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이성우
생의 끝자락에서
고운 자태는 사라지고
이마엔 주름진 모습만
보이시는 어머니
사랑으로 꽃을 피우시고
인내로 열매 맺으신
소중한 내 어머니
건강히 지내시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못 / 정일근
교회에 다니는 작은 이모는
예수가 사람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느낀다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다가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
못 박혀 죽을 수 있나, 며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자, 며
어머니의 못 박힌 손을 잡는다
어머니가 못 박혀 살고 있는지
작은 이모는 아직 모른다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도 그 못 박혀 있고
시장 바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걸음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도 그 못 박혀 있다
못 박혀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어머니 못 박혀 살고 있다
평생을 자식이라는 못에 박혀
우리 어머니 피 흘리며 살고 있다
멜로드라마 / 강연호
멜로드라마는 눈물을 쥐어짠다
멜로드라마는 손수건을 적신다
비웃지 마라
멜로드라마가 슬프다면
그건 우리 삶이 슬프기 때문이다
멜로드라마가 통속적이라면
그건 우리 삶이 통속적이기 때문이다
보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만이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있지 않느냐
적어도 그들만큼은 겪어봐야 안다
삶을 연습하고 싶다면
우리는 멜로드라마에 기댈 수밖에 없다
거룩한 멜로드라마
위대한 멜로드라마
손등에 떨어진 눈물 / 홍수희
늙으신 어머니를 씻겨드리다
손등에 눈물을 떨구었네
퉁퉁 핏줄 불거진 손등을 매만지다가
내 마음 주저앉아 버렸네
뼈마디 앙상한 손등을 쓰다듬다가
와르르 무너져 참회하였네
울고싶어도 눈물 참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아픔조차 아픔인지 모르고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섭섭함도 먼 시선에 묻어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여자이기 전에 어머니였던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오늘 나는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야윈 손을 씻겨드렸네
향기로운 외로움을 씻겨드렸네
어머머니 / 조태일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오셔
일곱 자식 뿌리시고
서른일곱에
남편 손수 흙에 묻으신 뒤,
스무 해 동안을
보따리 머리에 이시고
이남 땅 온 고을을
당신 손금인 양 뚝심으로 누비시고
휜히 익히시더니,
육십 고개 넘기시고도
일곱 자식 어찌 사나
옛 솜씨 아슬아슬 밝히시며
흩어진 자식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시는 분.
에미도 모르는 소리 끄적여서
어디다 쓰느냐 돈 나온다더냐
시 쓰는 것 겨우 겨우 꾸짖으시고,
돌아앉아 침침한 눈 비비시며
주름진 맨손바닥으로
손주놈의 코를 행행 훔쳐주시는 분.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 김시탁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沈淳大)
초등학교 마당도 못 밟아서 글 모르지만
열여섯에 시집와서 자식 일곱 낳고
한 자식 잃었지만 육남매 거뜬하게 키운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다
내 나이 열두 살이 되도록 시집살이에 매여
남동생 둘 잃고도 친정 한 번 못 가보고
주정뱅이 외삼촌 술 취해 올 때면
소나무장작으로 두들겨 패 쫓고는
불 아궁이 앞에서 눈물짓던 어머니
행여 누가 볼 때면 덜 마른 장작 탓이라며
두들겨 팬 동생보다 가슴에 멍이 더 든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장날 그 흔한 자장면 한 그릇 못 사드시고
녹두콩 열무다발 푼푼이 내다 팔고
벼농사 고추농사 찌들려서
끝물 고추대궁처럼 바삭 마른 어머니
이제는 관절염으로 두 무릎 쇠붙이 박아
걸음조차 못 내딛는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병원 약국 앞에서
심순대씨! 심순대씨! 하고 부를 때
사람들 그 이름 우습다고 키득대지만
'여기 갑니다. 심순대씨 갑니다'
나는 소리치며 약봉지 받아든다
이제 좀 편히 사시라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지어드렸더니
새 집에 흙 묻는다고 현관부터 맨발로 들어서는 어머니
무릎 수술자국이 눈에 아려 왜 맨발로 들어가느냐고 소리치면
그냥 말없이 웃는, 이제는 너무 작아 어린아이 같은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202번지
마당 넓고 잘 지은 그 집 문패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걸려있다
어머니가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한문으로 쓴 이름 沈淳大
내 어머니는 거기서부터 맨발로 들어가시며
매일매일 바라보신다
어머니 1 / 정한모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 고정희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해빙 / 나희덕
아기를 낳은 후에 젖몸살을 앓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과
수시로 찾아드는 오한 속에서
밤새 뜨거운 찜질로 젖망울을 풀어주시며
굳었던 내 가슴을 쓸어주시며
기도하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땀이 나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다
가장 깊은 속 완고했던 응어리들이 풀릴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맺혔던 젖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가슴위로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젖이 아니었다
잊혀져 가던 옛사랑이었다
어둠에서 나를 이끌어 낸 것은
주님이 아니라 어머니 속의 어머니
새벽이 되자 열이 내리고 젖이 풀리면서
나는 이제야 어머니가 된 것이다
어머니 연잎 / 최영철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게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동란 때 그러하셨듯
산에서 내려온 아들놈 마루바닥 아래 숨겨두고
그 위에 눌러앉아 방망이질하시던 앙다물던
모진 입술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머리맡에서
꼬박 밤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 / 김윤도
새벽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老母)의
굽어진 등 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겨진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山) 하나 들고 있다.
