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ief's Diary : 대재앙-
"신……?"
한참동안 상념에 빠져 시은은 끊임없이 그녀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반복했다. 신은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언제 태어났는가. 신의 존재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이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라가 어째서 하느님인가.
‘인간, 아니, 동물이란 개념 자체가 아닌 걸까…….’
심장을 비롯한 모든 부위에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을 동물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인체를 벗어난 어떤 초월적 존재의 등장이라며, 어쩌면 이라를 내세워 크게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같잖은 생각도 해 보았다. 아무리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녀는 정말 신일까. 신이라면 왜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일까. 그것도 하필이면 같은 반 왕따 짝꿍으로.
여하튼 분명한 것은, 그녀가 어떤 것이든 간에, 자신에게 있어 그녀의 존재는…….
"유!"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변의 사물들이 눈앞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모든 것들은 점점 현실로 다가와 온 몸을 가득 채워 버렸다. 동시에 들려오는 고함소리, 사이렌 소리, 발소리, 그리고 엘의 다급한 목소리.
"뭐 하는 거야, 오빠! 얼른 도망가야지!"
……뭘 하다 이 지경이 됐지?……아, 도망가던 중이었지.
"저기다! 죽여도 상관없다! 쏴!"
누군가의 목소리에 유와 엘은 문 끝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남자 하나만 서 있던 그 곳에 이윽고 일단의 무장경찰들이 들어서 유와 엘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유와 엘은 건물 기둥을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지상주차장. 탁 트인 공간이라 섣불리 외곽 쪽으로 다가가지도 못한다. 저격수들이 산재해 있으니까.
"유! 주변에 경찰들이 건물을 에워싸기 시작했어!"
헤드셋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와 엘은 주변으로 귀를 기울였다. 조그맣던 사이렌 소리는 이윽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문 쪽으로도 몇몇의 추가 병력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쩌렁쩌렁한 확성기 소리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항복하라! 더 이상 반항한다면 너희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가 무슨 패잔병들인가. 시은은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라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오던 것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대신 냉철한 머리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먼 곳에 비상구가 있었지만 그 곳까지 가려면 한 번 격전을 치러야 할 듯 했다.
그러나 어쩌랴. 총을 든 그들 앞에서.
"엘, 저기까지 뛰자. 데저트 이글 있지?"
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데저트 이글을 들었다. 유도 두 정의 베레타를 들고 때를 기다렸다. 경찰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뒤, 유는 기둥에 기대어 앞을 향해 탄환을 쏟아내었다.
타타탕 탕 타탕
"지금이야, 뛰어!"
둘은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비상구를 향해 뛰었다. 당황하던 경찰들은 곧바로 유와 엘을 향해 총을 쏘았다. 5월 푸른 달밤 아래 때 아닌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지하주차장 바깥.
부릉 끼이익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산영의 아버지를 대신해 이번 일을 맡은 형사였다. 마침 그 곳에 있던 무장경찰 하나가 형사를 향해 말했다.
"지금 경찰들이 쫓고 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주변에 저격수를 비밀리에 배치했는데 어떻게 그걸 알아냈는지 주차장 바깥으론 모습도 보이지 않고요. 현재 교전중입니다."
형사는 총소리가 흘러나오는 지상주차장 4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총격전이다.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 죽여도 상관없다고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으므로 형사는 그들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했다.
그때 차 안에서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저격수가 어디에 있나요?"
"예? 아, 동서남북 두 명씩 총 여덟 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만……."
"백화점과 연결된 통로는 봉쇄했겠죠? 지하주차장 옥상인 5층으로는 아예 올라갈 수도 없을 테고요."
"당연하죠. 그런데 누구신지……."
무장경찰이 차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자동차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길게 묶어 내린 머리, 반짝이는 안경. 산영은 차에서 내리며 4층짜리 지상주차장 건물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무장경찰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격수의 위치를 변경하세요. 동, 북쪽 저격수 두 명중 하나는 4층이 마주 보이는 장소로 이동시키고, 북 서쪽 저격수 두 명중 하나는 3층, 서, 남쪽 저격수 중 다른 저격수는 2층, 남, 동쪽 다른 저격수는 1층을 노리도록 하면 완벽할 겁니다. 빠를수록 좋으니 지금 시행하세요."
"뭐요? 이봐, 네가 누구인데 우리더러……."
"하라는 대로 하게. 강 형사님 딸이야."
형사의 말에 무장경찰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곧 무전기를 들어 저격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형사의 후광도 있었지만 그보다 ‘강 형사의 딸’이라는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 걸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강 형사는 유, 엘 남매를 수 년 동안 따라다니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활용한 유명한 형사였다.
