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데 보그다노비치
보스니아.1970년 5월12일 183cm.
포항제철~일본'제프유나이티드~스페인'아틀렌티코 마드리드~네덜란드'NAC브레다~독일'베르더 브레메~독일'빌레벨트
이희택 감독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용병테스트 중인 라데와 또다른 용병 선수중 누구를 선택할까?
해답은
박병주 신탁은행 감독 조언이 새로운 포항에 전설이 시작된다.
박감독은 연습 경기중에 신탁은행 선수가 격한 반칙을 하자 바로 보복성 파울을 하던 광경을 지켜 보며 이감독에게 "저친구 근성이 있다 "거친 한국축구에 충분히 적응할수 있다.
입단후 라데는
운명을 가로짖는한 드리볼,촌철살인 골 결정력,종횡무진 그라운드을 누빈다.
한국에 대한 적응력도 대단해 음식,문화,언어도 차근차근 적응해 간다.
하지만 유고 용병 들에게 보이는 다혈질적인 성격에 감독들에 속을 태우고
상대팀 수비수들은 역이용 한다
당시 최고의 팀이었던 천안 일화<브레메시절.한국방문>
일화에 수비수 이종화,안익수,박광현등 거친 수비에 퇴장을 당해 포항 선수들에게 집단 린치을 당할뻔 햇다나 뭐래나??
라데는 특히 일화 경기중 박종환 감독 앞에서 골세러머니을 하기도
수많은 기록을 뒤로 한채 유럽에서 전성기을 보내다 은퇴해
에이전시로 변신 전훈지나 한국을 방문 선수들을 소개 시키고 있음.
에피소드
*고향 친구 쿤티치FW가 입단 테스트을 받으로 오자 연습 경기에서 쿤티치에게만 패스함.
그런 노력에도 불구 쿤티치는 입단 하자 마자 부상으로 중도하차.
*어린시절 우상중 한명 이었던 GK드라간과 콜라 내기 당구를 쳐서 게임 지면 얼굴이 달라짐.
드라간 GK출전횟수 제한 때문에 아쉽게 이적.성실하고 안정된 골리
*라데는 한국에서 딸을 출산
*황선홍 '왈"라데는 한국말을 잘하고 특히 "돈애기는 정말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우크라이나 용병 코놀FW 을 불쾌 하게 생각함.
자신보다 한수 아래인 선수가 이적료와 연봉이 높다고...
나중에 코놀이 부진하자 선수들은 사이비 라데 라고 일침
<코놀은 65만달러(약 5억5천2백만원)의 몸값>
* 부인도 근성이 있어 스포츠 신문사에 자주 전화를 걸어 상대팀 전적을 물어 보기도,,
*부인에 적응도 성공에 지름길인데 부인이 영문과 출신 이었고,옆집이 미국 여성이라 말동무 생김
*이동국,차두리가 독일에 진출 같은 소속팀이 되자 도움을 줌
*말년에 한국복귀 하려 했지만 현지 포항에 주선으로 유학을 하던 고정운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려 포항이 영입을 포기함.
*유럽에진출 한국 특파원가 인터뷰中 한국몇명 수비수들에 대해 유창한 한국욕으로 비난하기도.
*관중석에서 일화와 결승 3차전을 지켜본 황선홍은 울분을 참지 못했던지 라커룸에서 퇴장당한 라데를 쥐어박으며 `이적행위'를
질책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마리아, 부인 산드라,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크리스티나.>사진;민간인 족쟁이펌
라데을 전담수비 했던 박광현 인터뷰
- 이제 95년 챔피언결정전 이야기를 해보자. 이 승부는 K리그 역대 챔피언결정전 중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고 있다.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그때 전기리그에서 우리가 우승하고, 후기리그에서 포항이 우승을 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 내 몸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안)익수형, (이)영진이, 겐나디와 주로 3백을 섰는데, 내 몸 컨디션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시즌 후 대표팀에도 뽑혔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잘했던 것 같다.
