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광야 가데스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하셨는데..
아래 본문에서 잘 확인할 수 있듯이 그때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순행하면서 명령하는 대신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친 것을 볼 수 있고, 게다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하면서 자신과 아론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심과 함께 그 강도 및 빈도를 고려할 때 어떤 면에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잘못들임에도 그의 상징성 및 대표성, 그 위치,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 까지의 영향력 등이 감안되어 져서 그에 합당하게 징계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인데..
참으로 그러면서 모세 같이 대단하고 귀하게 쓰였으며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엄청난 통로가 된 자임에도 불구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요단 강 서편에 결국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가지를 알 수 있게 하는데 우선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크게 쓰이고 하늘의 힘과 역사들을 뜨겁게 경험했으며 오랜 시간을 훈련 받고 단련되며 신앙적으로 연단된 자라고 하더라도 연약함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얼마든지 교만, 불신앙 등과 같은 죄악들을 범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악들로 인해 모세 같은 자라도 결코 작을 수 없는 대가와 징계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면에서는 모세와 같이 가장 대단한 믿음의 선배들 중 한 사람이, 게다가 최고로 강렬하게 쓰인 자들 중 한 사람이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죄악들을 범했고, 심지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는 해도 모든 것이 잘못되었거나 그 결국이 최악이거나 더군다나 구원이 돌이켜 졌다는 의미일 수는 결코 없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비록 인간인 이상 연약함이 없었을 수는 없었겠으나 사실 그러한 모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일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방법과 통로로 날마다 죄악들과 싸우면서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주야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도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었던 것이고, 그러면서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마찬가지의 방법과 통로로 인해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또 다시 말씀으로 나아감과 함께 계속해서 말씀으로 결단하고 몸부림친 참 대단한 믿음의 선배라 할 수 있는 것이며,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됨과 함께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은혜와 도전과 본이 되는 산 신앙이었던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와 원리는 오늘날의 우리 인생들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대문과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지 믿음으로만 구원에 값없이,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의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도 얼마든지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우상과 온갖 불신앙들 등으로 인해 미지근해지고 병들며 죽은듯한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이 막히곤 하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게 되곤 하며,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방황케도 되곤 하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심지어는 모세 같이 대단하고 엄청난 자라도 하더라도 똑같이, 아니 많이 맡은 자일수록 오히려 더욱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겁게 순간순간마다 하늘의 힘과 은혜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곧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떤 식으로든 의지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그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감으로 인해, 혹 그러면서도 또 다시 죄악들에 걸려 넘어진다면 다시 한 번 더 십자가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또 다시 말씀으로 결단하고 다시 한 번 더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어쨌든 다름 아닌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적극적인 말씀의 열정과 함께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에 거하고 누리며 선포하고 증거하는 등과 같은 더더욱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수기20:7~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4월 6일(토)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