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강론>(2023. 10. 11. 수)
(루카 11,1-4)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1-4)”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은, ‘기도하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표현만 보면, 제자들이 ‘기도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만의
기도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아마도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보고 자기들도 자기들만의 특별한 기도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께 그것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기도이고, 또 신앙생활의 목적과
방법을 알려 주는 지침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라는 뜻으로
‘주님의 기도’ 라고 부르는데, ‘주님께서 바치신 기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주님의 기도’와 거의 같은 기도를
바치셨을 것입니다.
그 기도를 제자들이 바치는 기도로 표현만 조금 바꿔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의 기도’가 원래 예수님께서 바치시던 기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의 전반부는 인류 구원에 대한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고,
기도의 후반부는 신앙인들이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서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심정을 나타냅니다.
<기도의 전반부는 신앙생활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가르침이고,
후반부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가장 많이, 또 가장 자주 바치는
기도인데,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바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간절함에서 정성이 생깁니다.
정성을 다 쏟아서 바치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간절함도 없고, 정성도 없이
습관적으로 바치는 기도는 ‘빈말’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빈말’은 기도가 아닙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ㄱ).”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희망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곧 우리 ‘구원의 완성’입니다.
‘구원의 완성’이 곧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모두 믿고 회개해서 구원받기를
간절하게 바라셨습니다.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루카 13,34ㄷㄹ).”
이 말씀은, 예루살렘만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고,
그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그 안타까운 심정도 주님의 기도에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바라는 희망은, 종말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희망이기도 한데, 예수님과 우리의 희망은, 심판의 날이
빨리 와서 이 세상이 망해버리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고,
죄인들이 모두 심판받고 멸망을 당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종말과 심판의 날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회개할 때까지 종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 조금이라도 늦추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방법을 나타내는 기도이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는 방법을 나타내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구원의 완성’에 참여하려면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사랑 실천을 해야 하고, 용서를 실천해야 하고,
유혹을 물리치고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는 하느님 나라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날마다 ‘힘’을 주십사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는 이웃을 용서하겠다는 다짐이고,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사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용서’도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에,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청은 구원해 달라는 간청인데,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회개해야 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이웃을 용서하는 일도 당연히 실천하게 됩니다.
유혹을 물리치는 일은, 전적으로 주님의 도우심에
의지해야 하는 일입니다(마르 9,29).
‘주님의 기도’는 유혹을 물리치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첫 번째로 바치게 되는 기도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는
하느님 나라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날마다 ‘힘’을 주십사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