다시 경기 이야기를 해보자면 포항에는 K리그 최강 투톱 이라고 불리우던 라데와 황선홍이 있었다. 선홍이는 1년 후배인데, 경기장에서도 자주 맞대결을 펼쳤고 거친 몸싸움도 있었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정말 훌륭한 선수이자 타고난 스트라이커였다.
‘이런 스트라이커가 다시 한국에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부상이 잦아서 더 클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선홍이를 실력으로 붙잡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3-3으로 비겼던 2차전에서 내가 선홍이를 전담마크 했었는데, 전반에만 선홍이에게 2골을 내주고 말았다.
3-2로 우리가 역전시킨 상황에서 종료 3분을 남겨놓고 우리가 프리킥을 내줬는데,
당시 볼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선홍이만 잡았다.(웃음)
선홍이가 사람이 정말 괜찮은데, 계속되는 신경전이 화가 났는지 그때 주먹으로 내 얼굴을 쳤다.
그 상황에서 볼이 흘러 라데가 헤딩 슛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박종환 감독님이 나중에 비디오로 그 장면을 보면서 혼을 냈던 기억이 난다.(웃음)
- 라데와도 악연이 있지 않았는가?
사실 라데 역시 내 실력으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웃음)
그런데 라데는 굉장히 다혈질이라 신경전을 벌이면 흥분하곤 했다.
가서 욕도 하고, 슬쩍 차기도 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흥분해서
자기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막기가 너무 힘들어서 라데의 그런 성격을 많이 이용하곤 했다
.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도 내가 붙어 다니면서 신경전을 벌여 결국 라데가 퇴장 당하도록 만들었다.(웃음)
당시 포항 감독이셨던 허정무 감독님을 용인 FC에서 다시 만나 그 때 이야기를 했더니
"광현이 너 플레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파울이었다"고 말씀하셔서 함께 웃었다.(웃음)
- 라데가 한국을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정종선과 박광현 코치를 가장 독종으로 꼽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웃음)
운동장에서 페어플레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승리를 위한 심리전 역시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판단했을 때 스피드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라데를 이길 수가 없었다.
내가 라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 선수가 엄청난 다혈질이라는 점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공격수와 수비수의 숙명 같은 것 아닌가 싶다.
그래도 운동장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적이 아니라 동료 아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우리 일화팀이 아시아클럽선수권을 위해 출국하는 길이었는데,
공항에서 휴가를 떠나는 라데를 만났다.
우리 선수들과 전부 악수를 나누던 라데가 내가 악수를 하려고 하자 멈칫 하더니
“우이씨”하면서 그냥 가버리더라.(웃음)
맺혔던 것이 많았던 것 같다.(웃음)
어쨌든 라데도 그렇고, 선홍이도 그렇고...
그런 선수들을 전담마크하고,
운동장에서 같이 맞붙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아직도 생각나는게 낮경기였는데 라데 유니폼이 상대선수한테 찢겨졌는데 심판이 파울 안불고 경기 계속 진행,,,라데 열받아서 하프라인 정중앙에서서 하늘위로 두팔벌려 소리 막 지르는데 ㅋㅋ 관중들 다웃고 나도 웃고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잼있다
역대 외국인 선수중 라데는 단연 첫손가락에 뽑힘...96년 리그 최초의 10-10클럽에도 가입했고...92년 유고 올림픽 대표팀 선수가 이달의 선수상? 금주의 선수였든가...받는 장면이 처음으로 라데를 접했던 때였음...그 때가 3월인가 4월인가...그랬는데 2골 3도움을 기록했다고 캐스터 멘트가 기억나는거 보면 이달의 선수상이었던거 같은데...아디다스컵이었던가...가물 가물하네...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아닐까 싶어요 라데의 지독한 승부근성은 유명했죠 오죽하면 경기때 웃는얼굴 한번 볼수가 없었으니 ㅎㅎ
저도 어릴때 라데 기억나는 걸론 상대선수한테 파울당하거나 그러면 라데 화났다고 라데 화나면 잘한다고 막 이제 골넣을꺼라고 기대했던 기억이나네요ㅋㅋ
받은 건 그대로 갚아주는 화끈한 유고 남자죠. 그 뒤로 훌륭한 외국인 선수가 많이 들어왔지만,,,, 그를 능가하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