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일
오후
7시
저는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비틀즈의 멤버이었던 폴 매카트니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 공연을 보러 간 것입니다. 비틀즈 하면 막연하게 학창시절이 떠오르고 무엇인가 그 공연에서 저의 젊은 날을 만날 것 같은 설레임에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1시간
일찍
도착하였지만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안내요원의
가이드를
받아
자리했습니다. 폴 매카트니 하면 당연히 비틀즈를 연상하는 저로서는 관객의 대부분이 저와 같은 세대려니 했는데 의외로 젊은 세대가 많아 역시 비틀즈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운동장 바닥에 위치한 좌석에서 뒤를 돌아 보니 경기장 관중석에도 이미 관객들이 꽉 들어 차 있었습니다. 의자에는 앞면은 빨간색 하트가 뒷면에는 영어로
'NA'가
적힌
종이
한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모든 의자에 있는 것으로 보아 공연 때 어느 노래에서 사용하여야 할 소품 같았습니다.
8시가
되었습니다. 대개 이런 슈퍼스타들은 의례 늑장 공연을 하기 마련이라 적어도 30분은 늦겠거나 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15분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폴 매카트니가 나타났습니다.
1942년생
우리
나이로
74세인
어느
언론의
표현대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션'이 드디어 한국에서 공연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그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입니다.
아내도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핸드폰을
연신
눌러
댔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관객의 열기를 알아 차린 듯 윗 저고리를 벗고 와이셔츠 바람에 키타를 울러 맸습니다.
첫
곡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열광하였지만 정작 저와 아내는 알지 못하는 곡이었습니다. 두번째 곡도 세번째 곡도 네번째 곡도, 슬슬 불안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부르는
곡이면
내가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곡일
텐데.
왜
이렇게
모르는
곡만
부르지.
곧
지나면
아는
곡을
부르겠지. 좀 기다려보자,'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열광의
도가니로
들어섰는데
저와
아내만
뻘쭘한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창피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비틀즈
노래를
너무
모르나.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
해체
이후
솔로로
발표한
곡들만
집중적으로
부르고
있나.
이런
식으로
공연이
이어지면
아무런
감동이
없을텐데
어쩌지.'
우리의
마음을
알기나
한
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최 측에서 나누어준 우비를 입고 청승맞은 자세로 모두 일어서 열광하는 가운데 두사람만 앉아서 비를 불편해 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관객들에게 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적당한 양의 비가 공연 기획의 일부인 양 내리고 있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10여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사는 고사하고 멜로디 조차 아는 곡이 없었습니다. 저는 비틀즈나 폴 매카트니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어 봅니다. '갈까요.' '그래도 아는 곡 하나는 듣고 가야지.' 폴 매카트니 팬들이 알면 너무도 무식하고 한심해 할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우리 두 사람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내 왼쪽이 앉았던 50대 여성 두분 이 음악을 알아 듣지 못해 그랬는지 내리는 비 때문인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간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연
시작한
지
1시간
20분
만에
아는
곡이
나왔습니다. 'And I Love Her'입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그때까지 폴 매카트니가 부른 노래 리스트를 보니 비틀즈 시대, 윙스 시대, 솔로 시대 히트곡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1. Eight Days a Week, 2. Save Us, 3. Can't Buy Me Love. 4. Jet. 5. Let Me Roll
It. 6. Paperback Writer, 7. My Valentine. 8. Nineteen Hundred and Eighty-Five,
9. The Long and Winding Road, 10. Maybe I'm Amazed, 11. I've Just Seen a Face,
12. We Can Work It Out, 13. Another Day, 14. Hope for the Future를 부르고 열다섯 번째로 And
I Love Her를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15곡 중에 아시는 곳이 저보다는 많으실 것입니다.
저는
정말
음악에
무식하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폴 매카트니가 14곡을 부를 동안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에 일종의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만 들었을 뿐 제 스스로 비틀즈의 노래를 찾아 들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비틀즈는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활동한
그룹입니다. 비틀즈가 한창이던 시절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의 초등학생이라면 당연히 외국 음악에 심취하겠지만 저희가 살았던 시대에 외국 팝송은 일종의 사치였습니다.
