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환 작가는 각종 플라스틱 제품, 잡지, 광고, 사진, 인쇄물, 못 쓰는 장난감, 인형, 조화, 테이프, 끈, 버린 액자, 거울 등 소비사회의 도시 속에서 생산된 넘쳐나는 폐품을 작품의 소재로 쓴다. 그 특성으로 인해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 예술을 한다는 의미에서 ‘1000원짜리 예술’ 혹은 ‘가난한 예술’을 하는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다양한 실험 속에 담긴 유희적 비판 정신

그가 제작하는 작품의 재료와 스타일은 가지각색이다. 표현형식을 보면 드로잉, 만화, 사진, 인쇄물 콜라주, 오브제 회화, 설치 등 너무나 다양하기에 하나의 경향으로 설명하려는 의도가 부질없을 정도다.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복잡미묘하다. 풍자와 은유, 속담과 수수께끼, 즉흥성과 우연성 등을 변화무쌍하게 사용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가지각색의 혼합 매체를 사용해 제작한 작품은 작가 특유의 유희적 정신과 사회 풍자적 정신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소비적 경향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미술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행위’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유희성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주재환은 이러한 작가군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신세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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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1987 |
[반고문전] 1991 |
한국사회 비판과 뒤샹을 희화화한 풍자 정신

한편으로 민중미술 진영에서 활동하던 작가는 포토콜라주 등의 혼합매체를 사용한 작품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풍부하게 이끌어내었다. [죄 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천상병의 시 ‘새’)]는 남파 무장공비 김신조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던 군용차량의 사진을 소재로 한 콜라주 작품이다. 반공정책 선전을 위해 제작된 포스터 위에 천상병 시인의 시를 전사(傳寫)하고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했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목적을 지닌 인쇄물 위에 폭력에 대한 혐오를 서정적이면서도 처절하게 담은 시인의 싯귀를 얹혀 놓음으로써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충돌을 이끌어내고 있다. [반고문전]은 고(故) 박창수 노동열사의 영안실에 난입한 경찰의 사진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빈번하게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침해를 달력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