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견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가액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갯벌의 보전가치뿐만 아니라 수질을 위하여 추가로 소용되는 비용이나 해양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모두 참작하여보더라도, 현재로서는 새만금사업을 계속 실시하여 얻을 수 있는 전체편익보다 비용내지 손실이 더 크다거나 위와 같은 자연환경의 피해를 수인할 수 없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함으로, 경제성내지는 사업성에 대한 중대한 사정변경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
윗글은 2006년 3월 16일 새만금 사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 판결문의 요점은 한마디로 새만금 사업에 대한 모든 결정은 경제성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에 정부는 좋아라했고 어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새만금 살리기 운동은 아직 끝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공사 현장에서 본격적인 어민들의 생존권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전국의 생명과 환경지킴이들이 새만금을 향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3월 19일 그 행렬의 한 자락을 잡고 빈들교회 '섬나의 집' 씨알학교 아이들이 새만금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출발하기 전 아이들과 함께 양지 말 입구에서 우리를 태워줄 버스를 기다리면서 씨알학교 한 꼬맹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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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어머니 갯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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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호 |
| "오늘 어디가?" 꼬맹이가 대답했습니다. "농장" 옆에 있던 형이 얼른 거들었습니다. "아니, 바다" 꼬맹이가 받아서 말했습니다. "아 하! 바다 농장."
버스에 올라서 아이들에게 새만금 살리기에 대하여 설명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를, 왜, 무엇을 하려고 가는지? 어른들은 왜 갯벌을 막으려고 하는지, 우리가 왜 반대를 하며 우리의 반대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열심히 정성들여 설명을 했습니다.
이만하면 이 녀석들도 오늘 자신들이 행보를 이해했으려니 하고 마지막으로 갯벌에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들이 갯벌에 살고 있을 법한 생명들에 대하여 떠들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아이들이 갯벌에서 신나게 놀 것에 생각이 미치자 차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녀석은 미리 갈아입을 옷이나 장화나 장갑을 준비해오지 못했다고 징징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서 결국 있지도 않을 갯벌놀이를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목숨 걸고 달려드는 돈벌이나 지방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손익 계산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것조차 관심 밖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오늘 나들이는 그저 신나는 갯벌 놀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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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호 |
| 이렇게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버스가 새만금 지역에 접어들었습니다. 마침내 차창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이 나타났습니다. 한 순간 그 장관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더불어 탄성을 질러 댔습니다. 그러다가 바다 쪽을 길게 가로지른 방조제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순간 가슴 속에서 치미는 분노와 슬픔으로 목이 메었습니다.
집회 시작이 오후 두 시부터인데 우리 일행은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하는 수 없이 버스 안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두 시간 넘게 버스에 갇혀서 달려온 아이들의 조급증을 달래며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을 데리고 집회장소로 내려갔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는데 전국에서 몰려온 환경지킴이들 중에서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달려온 공동체는 '섬나의 집'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일행의 행렬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우리의 행렬은 방조제 시작지점에 있는 거대한 돌망태 장벽에 앞에서 걸음 멈추어야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돌망태 장벽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방조제 바깥 바다 쪽과 방조제 안쪽 갯벌 쪽을 힐끔거리며 서성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거대한 방조제에 숨구멍이 막혀 속절없이 죽어가며 방조제를 바라볼 밖에 없는 갯벌신세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돌망태 장벽 저 너머 거대한 방조제 어디쯤인가 아주 조금 남은 숨구멍을 의지한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저 생명의 어머니 갯벌을 바라보면서 치미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우리 일행은 돌망태 장벽 앞에서 작은 시위를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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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호 |
| 저 돌망태장벽 너머에서 어른들이 벌이고 있는 돈 놀음이야 이해될 일도 알 까닭도 없는 아이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생명의 어머니 갯벌을 살려 내라! 미래세대의 생명보고 우리가 지켜내자!"
느닷없는 시위에 몰려든 카메라며 사람들의 눈길에 조금은 멋쩍은 듯 구호를 외치던 아이들이 잠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차게 구호를 외쳤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이 작은 시위가 한바탕 놀이였습니다. 한참을 구호를 외치며 시위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마음은 이내 갯벌로 내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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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호 |
| 흙발로 차에 오르는 녀석들은 차에 태워주지 않겠다는 버스 기사님의 엄중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너나없이 질퍽거리는 갯벌로 내달았습니다.
몇 녀석들이 냉큼 작은 게를 잡아들고 소리칩니다. "야 이거봐! 게야!" 아이들은 갯벌의 게며, 조개며, 갯지렁이며, 낙지며 인간에게 유익한 모든 생물들의 물질적 가치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을 수치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들을 통하여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체험할 뿐입니다.
시간이 되어 새만금 방조제 건설 반대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민중노래패들과 사물놀이패들의 길놀이에 이어 각각 순서맡은 이들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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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환경운동가들의 눈물어린 호소와 주장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고 깊이 동감하고 이해하는 바였습니다. 또한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장밋빛 선전에 대하여서도 더 이상 따져 볼 바가 못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새만금에서 고깃배를 몰며 평생을 바다와 갯벌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오다가 강제로 생존권을 빼앗긴 어부의 불끈 쥔 주먹과 절규에 이르러는 울컥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어제도 오늘도 먹고살기에 바빠 갯벌에 나갈 수밖에 없어 멀리서 한 달음에 이 곳까지 달려온 분들에게 죄송스럽기 한이 없다는 어민의 고백에 이르러는 가슴 아린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모두의 마음이 격양되어 있을 즈음 집회의 마지막행사로 준비된 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배는 바다로 가고 싶다"라고 적힌 돛을 달고 배는 서서히 움직였습니다. 이윽고 배는 어민, 농민, 환경운동가, 아이들까지 모두가 함께 모여 일으키는 출렁이는 바닷물을 만나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배는 바리케이트와 돌망태 장벽에 출동했습니다.
어민, 농민, 환경운동가들이 달려들어 돌망태 장벽을 헐고 배를 바다에 띄우려고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민, 농민, 환경운동가들이 한 달음에 뛰어넘기에는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싼 돌망태 장벽은 아직 견고한 철옹성이었습니다. 한 참의 실랑이 끝에 바다로 나가려는 어민과 배의 꿈은 훗날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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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호 |
| 이어서 집회를 마무리하는 뒤 놀이판이 벌어졌습니다.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놀았습니다. 진압경찰에 둘러싸여 눈이 휘둥그레진 꼬맹이들도 달려들어 겅중겅중 춤을 추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시위마저도 놀이였습니다. 어느덧 아이들의 춤사위는 이긴 사람의 흥겨움이 되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쳐 잠이 든 아이들을 보며 오늘 집회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돈 놀음에 눈먼 어른들의 탐욕의 철옹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생존권을 빼앗기고 절망하는 어민들의 마음에 기쁨을 선물하지도 못했습니다. 생명과 환경에 대한 우리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그리고 생태공동체에 대한 순수한 감수성이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왜냐하면 너 나 우리 모두에게 이 아이들과 같은 생명에 대한 순수한 감수성의 시대가 있었음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속으로 다시 외쳐 보았습니다. "아 생명의 어머니 새만금 갯벌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