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나 네 편 내 편문화는 존재한다.
사람에게는 자기 안녕을 지키려고
네 편 내 편 만들려는 성향이 누구에게도 있다.
네 편 내 편 나누어 거리감을 두면서
내 편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부화뇌동한다.
꼭 선봉장이 존재하여 자신이 제일 잘 낫고
여기저기 다나와 있는 정보로 아는 척을 많이 하면서
주고받으며 공동의 발전과 비전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네들만의 자위하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면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되고
전체의 더 이상의 발전도 도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기네들이 하는 것은 다 옳고 남은 용납이 안 된다.
사람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려 애쓰기보다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도 내게로 다가와 좋은 사람이 되어 줄 것이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으니까?
자신만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사람들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소중하면 남들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내가 남한테 주는 것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남한테 던지는 것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험담은 가장 파괴적인 습관이다.
해 줄 좋은 말이 없거든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공동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네들만의 이익을 자위하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면
전체의 다수가 활동을 꺼리고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게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떠나가야 한다.
자기네들 뜻대로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말없는 다수보다 언제나 동조자가 있는
몇 사람의 말에 그대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패거리에는 수장이 있고 그 주위에 패거리가 있다.
인의 장막을 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장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야단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기득권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봉쇄하거나
운용을 민주적이지 않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하게 된다.
모든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운용되어
내로남불 식으로 자기네들이 하는 것은 다 옳고 남은 용납이 안 된다.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바꿔지지 않으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오랫동안 한 곳에 있다 보니 반복되는 루틴에 안주하며
전횡을 일삼는 건 아닌지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원래 많이 알면 알수록 함부로 말하지 않고 신중해진다.
내가 아는 것은 상대방도 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안다는 사실이다.
상대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항상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척한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깔아보고 과신하며
우월감에 함부로 무시하고 가르치려 든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작용이 크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게 되면 명예를 한 번에 잃어버린다.
그래서 무엇이든 과하지 않고 적절한 것이 좋은 것이다.
가장 큰 해악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폐쇄성과 배타성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기적 배타성을 띠게 되면 뻔히 잘못된 일도
서로 정당화하며 상호 강화작용을 통해 뻔뻔해지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좀 지나친 표현인지는 몰라도 내편이 아닌 사람은
적으로 간주해 버리는 못된 습성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친절만큼 훈훈하고 인간다운 것은 없는데도
평소 잘 모르고 지냈던 사람에게도
따뜻한 미소와 작은 배려 양보나 질서 예절을 지킬 때
그것이 성숙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백명의 친구가 있는 것보다 한 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다.
백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준다 해도
마지막 한 명의 적이 나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