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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셀 리더에게 셀이 개편 되었습니다. 성경 일독 계획을 세워 주시기 바랍니다. 전도할 사람은 셀 시작하면서 항상 나누기 원합니다.
2. 셀 맘에게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이 크듯, 셀에서는 셀 맘의 역할이 큽니다. 셀 원과의 화목과 친교에 관심을 갖아 주시기 바랍니다.
3. 셀 나눔 삶 나누기 :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서 일어난 사건(경험) 나누기 가정 삶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이야기 나누기 : 오늘 말씀에서 내가 받은 은혜 나누기 말씀에서 새롭게 안 사실 나누기 : 한 주간 전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1. 2013년 1월 예배위원 분병배찬:백남욱,이윤기 헌금: 장윤아,윤나경 애찬: 1셀 청소: 학생 설거지: 1셀 형제, 51셀 2. 차량 특별헌금 누적 :7,520,000원 금 10돈 3월중 구입할 예정입니다 3. 예배 후 선교회별 모임 남선교회:파랑 청년:초록 여선교회:거실 목회자:사택 4. 디다케 페스티벌(2013년 1월 7일 - 8일) 교회에서 7시 출발 합니다(시작7시30분) 대상:노복희,이명희,이범기.김상열,이경로,유양규,백남욱 회비: 2만원 5. 제자반 6기 일시 2013년 1월 8일(화요반) 저녁 8시부터 신청자:신수복,마주리,장용명,주은숙,문지윤,이윤기, 김명순,최순자 6. 복습반 4기 일시: 2013년 1월 10일(목요반) 저녁8시 대상자:백남욱,이현권,김상열,최진향,장태현,김하영, 이영신,강문자,하수진. 7. 송리더 연습 토요일 저녁 6시 강사: 신민아 교수 8. 사경회 1월 28일 – 30일 저녁 8시 주제: 말씀이 주는 유익 강사: 김문현(그리스도대학교 교수) 1월 27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반드시 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과 침식을 같이 했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현장을 지켜보았고 부활과 승천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 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사랑 때문에 오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그는 그가 만나고 경험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꼭 전해주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서 독생자가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누렸다고 간증합니다(1:14,16).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1:12,13).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언하도록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독특한 경건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자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기 위해 각처에서 구름떼 같이 몰려왔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기가 하나님 노릇,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노릇하는 삶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악한 행실들이 죄의 열매입니다. 세례요한의 엄청난 영향력에 놀란 유대 지도자들은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요한이 메시야나 선지자가 아니라고 말하자 왜 물로 세례를 주냐고 따졌습니다. 자기 죄를 아파하며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는 영혼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주실 분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그는 답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성령이 내려서 그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의 머리 위에 머물러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요한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기보다 여섯 달 뒤에 태어난 자기의 친척이었던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요한을 임신한 엘리사벳과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가 교제를 나눈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눅1:39~56). 요한은 독특한 신앙의 길로, 예수님은 목수로서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서로의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했습니다(1:29,34). 2장의 앞부분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소개합니다. 결혼 잔치에 참석한 예수님에게 마리아가 와서 “포도주가 바닥났다”고 말합니다. 큰 위기입니다. 마리아는 그 결혼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잉태와 출산, 30년 동안의 가정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범상치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인식은 충분히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의논하자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은 냉정합니다(2:4). 그런데 마리아는 하인들을 불러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더 이상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문제 해결을 맡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극상품 포도주로 바꾸어주심으로써 ‘은혜’의 충만을 제공하셨습니다. 2장의 뒷부분은 ‘성전 정화’를 다룹니다. 이 사건을 공관복음에서는 십자가 직전에 일어난 일로 기록하지만 요한은 서슴없이 앞에 배치합니다. 3대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은 성전을 방문해서 제사 드리고자 함입니다. 방문자들은 성전 입장료를 성전에서 쓰는 화폐로 바꿔 내야 합니다. (당시 로마 화폐에는 가이사의 얼굴을 인쇄하여 그를 우상화 하고 있기 때문에 부적합했음) 성전 당국자들은 장사꾼을 시켜 환전 명목으로 엄청난 수수료를 챙깁니다. 제물로 쓸 짐승도 성전에서 구입해야합니다. 이건 더 엄청난 차액을 착취하게 됩니다. 환전과 짐승 매매는 성전 마당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만든 채찍을 휘둘러 장사꾼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습니다. 권력과 결탁해서 이권을 장악하고 있는 장사꾼 들은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과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저항 못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쫓겨납니다. 예수님의 얼굴과 음성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절)”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스스로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표적’은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는 기적입니다. 