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주말은 금요일 휴가를 쓰고 광주 처가에 다녀 왔습니다
장인어른이 건강을 많이 회복하셔서 퇴원 시켜 드리고 왔습니다
이번 광주행은 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있어 노숙자님네 구장에 가서 원없이 운동을 할까 하다가 장인어른 부재로 밀린 농사일(그래봤자 내가 먹을 단감 따는 일)을 좀 하고 올라왔습니다
이 밭은 예전 제가 카페에 솔로몬의 지혜를 구했던 장모님 밭이네요 ㅎ 밭이 크지 않아 그냥 단감나무 몇그루 심어놓고 가족들과 지인들 나눠 먹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감 한보따리 수확 후 집으로 향합니다
처가집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늘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올라오다 보면 고속도로 옆으로 바로 제 진짜 고향인 전북 김제가 보입니다
저는 김제중에서도 한참 더 시골인 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고 그 이후는 좀더 도시로 진학해 학교를 다녔습니다
혼자 여유있게 운전하며 올라오다 문득 시골 고향집이 생각 나 급하게 서김제IC에서 빠져 진짜 어릴적 고향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어릴적 뛰놀던 동네는 경상도쪽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어서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요
괜히 씁쓸해 졌습니다
이왕 온거 좀더 추억에 잠기고자 이미 폐교되고 다른 특성학교로 운영중인 제가 다닌 국민학교?도 가 보았습니다
학교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고 사진 우측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만이 어릴적 기억을 어렴풋이 되살려 줍니다
아마도 그때는 저 나무 옆이 화장실과 소각장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국민학교때의 학교 건물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제가 30여년전 타고 놀던 동물석상은 그대로 남아 있네요
국민학교 운동회때 저 캥거루 석상 옆에서 어머니랑 누나와 김밥을 먹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때는 누나와 사이다 한병을 나눠 마실 정도로 가난했지만
다시 돌아갈수 없어 참 그립그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국민학교 추억을 뒤로하고 내친김에 중학교까지 가 봤습니다
저는 김제 지역에서 중학교까지 다녔고 이후엔 이리(지금에 익산시)로 장거리 통학을 했죠
그나마 읍소재지에 위치한 중학교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네요 만경은 무슨 북한 지역 지명 같지만 시골 사립재단으로 저래봬도 만경 여중,남중,여고,남고,상업고?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고향을 떠난후 들리는 소문은 학생수가 급감해 인근 지역(익신,전주,군산)에서 문제 아이들이 학교졸업장을 위해 전학을 온 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이렇게 모교 중학교도 둘러보고 그때당시 휩쓸고 다니던 학교 주변도 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이곳만 시간의 흐름이 빗껴 간 걸까요?
제가 중학교 다니던 30여년전 건물들이 아직 그대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운동을 가기 위해 체육관을 가던 이 길은 그때당시 5일장이 설 정도로 제법 부쩍이던 거리였는데 지금은 제대로 된 상점 하나 찾아 보기 힘드네요
반가운 가게가 보입니다
그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다녀 오면 반에서 한두명 필름 카메라를 갖고 왔는데 그 필름을 들고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찾아 갔던 사진관입니다
그때 사진을 찾으려면 일주일 이상 걸렸는데 그 사진을 갖고 또 한번 친구들과 낄낄대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또 졸업앨범 촬영을 위해 사진관을 방문해 굳은 자세로 증명사진을 찍었던 모습이 아련히 기억납니다 ㅎㅎ
골목을 꺾어 돌아보니 또다른 반가운 가게도 보입니다
급작스런 두발검사로 선생님께 두들겨 맞고 강제로 쫒겨가 짧은 스포츠 머리로 잘라야 했던 아픈 기억이 서려있는 이발소도 아직 그자리에서 그대로 영업중이네요
머리를 깎고 있으면 역시나 두발 검사에서 걸려서 거친 쇳소리를 내며 문 열고 들어와 함께 머리를 깎였던 친구들도 어딘가에서 잘 늙어 가고 있겠죠?
제 화려한 고교시절 장거리 통학을 위해 누비던 진짜 시골 터미널입니다 그 옛날 슈퍼에서 차표를 팔던 터미널이죠 ㅎ
대박! 신세계 음악사가 아직도 있네요 ㅋㅋㅋ
지금에 와이프와 저를 만나게 해준 고마운?곳입니다
저 곳에서 팔던 그 옛날 포켓가요 그 맨뒤 펜팔 주소록을 다들
기억하시나요? ㅎㅎ 지금 제 와이프와 저는 그시절 그런 순수한 방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시절 최고의 핫플레이스 였던 노래방도 그대로있네요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당시 저 동네에 두개있는 노래방중 유일하게 녹음 테이프를 제공해주는 노래방이었죠
창에 붙은 노래방 광고가 세월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네요
위 사진은 사실 이번 고향방문 중 제가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제 학창시절 피?와 땀이 베어있는 체육관입니다
정말 학교는 안 가도 체육관은 갈 정도로 운동에 미쳐 있던 시절이 있었고 그 넘치는 에너지를 다 쏟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철물점의 창고로 쓰고 있네요 ㅠ
흐미하게 보이는 관원모집 문구가 한때 체육관임을 짐작케 하네요
저렇게 낡아져 버린 체육관을 보니 마치 늙어가는 제 모습을 보는거 같아 역시나 씁쓸해 집니다 ~~
이렇게 짧은(다 도는데 30분도 안걸리는)제 고향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지금은 친구들도 대부분 떠나서 거의 안 가는 고향이지만 오랜만에 방문해 보니 옛 추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이런 따듯한 추억들 갖고 계시죠?
응답하라! 1992~
편안한 주말 밤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오~ '운동한 남자' 였네요~ 혹시 그간 무례했던 점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바랍니다. ㅎㄷㄷㄷ
누구나 한때 왕년에는 있잖아요~^^지금은 그냥 그때 그 건물같이 늙어가는 중년입니다ㅎㅎ
저는 공손했었죠? ^^a
그런데 왜 응답하라 1992 인가요?
제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이 그때쯤인거 같습니다 ㅎㅎ
마음이 참...뭐랄까..아련해지고 따뜻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쓸쓸해지기도 하는...^^
사진과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팔대칠님 감성이 많은 분들께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랑 비슷한 세대실까요? 그 시절 우리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지냈던거 같습니다 또 오늘을 추억하는 날도 오겠죠? ㅎㅎ
팔대칠님께서 올려 주신 학창시절의 좋은 글과 추억의 장소들 사진으로 잘 보앗습니다.
저 역시도이 글을 보면서 저의 옛날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저 보다는 좀 더 윗세대시겠죠? 도시 출신이어도 그땐 대부분 개발 전이어서 학창시절 거리를 가시면 새롭겠네요
하체힘은 걸어서 등교! ㅎㅎ 그땐~
그 시절 1km정도 도보 통학은 기본이었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부럽네요 ㅎㅎ
한때에 저도 두어달에 한번씩은 라디오로 듣고는, 통기타 코드를 어렵게 짚어가며 새 노래를 불러보고자 "포켓가요" 악보가 필요했었습니다.
아직도 플로피 디스켓(??) 통이 들어있는 상자와 초기 구입한 블레이드 상자 사이에 위아래로 끼어 있습니다. 이때 이정선 기타교실도 나오는 족족 사 모았었는데요.
와~~ㅎㅎ진짜 추억 돋네요 세광출판사란 이름도 오랜만이고...저 맨 뒷편에 펜팔 주소록이 있었드랬죠 ㅎㅎ
@팔대칠 마침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곡수록이라는 삼호출판사 최신가요집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