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빨 빠진 호랑이

[어질이]

이빨 빠진 호랑이

  어제 어금니가 빠졌다. 몇 개월 전부터 아프고 흔들거렸는데 노릇하게 구운 찰떡을 씹어먹는 중에 치아가 뽑혀서 나왔다. 앓던 이가 빠진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 순간 섬득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제 이빨이 빠지는구나! 하나 둘 빠지면 나도 오물오물 음식을 먹는 노인이 되겠구나. 그러다 죽겠지 하는 전율이 온 몸으로 잔잔하게 흘렀다. 하루 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 듯 육십대의 준령에 올라서 있다. 세월이 흐르니 나도 모르게 고목나무처럼 나이가 들고 저절로 이가 빠지는 것이다. 

  빠진 허허로운 이를 보면서 부모님도 이렇게 이가 빠졌을텐데 그때 얼마나 서글펐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난 수행이라 한답시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이라도 했는데 아버님은 이미 고인이고 어머니도 연로하신데 그분들은 가족을 위해서 일에 쫓겨 허겁지겁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이가 빠지면 무척 당황되고 두려웠으리라.

  나이가 들면 이가 빠지는 것은 누구나 다 겪게 되는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현상인데 슬픈 상황을 직접 경험하며 모든 중생들의 걱정과 두려움과 낙담을 함께 느낀다.

  이제 난 이빨 빠진 볼품없고 초라한 호랑이 신세다. 아내보살은 남편거사의 빠진 이를 보고 저으기 놀라는 표정이다. 벌써 이가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은근히 걱정이다. 세월이 가면 누구나 다 늙고 이가 빠지며 죽는 거라고 나도 그런 시간의 선상에 서 있는 것이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아내는 하루가 지나서 덤덤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이빨이 빠진 호랑이라고 놀린다. 음식은 잘 씹히느냐 그냥 삼키는 건 아니냐 이제 잇몸으로 오물오물거리며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등 우려 반 장난 반 신바람이 났다.

  나는 빠진 이빨을 버리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는데 저 이빨이 어제까지는 내 몸에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빠져나와 저기에 있는데 내 이가 맞다고 해야 하는지 혹은 내 이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물었다.

  아내보살은 헤하고 웃으면서 빠진 이를 지붕 위에 던지고 헌 이 가져가고 새 이를 달라고 하란다. 그 말에 어린 시절 이가 빠지면 이를 지붕위에 던지고 '헌 이 가져가고 새 이 주세요!' 라고 기원하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 말은 어릴 때나 하는 것이지 이제 어른이 되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되겠느냐고 했다.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어서 무상(無常)한 줄을 알아야 하고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던 몸도 늙어서 이가 빠지며 그리고 죽는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 이가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으며 아직은 이가 튼튼하다고 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장담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긴 아내도 충치가 있어서 치아를 덧 씌운 형편이니 마냥 여유로운 처지가 아닌 지라 묵묵히 말이 없다.

  사람들은 몸을 나라 생각하고 나의 것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이 몸이 나고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저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금니를 보면 잘 알 것이다. 어제까지 잇몸에 붙어있었지만 이제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없이 테레비젼 옆에서 멀뚱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금니를 집어서 이리저리 만져 본다. 오랫동안 음식을 씹어 먹으며 몸의 일부를 형성하였던 고마운 이를 만져보니 음식을 씹던 부분은 맨들맨들 윤이 난다. 그런데 내가 빠진 이빨을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것은 몸이란 항상하지 않음을 늘 기억하고 명심하기 위해서다.

  음식을 씹어 먹을 때 밥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듯한 어색한 기분이지만 모든 것은 무상하여 변하는 것이라고 타이르며 담담하게 식사를 한다. 바르게 사유해보자. 밥이 나고 나의 것이며, 반찬이 나고 나의 것이며, 물이 나고 나의 것인가? 날마다 먹는 음식이 나도 아니고 나의 것이 아닌데 음식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나요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월을 따라 이가 빠지고 등은 굽어지며 피부는 거칠고 뼈만 앙상하여 병들어서 앓다가 죽는다. 그러면 불 속에 한 줌 재가 되거나 땅속에 묻혀 사라진다. 이러한 진실을 알고 몸에 애착하지 말아야 한다. 몸이란 나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며 나를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닌 줄로 알고 몸에 대한 애착과 속박에서 훌훌 벗어나면 법을 본다. 법을 보면 생사(生死)를 초월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빨이 빠진 것이 슬프고 불행한 일이 아니라 거룩한 가르침이다. 물론 이치로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체험을 하여 더 밝은 지혜의 안목을 갖춤은 기쁜 일이 아닌가. 어화둥둥 이빨 빠진 볼품없는 호랑이가 히죽이 웃는다.

 11.05.12. 각우 윤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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