표적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2:23~25). ‘표적 신앙자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방문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중 가장 경건한 신앙인으로 존중받는 바리새인입니다(당시 약 6천명). 국회의원급에 해당되는 공회원입니다. 그는 정중한 인사를 드립니다. 인사의 요점은 “예수님이 1)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이요, 2)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놀라운 표적을 행하시는 것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2절). 예수님은 단번에 그의 거짓된 신앙의 핵심을 찌르십니다. 1) '우리'신앙 : ‘우리’가 아니라 ‘네’신앙을 말하라. 종교적인 지식과 관념, 들은 얘기, 모태 신앙 등을 말하지 말고 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라. 2)'표적'신앙 : 표적을 행한 이는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다.” 이런 거짓된 신앙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의 양면적인 뜻을 갖고 있습니다. 너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지도 못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위층의 신앙 인사를 향한 하나님의 추상같은 선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존경받는 지도자요, 탁월한 성경학자인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거듭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어린애처럼 질문합니다.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란 말은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에 집중하라고 강조하는 표현인데 이 대화중에 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총25회).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약1:18, 벧전1:23).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의 뜻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엡1:13). 예수님은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을 들려주는 말씀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십자가의 4대 효력(영원한 속죄, 자유, 생명, 연합)을 담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십자가 복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 말씀들을 내 것으로 믿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고 교회생활이나 봉사를 열심히 한다 해도 거듭나지 못하면 육으로 난 것입니다. 성령님은 바람처럼 신비롭게 역사하십니다. 어떤 영혼이든지 말씀을 사용하셔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피를 힘입어 증거하는 말씀으로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어떤 영혼이든지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기에 우리는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1:12의 ‘영접 신앙’은 ‘표적 신앙’과 마찬가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믿는다, 영접한다’는 말로는 신앙의 참됨을 확증할 수 없습니다(2:24, 6:66, 8:31~59). 하나님이 낳아주시는 신앙이어야 합니다(1:13). 영접과 거듭남은 한 뿌리입니다. ‘말씀 신앙’입니다(롬10:17). 니고데모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9절). 이스라엘을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교사가 그 모양입니다(11절).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민21:4~9)이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을 표상한 것임을 일깨워주십니다. 뱀에 물린 자들은 장대에 높이 달린 뱀을 보기만 하면 살았습니다. 구리 뱀의 신통한 효력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방법을 정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건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장대에 달린 구리 뱀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믿으면 영생을 얻는 것이요,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온통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제공하시는 4대 효력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로지 우리에게 영생 주시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판 받는 것을 정말 원치 않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그 실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요17;3). 설교 - 2013. 1. 8 20일 말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는? 딤후3:15~17 2012년 9월 23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설교: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정경성 문제입니다.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의 故(고) 이병철 회장도 그런 궁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24가지 질문 중에 8번째 질문이 이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는 다양한 측면에서 입증할 수 있습니다. 외적 증거도 많고 내적 증거도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고고학 발굴을 하면 할수록 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이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많은 대적자들과 핍박자들에 의해 수많은 성경 말살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살아남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더 넓게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근대에 와서 사해에서 발견된 성경사본은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인 것을 인식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내적 증거들이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살펴보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이미 믿음을 가진 신자들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성경에 대해 호기심이 있거나 또는 부정적 시각을 가진 불신자들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적인 증거만 몇 가지 살펴봅니다.
