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보려 하거나 깨달음을 얻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지 못하고 얻지 못합니다. 도라고 하건 깨달음이라 하건, 그 이름들이 가리키려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나머지가 없는 전체라서 결코 대상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 일으켜 어찌하려고 하면 그만 어긋나 버리는 것입니다.
편안함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 한 편안하지 않은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을 구하는 마음이 바로 편안함과 편하지 않음을 둘로 나누어 놓는 분별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편안하다고 집착하는 순간, 저절로 그 반대편에 편안하지 않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 좇아다니는 한
당신은 아직 행복을 누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비록 모든 사랑스러운 것이 당신의 것이 된다 해도.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한탄하고
목표를 정하고 초조하게 있는 동안
당신은 아직 평화의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어떠한 목적도 욕망도 모르고
행복이란 말을 부르지 않을 때
그때야 비로소 세상의 만사 흐름은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요,
당신의 영혼은 안식을 찾을 겁니다.
As long as you chase happiness,
you are not ready to be happy,
even if you owned everything.
As long as you lament a loss,
run after prizes in restless races,
you have not yet known peace.
But when you have moved beyond desire,
become a stranger to your goals and longings
and call no longer on happiness by name,
then your heart rises calmly
above the ebb and flow of action
and peace has reached your soul.
완전한 편안함은 편안하지 못함마저 포함하고 있는 편안함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편안함에는 편안함이 따로 없습니다. 진정으로 보는 것은 보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것을 본 것이 참으로 본 것이요, 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참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참된 도의 입장이라면 이미 ‘도’라는 이름부터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니 도라는 것을 보려 하고 깨달으려 하는 것은 이미 병이 깊은 것입니다. 이 일은 그렇게 복잡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없이 단순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오히려 번거로운 일입니다. (손가락으로 허공에 점을 찍으며)그저 이 일입니다!
출처 : "이것이 선이다", 심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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