어머니 / 한하운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
말이 없는 어머니.
주머니에게 / 김종
어머니는 밥상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아랫목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굽은 허리 사과나무가 아니었을까
그래, 어머니라는 그 무한한 허공
그 무량한 주머니!
너무 가볍다/허영자
나 아기 적에
등에 업어 길러주신 어머니
이제는
내 등에 업히신 어머니
너무 조그맣다
너무 가볍다
횡단보도 / 함민복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알약을 털어 넣고 물사발을 잡을 때도,
반달에 반달은 어디로 외출했을까 하늘 볼 때도,
소리 쿵쿵 울려대며 지나치는 관광버스를 볼 때도,
(자음 모음 한 줄에 나란하여
컴퓨터 글자판으로 제일 쉽게 찍을 수 있는 단어)
어머니는,
세상 모든 일에 쉼표를 찍어주는,
횡단보도인가
귀여운 아버지 / 최승자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가냘픈 손 / 이영균
만수무강하세요
어머님 앞에 머리 조아릴 때
쭈글쭈글 어머님의 손이 눈에 보인다.
어깨를 쓰다듬는
작고 쭈그러진 가냘픈 손
환하게 웃음 주시는 다정한 눈길
오늘은 왜 이리
쓸쓸해만 보이시는지
아 자꾸만 가슴이 찡해 옵니다.
그러곤 겨우
흰 봉투 하나 딸랑 건네 드렸다.
어머님을 가슴으로 부를 뿐입니다.
언제나 고운 모습으로
꾸중을 웃음으로 대신하신
내 마음을 먼저 읽어주시든 어머님
세월이 너무 야속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런 어머님은
내 가슴에 항상 계실 줄만 알았는데
아버지 / 강신용
아버지는 없다
고향 마을에도
타향 거리에도
아버지
하늘 높이 불러보지만
텅 빈
세월뿐이다
어머니 / 유금옥
민들레 꽃대 위에 우주선이 착륙했다
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장독 위에 물 한 그릇 떠놓고, 날마다
해와 달과 바람과 그리고
약봉지와 연필과 탱자나무울타리와
교문에 붙어 있는 껌에게도 빌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빠와 나와 내 동생은
우주선을 타고 발사되었다
햇빛과 바람의 각도로
지구궤도를 벗어났을 때, 우리는
반짝이며 분리되어 각자 다른 별에 착륙했다
우주선 발사대 혼자
앙상하게 서 계시다 돌아가신 늦봄이었다
어머니 4 / 반칠환
아유, 나야 뭐 손구락에 흙 안묻히고 쟤들 덕에 호강이지유.
호강은 손바닥부터 나타날까? 모처럼 잡아본 엄마 손이 보
드라워 깜짝 놀라 살펴보니 주민증에도 흐릿하던 지문이 또렷하다.
시상에 아파또에 살어보니 어찌나 존지 촌에선 다시 못 살것 같아유.
따신 물 틀믄 따신 물 나오구, 즌깃불 화안하지.
테레비 잘 나오지, 호미질을 하나 낫질을 하나,
물지게 진다구 어깨가 벗어지나,
애들 올 때마다 이놈 저놈 용돈 주구-,
이제 고생 다 끝났시유.
호강탄 우리 엄마, 앵무새처럼 되뇌는데 자세히 보면 먼산바래기다.
검은 손 보얘졌으나 검버섯 더욱 선명해진 우리 엄마, 종일 할 일 없다.
어머니 5 / 반칠환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첫댓글 감사히 머물다 갑니다
행복한 오늘이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