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구! 누가 있어 내 나이 늙었다지 않을까 봐 아침 저녁으로 속절없이 빠지는 머리칼은 그 숫자 헤아리길 아예 포기한지가 벌써 몇 해나 흘러 갔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게 시도 때도 없이 머리칼이 빠져도 아직 대머리란 조롱을 받지 않는 데서 깻잎 같이 얇은 자위(自慰- 물론 Masturbation은 아님)라도 해야 되는 건가 모르겠지만...하긴 늦둥이로 태어난 내게 있어서 이미 초로(初老)의 지경에 드신 울 아부지 머리숱은 동년배 어른들에 비해서 비록 흰 머리숱은 많았으나 젊은이 못지 않은 많은 머리칼을 가지셨던 게 기억이 나는구만. 고맙습니다, 아부지!
어릴 적 어른들은 아침 일찍부터 들판에 일하러 나가시고 고즈넉한 집안에 나 혼자 마루끝에 앉아 있을 때면 조그만 괴나리 봇짐이나 다 헤진 가죽가방 하나 달랑 멘 중늙은이가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채권 삽니다, 달비 삽니다!" 하면서 외치던 모습을 기억한다. 반 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청승맞은 그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한 걸 보면 쓰잘 데 없는 건 오래도 기억하는 게 인간인지라...
근디 채권은 무엇이고 달비는 또 뭐여? 채권은 일제시대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면서 전쟁물자 조달 비용이 부족하자 나라가 빚을 보증하여 발행하는 채권(債券)을, 달비는 머리숱에서 잘라낸 머리카락을 말함이라. 헌디 머리 나쁜 내가 보기에 중늙은이가 하필이면 왜 시골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면서 목이 터져라 채권과 달비를 사겠다고 외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는 건 당연지사 아니었겠는감?
채권(債券)과 달비에 얽힌 한 서린 우리네 민초들의 역사를 잠시나마 더듬어 보느니...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겨웠던 일제시대의 우리 할부지들이 무슨 돈이 있어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매입했을까? 게다가 오늘날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은 이율은 낮으나 안전성만큼은 확실한데(뭐 오늘 저녁 뉴스 보니까 미국 국채 금리가 5%로 치솟았다는 말은 있더만), 미국과의 전쟁으로 내일 멸망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어느 바보가 매입하겠는가? 그러니 일제는 강제로 할당하다시피 하면서 우리네 할부지들한테꺼정 채권을 팔아 치웠다는 거 아니었겠남. 그런데 말이지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일본이 항복하고 물러가면서 가난에 찌든 우리네 할부지들은 장농 속에 고이 모셔 뒀던 채권을 그야말로 ttong값에 팔아버렸다는 거야. 종잇장 값에 불과한 그 채권을 사려고 이름 모를 중늙은이들은 닳아빠진 가방을 어깨에 메고 기꺼이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녔는데, 나중(사실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이 헐값에 모은 채권은 엄청난 가격으로 일본 정부에 팔아먹었다고 하더만. 에이그, 억울해!
어머니께서 모처럼 바쁜 농삿일 제쳐두고 마을 잔칫집이나 시장에 가실 때면 앉은뱅이 거울을 앞에 두고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다듬으셨는데...참빗으로 머리숱을 빗질하면서 나온 머리카락을 어머니께서는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주우셔서는 동그랗게 말아 경대 서랍에 넣어 두셨다가 어느 정도의 양이 모아지면 그걸 들고 골목 어귀에 나타난 중늙은이에게 달려가 돈으로 바꿔 오셨다. 우린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팔아 만든 그 돈을 받아 공책도 사고 연필도 사서 공부를 했던 거 아니었겠남.
기럼 그 중늙은이들은 뭐 땀시 가난과 기아(飢餓)에 쩔어 윤기 하나 없는 시골 아낙들의 그 머리카락들을 모은 거여? 1960년대 군사정권은 자원 하나 없고 국력 약한 우리나라가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적 자원을 육성하고 활용하는 데 있음을 꿰뚫어 보았는데, 단군 할배 이래 5,000년 동안 가장 부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도 당시의 권력자 박정희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는 새삼 알고도 남음이 있겠지만(혹여 나와 생각이 다른 동문 제위께선 언능 여길 벗어나시고) ...
그렇게 모은 머리카락들을 원료로 해서 가발을 만드는 공장이 수도권 곳곳에 세워졌던 거야. 옛날 우리네 나잇 적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서울통상, YH무역 같은 기업체들이 그때 생겨났다는 거지. 사랑하는 부모님과 눈물로 하직하고 전국에서 모여든 어린 소녀들이 하루 종일 자신들의 앞에 놓인 머리 모양의 틀에다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심는 게 가발공장이 하는 일이라...
지금이야 눈에 부담이 덜한 LED등을 쓴다지만 당시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흰색 형광등 아래에서 하루 종일 머리칼을 심는 일을 하는 소녀들은 누군가? 아직도 구상유취(口尙乳臭)의 어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을 나이의 누군가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인 딸들이었다. 그런 고귀한 누군가의 딸들을 짐승처럼 부려 먹으면서 노동을 착취한 게 무슨 무슨 통상(通商)이니 무역(貿易)이라는 그 이름도 거창한 회사들이었다지? 썩은 고름도 이윽고는 터지고 말듯, 1979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YH무역 여공(女工)들의 신민당사 점거 사건이 벌어진 거야. 에공! 결과적으로 보면 시골 아낙들의 머리카락이 서울꺼정 가서 온 세상을 뒤집어 버렸다는 거 그게 인생이란 거여, 몰랐어?
가발산업 하면 전 문공부장관에 국정원장꺼정 한 정치 9단 박지원도 빼놓을 수 없겠지? 때어날 때부터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서리 손놀림이 탁월하고 눈썰미가 뛰어난 한국의 소녀들이 만든 가발은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는데, 특히나 서양인들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찢어진 눈(chinky eyes)을 가진 동양인들의 검은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이었으니 오죽 했으까잉. 두뇌 회전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박지원이 이를 놓칠 리 없으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한국제 가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오퍼상을 열어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작금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이야기는 털끝만큼도 없더만. 역시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 가진 박지원이라서리 가능한 얘기?
어이구, 이게 뭐얌. 어머니의 달비 얘기 하다가 어디꺼정 온 거여? 뭐 어떠랴, 생각에 날개 있는 게 아니라면 불쑥 떨어질 불상사는 없을 터. 이 밤 동구 밖으로 아스라히 멀어져 가는 어느 중늙은이의 "채권 삽니다, 달비 삽니다."의 외침을 기억하면서 이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으로 빠져 들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