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등 30여개 노동·시민단체이 참여한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13일 오전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100만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박근혜 정부가 보건의료분야의 투자활성화대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 민영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병원의 원격진료와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 법인약국 등에 반대하며 3월 3일 총파업에 돌입키로 했으며, 보건의료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100만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정부는 보건의료분야 투자활성화대책에 대해 “의료접근성이 취약한 곳에 거주하는 환자의 편의를 높이고 의료기관의 경영개선을 통해 공공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보건의료계 등은 “영리화 혹은 병원의 상업화가 더 가속화되고 필수의료 서비스 분야의 의료공급망이 지금보다 더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의료민영화’ 논란의 쟁점인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 △법인약국 허용 △원격진료 등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살펴보자. 박근혜 정부는 ‘의료민영화’의 길에 들어선 것일까?◈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부대사업 확대◈ 정부는 경영악화로 매년 문을 닫는 의료법인 중소병원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외부 투자를 받아 영리 자회사를 설립하게 하고 다양한 부대사업을 하게 해주면 경영이 개선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법인에 투자해서 얻은 모법인의 수익을 의료시설·장비 구입, 종사자 처우개선 등 의료 고유목적에 사용토록 하므로 의료서비스의 질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하지만 보건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정부의 이런 주장에 회의적이다. 우선 이들은 병원의 경영실적이 좋아지는 것 자체가 ‘환자들의 의료비가 더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고 있다. 병원이 영리 자회사를 세우고 수익사업을 하는 대상이 환자인 만큼, 자회사는 수익을 남기기 위해 병원에 더 비싼 임대료나 장비 사용료를 받고 환자들에게는 건강보조 식품, 화장품을 팔며 환자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또 보건의료계 등은 자회사 설립이 모병원의 경영실적 향상으로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영리 자회사는 투자자에게 모병원 수익을 분배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자회사 이익을 병원에 재투자한다?◈ 정부는 부대사업을 하는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면서 ‘자법인 남용 방지 장치’를 두고 자법인의 이익은 모병원에 재투자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보건의료계 등은 이런 제한 규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도 비판적이다. 자회사의 이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지 않고 병원에 재투자하도록 강제하면 과연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자회사의 이익을 모법인에게만 투자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는 배임행위로 불법이라는 게 보건의료계의 주장이다. 정부는 공익법인에만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등 제한을 둬서 재벌병원 등은 영리 자회사를 둘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나오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삼성의료원의 설립법인인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아산병원의 설립법인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이미 공익법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면 삼성생명 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주식을 4.86%를 가지고 있어 정부가 주장하는 계열사 주식 5%를 초과하고 있지 않다”라며 “따라서 공익법인 제한은 재벌병원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하는데 아무런 제한을 가할 수 없는 규정인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정부가 재단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과 의료법인간 인수합병은 불가능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재벌이 병원을 인수합병하는 것은 현재 운영하는 병원을 통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라며 “자회사에 투자자로 참여할 수도 있고 별도의 의료법인으로 전환하거나 만들 수도 있다. 인수합병으로 체인형 영리병원의 규모가 커지면 이를 재벌이 직접 인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법인약국 허용으로 일어날 일들...◈ 보건의료분야 투자활성화대책 중 법인약국에 대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입장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법인약국 허용 시 약국 간 경쟁으로 약값이 올라갈 가능성은 낮아지고 주말과 심야에 문을 여는 약국들도 더 많아지는 등 지금보다 다양한 형태의 약국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는 “의료민영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법인약국 허용 정책은 대자본의 약국 시장 침탈”이라면서 맞서고 있다.이와 관련 정부는 “법인형태의 약국을 허용하더라도 그 구성원을 약사로 한정하고 제약사와의 담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보건의료계는 “법인 약국이 허용될 경우 약사 면허증을 가진 제약사가 참여한 법인약국, 대형약국과 이들이 만든 기업형 체인약국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며 “체인약국이 늘어나게 되면 동네 약국은 없어져 약국 찾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원격진료...의료서비스 이용 편리해질까?◈ 정부가 추진하는 보건의료분야 정책 가운데 하나는 의사-의료인간 원격진료를 의사-환자간 원격진료로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도서·산간지역처럼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편리해지고, 동네의원의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오진의 확률 증가 ▲대형병원 쏠림현상 ▲국민 의료비 증가 ▲의료접근성 하락 등의 이유로 원격진료를 반대하고 있다.보건의료계는 또한 복지부가 원격진료 허용 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우려해 ‘동네의원’ 중심으로 이를 허용한다고 한 반면 수술․퇴원 후 경과 관찰이 반드시 필요한 재택환자나 군, 교도소 등 특수지 환자들은 의원을 넘어 병원 이용도 허용한 점을 지적하면서, ‘수술 후 퇴원 환자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대형병원도 윈격진료에 참여할 길을 터준 것’이라고 보고 있다.원격진료에 필요한 장비 비용과 관련한 양측의 주장 또한 다르다. 정부는 ‘고가의 장비 비용(100∼150만원 정도)이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에 대해 기존의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활용 가능토록 해 추가 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계획이며, 임대나 비용 지원 등의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하지만 보건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원격의료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혈당이나 혈압 등의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의료장비를 갖춰야 하는데(정부가 원격의료 주요 적용 대상으로 꼽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자 진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 여기에는 관련 장비 개발과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따른 관련 기업들의 비용이 투입되고, 결국은 이용자들의 비용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원격의료시 오진 가능성을 두고도 양측의 입장이 갈린다. 정부는 위험성이 낮은 경증질환 위주로 대상 질환을 선정해 나갈 계획이라며 그 대상이 의학적 위험이 낮은 재진환자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괜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보건의료계는 원격의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원격진료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이번 대책은 ‘의료민영화’ 정책?◈ 정부는 “의료민영화란 의무적인 건강보험 적용을 배제하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이나 민간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것”이라면서 이번 대책이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도 의료기관의 94%는 민간이 운영하고 있으며, 공적보험인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계는 이 같은 이유로 해당 대책이 ‘의료민영화’라고 보고 있다. 의료기관의 94%를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공립병원이 6%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의료제도에서 사립병원에 대한 정부의 공익적 규제기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보건의료계는 우리나라 민간병원 비율이 94%에 달하지만, 그동안 법으로 영리행위를 규제했기 때문에 ‘공공성’이 유지됐다면서, 병원에 자법인이 생긴다면 병원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돈벌이 사업을 할 수 있게돼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제도에도 영향 끼칠까◈ 정부는 이번 정책이 건강보험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못 박고 있지만, 시민사회는 이번 정책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환자들의 의료비가 폭등하는 등 병원끼리 수익전쟁을 벌이는 문제가 발생하고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있어도 민간보험사에 더 의존하면서 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국의 의료비 증가속도는 2000~2011년 동안 OECD 국가 중 1위”라며 “보건산업진흥원은 2009년 보고서에서 개인병원의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면 국민 의료비 부담 증가가 연 0.7조~2.2조 원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현재 공적의료보장률은 55%로 전체 가구중 80% 이상이 민영의료보험을 들고 있으며, 의료비증가는 건강보험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것이고 이는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미쳐 가뜩이나 낮은 의료보장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보장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건강보험당연지정제도나 의무가입제가 지켜져도 멕시코의 상황처럼 공적 건강보험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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