈 소스가 많고 묽어 보이는데 막상 상온으로 옮기면 급격히 점성이 생기고 양이 줄어들었다. 이거 조절을 디게 잘해야할 것 같았다. 많이 만들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펜안에서 데워지고 있는 소스의 양만을 보고 '적당하군?' 생각한다면 막상 먹을때에는 소스가 없어서 밀가루만 씹어먹어야하는 슬픈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소스가 없고 밀가루만 씹어먹는 식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만들면 된다. 근데 난 싫거든...
오, 저 브로콜리의 육중한 바디를 보라. 베이컨과 양송이 버섯도 범벅이다. 맛은? 크림치즈랑 우유를 저렇게 때려 부었는데 맛이 없을리가 없다. 칼로리는 잠시 잊어두자. 우리에겐 몸에 좋은 양송이 버섯과 브로콜리가 있으니까. 거기에다가 마늘과 양파까지 들어가 있다. 포화지방은 잠시 잊어두자. 그냥... 몰라 그냥 잊자.
뭐 아무튼,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던 크림치즈 파스타 만들기. 휘핑크림을 사용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 수도 있다. 솔직히 크림치즈 너무 비싸다. 이제 남은 크림치즈는 빵에나 발라먹고 다음엔 휘핑크림을 사서 만들어야 겠다고 가벼워진 지갑을 보면서 다짐하게 되었다. 라면, 짜파X티에 지겨워진 분들이라면 그냥 재미로 한번 자신만의 크림치즈 파스타를 만들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다음번엔 미숫가루와 참치를 넣은 파스타를 만들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원문] 無조건 듬뿍듬뿍 자취남의 男子다운 크림치즈 파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