1.성경은 통일성이 있습니다.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기록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기록은 사람이 했으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의 기록 연대는 자그마치 약 160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40명의 인물이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성경 기록자들의 직업과 신분은 다양합니다. 왕도 있고 의사도 있고 농부도 있습니다. 세리도 있고 어부도 있고 율법사, 제사장, 선지자 등등……. 각양각색입니다. 이 말은 저자들의 환경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지식적 수준, 도덕적 수준, 영적 수준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66권의 책들이 한 결 같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들이 다 달랐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모두 함께 만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이 서로 만나서 편집회의를 했다든가 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지 의논한 적이 없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글들이 이상하게 한 가지 주제로 글이 써졌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밖의 제3의 능력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통일된 주제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어떤 책이든 첫 시작과 끝을 보면 대체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도 오실 예수님을 말하고 있고 레위기에서도, 시편에서도, 선지서에서도, 모든 성경의 주제는 오로지 예수입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잘 아시지요? 5절부터 보세요.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성경이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의 선지자 이시야가 쓴 성경입니다. 그런데 마치 옆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보고 있는 듯 하잖습니까?
또 골1:15절 이하를 보세요.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런 내용을 요약하면 만물을 창조하신 이도 예수님이요, 그 창조의 목적도 예수님이요, 피조물의 운행과 충만도 오직 예수님에 의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성경은 예수에 관한 책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그분이 독생자를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모든 인간에게 나눠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꼭 오셔야 했던 이유를 밝힌 책이고 신약성경은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과 인간에게 미친 결과를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 저자 총 몇 명이라 했지요? 약 40여명입니다. 그중에 3/4 이상이 예수님 오시기 전의 구약시대 사람들입니다. 멀리는 예수님 오시기 약 1500년 전부터 짧게는 약 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모습의 메시야가 오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라는 이름만 몰랐지 그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심에 대해 성경에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그의 오심을 예언했고 또 그 오심의 의미에 관해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도저히 인간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아니 인간이 꾸며 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시대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전부를 아우르며 그들 모두에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끔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성경의 저자입니다. 그렇다면 그 저자는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또한 그분이 보내신 독생자 구주임에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2. 성경은 예언의 성취성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경에는 예수님과 인류 역사에 관한 예언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것은 어김없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재림과 인류 종말에 관한 예언이 약 200여개가 아직도 성취를 기다리며 남아 있습니다. 그 예언들이 하나님의 계시로 인간에게 실제 전해진 시점은 성경이 기록된 년대보다 훨씬 앞섭니다.
이 예언은 심지어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습니다. 창3:15절을 기억하시지요? 지난번에 살펴본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여자의 후손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은 여자의 후손인가요? 남자의 후손인가요? 다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었습니다. 그러니 남자로 말미암지 않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멘?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해서도 살펴보세요. 그분의 동정녀 탄생,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 베들레헴에서 출생, 애굽으로 피신, 유다의 배반, 심지어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 이런 중요 사건들이 아주 세밀하게 예언되었고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아멘?
대표적 예로 예수님 오시기 천 년 전 사람인 다윗이 기록한 시편을 보세요. 시편22:14절 이하를 보세요.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누구 말입니까?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마치 천년 후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은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예언의 성취를 우연의 일치로 돌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확률을 아시지요?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로또 복권에 6개의 숫자를 맞추어 당첨될 확률이 841만분의 1이랍니다. 이게 얼마인지 알 수 없지요? 쉽게 말하면 80㎏ 쌀 한 가마니에 들어 있는 쌀알이 260만~300만개쯤 된다고 합니다. 그 쌀 세 가마니를 쏟아놓고 거기에 검은 쌀을 한 톨 섞은 뒤 눈을 가린 채 검은 쌀 한 톨을 집어들 확률과 똑같다고 합니다. 다른 비유로 서울에서 천안까지 고속도로에 1원짜리 동전을 일렬로 죽 늘여놓고 그 중 하나를 무심코 집을 확률이랍니다. 매주 10만원어치씩 3120년 동안 사야 한번 당첨 될까 말까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예언 8개만 예수님 당대에 성취될 확률은 얼마일까요? 10경분의 1이랍니다. 1京은 1옆에 O(영)이 16개 붙은 숫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되나?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10경개의 동전으로 우리나라 남북한의 모든 땅을 동전으로 완전히 뒤덮고도 남는 숫자입니다. 따라서 10경분의 1의 확률이란 그렇게 깔린 동전 중에 딱하나 색깔이 다른 것이 있는데 무작위로 눈감고 집어 올렸을 때에 그 동전이 집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해 명확히 인정할 수 있는 중요 예언 48개가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을 확률로 표현하면 0이 157개가 붙은 숫자 분의 1의 확률이랍니다. 