그래도
비틀즈를
이리도
모르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저희
자리
뒤에서
공연을
보는
20대
3명은
가슴에
비틀즈라는
로고가
새겨진
흰
티를
입고
매
곡을
따라
불렀습니다. 심지어 다음에 무슨 곡을 부를지도 알아 맞췄습니다. 신기한 것은 전곡의 가사를 줄줄 꿰고 가수급 실력으로 따라 불렀습니다. 매 곡을 제 뒤에서 부르니 저로서는 리어 스피커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대단하였습니다. 74세라고 여겨지지 않을만큼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한국말을 간간히 섞어서 진행하는 그의 능숙한 무대 진행 솜씨도 오만한 외국 뮤지션을 많이 접한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의
노래만으로
다른
가수를
넣지
않고
이리도
오래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다시
모르는
노래들이
이어졌습니다. 10여곡이 지나고 다시 아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Ob-La-Di, Ob-La-Da'였습니다. 저와 아내는 노래 맞춰 몸을 흔들었습니다.
이제
공연장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후로 한두곡을 건너뛰며 비틀즈의 명곡이 이어졌습니다. 'Let It Be', 'Hey Jude' 전설의 명곡을 폴매카트니의 육성으로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Let It Be'의
가사
첫
대목이
울려
퍼질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빰을
타고
내렸습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내가 힘든 시기의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 Mother Mary comes to
me(어머니,
메리는
내게
다가와)
/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순리에 맡기라고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인생
금언
중에
'let it be' 만큼
인생의
핵심을
찌른
말은
없을
것입니다. 빗물과 섞여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 방울 속에는 지난 세월의 힘든 고난의 모습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고난들도 또 앞으로 저에게 닥칠 고난들도 모두 이 말 한마디로 극복 되었고 또 극복 될 것입니다.
'Let It Be'
폴
매카트니가 'Hey Jude'를 열창할 때는 4만5천명 관객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NA'각
적힌
종이는
후렴구
나나나나를
부를
때
모두가
들어
올려
흔들었습니다. 우리는 나나나나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릅니다. '남자들만',
'여자들만', '다같이'라는 그의 지시에 따라 수없이 나나나나를 불었습니다.
'Hey Jude'를
끝으로
공식
공연이
끝이
났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그때까지 부른 곳이 모두 31곡이었습니다.
대단한
체력입니다. 공연이 여기서 끝날 수는 없지요. 객석에서는 앵콜이 연호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Hey Jude의 후렴구 나나나나를 외쳤고 삽시간에 전 객석에서 나나나나를 불렀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다시 공연장에 몸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Hey Jude를
다시
부를
계획은
없었을텐데
객석에서
나나나나를
부르자
앵콜곡은
자연스럽게 Hey Jude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4곡의 앵콜곡을 부르고 폴 매카트니는 다시 암흑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무엇인가
미진한
것이
있었습니다. 4곡의 앵콜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곡이 빠졌지 때문입니다.
'Yesterday'입니다.
4만5천?의 관객들은 이 곡을 듣지 않고는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관객들의 바램을 알아차린 듯 다시 나와 그 유명한 전설의 곡
'Yesterday'를
불렀습니다. 모두가 따라 불렀습니다.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예전엔 사랑은 아주 쉬운 게임 같았어요) /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이제
난
어디든
숨을
곳이
필요해요) / Oh, I believe in yesterday(오, 그때가 좋았었는데)
저에게
Love가
Life로
바꿔
들렸습니다. 예전에는 인생이 쉬운 줄 알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혼자 숨을 공간이 필요하죠. 옛날
Yesterday가
그립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 한 곡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에도
몇
곡이
이어졌지만
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비틀즈나 폴 매카트니의 노래를 충분히 몰랐지만 단지 몇 곡 만으로도 저에게 그 공연은 제 인생의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관객에
대한
매너,
겸손,
열정,
체력,
음악.
모두가
최고였습니다. 최고라는 말로는 부족하였습니다. 먼 훗날 한국 공연사에 이 공연은 전설로 남을 것입니다. 이런 전설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초반
지루해
하며
'갈까요'하였던 아내가 공연을 보여줘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이
감동은
오래도록
갈
것
같습니다.
'Thanks Paul'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5.4.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