이를 다시 실감나게 ‘맥스 엔더스’란 사람이 비유했습니다. “토네이도(태풍)가 불어서 폐차장을 지나가면서 순간적으로 부품을 모아 자동차 한 대를 완전하게 조립해낼 수 있는 확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선 아예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한 예언은 성취되었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正確無誤(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은총을 우리가 믿고 이해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가르쳐준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어떻게 기록되었고, 왜 기록되었나요? 1)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40여명의 인간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일치되게 기록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 3장16절이 대답을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써졌다고 했습니다. 여기 “감동”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당신의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것 같이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 저자가 자기 맘대로 저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란 말입니다. 여기에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계적 영감설”이냐 “유기적 영감설”이냐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말씀을 불러주시고 인간은 단지 받아쓰기 하듯이 했다, 저자의 정신 활동이 중지된 채 기계적으로 받아썼다고 하는 것이 기계적 영감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저자의 인격, 습관, 그리고 그들의 성격, 학식, 체험, 문체 등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하는 바를 온전히 계시해 주셨다는 것이 유기적 영감설입니다. 우리 개혁 교회는 후자를 믿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지 궁금하다면 여러분이 한번 목사가 되어 설교를 준비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쉽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성경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좋은 말들을 추출해 짜깁기 하듯이 설교를 준비한다면 하나님의 감동은 전혀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며 생명의 말씀을 받기를 소원하면 그분으로부터 오는 세미한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설교의 주제와 내용을 만들어 주십니다. 심지어는 단어 하나, 예화 하나까지도 신기하게 연결시키도록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막상 설교 단상에 설 때도 특별한 감동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목사는 그 맛에 목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그 감동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꿀맛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면 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를 세우거나 장로 권사 안수 집사를 임직할 때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느냐 고 묻고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못 믿으면 신앙생활 올바로 하기 힘듭니다. 그런 사람은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를 않습니다. 그저 목사의 강연 정도로 들으려 합니다.
어느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예배를 마쳤는데 어떤 분이 제게 찾아와 인사하고 갑니다. “목사님 오늘 강연 잘 듣고 갑니다” 그래서 제가 이 사람 생짜배기구나 했지요. 목사님께 물어보니 처음 나온 사람이라더군요.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을 믿는 사람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이런 성경의 내적 증거들에 대해서 부정하고 불신합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기록한 바울의 사상과 그의 주장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냐며 반박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목사나 학자가 된 사람들은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고 설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는 책입니다. 15절을 보세요.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교양도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책입니다. 그런 지혜가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으로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17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데 그 믿음은 들어야 하고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름부터 특이합니다. 영어로 성경은 "The Bible"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은 The라는 정관사를 붙이고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Bible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책’입니다. The Bible의 뜻은 “바로 그 책”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의 어떤 다른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없는 그 책입니다. 동시에 누구라도 반드시 한 번은 읽어야 할 “그 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도 특이합니다. 聖經(성경)입니다. 거룩할 聖(성), 책經(경)입니다. 거룩한 책입니다. 왜 거룩한 책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어부인 베드로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핍박자인 사울이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을 살펴보라면 하루 종일 말해도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단순히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본문 3장 17절을 보세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언합니다. 우리 시대에 각종 흉악한 범죄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사람을 가르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할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은 다른 말로 “말씀”이라 표현하고 때로는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요한복음1장에서 예수님도 자신을 말씀으로 표현했고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곧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하나님 말씀이고 이 말씀을 믿는 받아들이는 성도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와 예수님과 성경은 떨래야 뗄 수 없는 관계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읽고 듣고 배워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인생 나침반입니다. 왜죠? 따라서 합시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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