"하지만 저격수 배치만으로 그런 게 모두 해결될까?"
"물론 안 될 테죠. 일단 그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어야 해요. 유엘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죠?"
형사는 다른 무장경찰로부터 무전기를 받아 뭐라 중얼거리더니 산영에게 대답했다.
"비상구 쪽으로 가고 있대."
"잘 됐군요. 비상구 1층, 2층, 3층으로 병력을 투입하세요. 잘 하면 유엘을 4층에 묶어놓을 수 있어요."
"알았어. 역시 데려오니까 나 혼자 하는 것보다 낫군."
그리 말하며 무전기를 드는 형사 옆에서 산영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차가운 관 속에서 갇혀 울분을 쏟아내고 계실 아버지. 그러나 상황은 그녀와 아무 상관없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유, 엘! 지금 비상구로 가려는 거냐?"
엠의 목소리에 유는 탄창을 갈며, 그렇다고 급하게 대답했다. 비상구로 향하고 있긴 했지만 앞 옆으로 적들이 몰려오는 데다 어느 순간 저격수들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엠에게서 들려온 한 마디는 더욱더 그들을 난감함에 빠뜨리고 있었다.
"비상구로 절대 가지 마! 지금 1, 2, 3층에서 경찰들이 잔뜩 몰려오고 있어!"
"예? 정말요?"
"그럼 내가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게 생겼냐! 앙?"
윽, 엄마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유는 서둘러 몸을 사리는 한편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탈출구인 비상구도 막혀 있다. 백화점 쪽 입구는 봉쇄당한 지 오래. 거기에 저격수와 무장경찰들이 몰려오고 있다니.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탄약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물론 영구적으로 싸울 수 있는 펄스 소드가 있긴 했지만 그걸 갖고 싸우기엔 한계가 있는 데다 정작 시은 자신은 검을 다룰 줄 몰랐다. 위협이라도 되면 다행이지. 시은은 베레타를 들고 쏘는 한편 M963 저격 라이플로 간간이 저격수들을 상대하며 머리를 짜 냈다.
그러던 한 순간 그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주차장이란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그것. 그것이라면 뭘 어떻게 해서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것이 처음이라는 건데…….
"에라, 되든 말든 일단 시도라도 해 보자!"
시은은 기세 좋게 나서며 중얼거렸다.
한편.
"1층 부대, 2, 3층 부대와 합류했습니다. 유엘은 아직 그럴 듯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잘했다. 저격수, 어떤가?" "여의치 않습니다. 계속 공격중이지만 저 유라는 놈이 저격 라이플로 반격을 하는 통에 제대로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형사 아저씨, 1, 2, 3층에 모아 둔 저격수들을 4층으로 올려 보내 주세요."
"알았어. 저격수 분대는 들어라. 모두 4층 방향으로 집결할 것. 이상." 형사의 말에 무전 너머로 저격수 분대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형사는 산영을 바라보며 싱긋 웃을 뿐이었다. 산영도 마주 웃어주면서, 어쩌면 유와 엘이 여기서 잡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속내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여기서 잡히길 바라지 않았다. 불쌍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유. 그들은 이른 곳에서 고통 받아서는 안 되었다. 좀 더 잔인하게, 좀 더 천박하게, 좀 더 고통스럽게.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주, 중앙, 들어라! 명령을 내려주길 바란다!"
"무슨 일이냐. 천천히 보고하라."
"유엘 남매가 자동차를 타고 무작정 돌진을……!"
"자동차?"
자전거도 전차도 아닌 자동차라는 말에 형사와 산영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어진 보고는 그들을 당혹케 만들기 충분했다.
"여긴 3층! 방금 지나간 자동차 속에서 목표물을 발견하였다!"
"4층으로 올라가려던 동쪽 제 2번 저격수입니다. 2층으로 내려오는 자동차 안에 유엘 남매가 있는 것을 확인."
"젠장, 경찰차들을 모아라! 1층 입구를 막으라고!"
형사가 급하게 소리치자 경찰들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1층 지상주차장 출구로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나 대로변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경찰차들이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산영아, 우리도 가자!"
형사가 호기롭게 나섰다. 그러나 산영은 그 자리에 붙박여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사가 재촉할 무렵, 그녀는 돌아서며 형사에게 말했다.
"쫓지 마세요. 아무래도 오늘은 포기해야 할 것 같네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운전하는 사람, 뭐 유나 엘 둘 중 하나겠지만, 운전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엑셀, 브레이크, 핸들 세 개를 이용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기어는 자동기어일 테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은 곧 차를 버리고 도망갈 거란 점이에요. 그 때쯤 되면 우리에게 승산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쫓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더군다나 오늘은 금요일 밤. 백화점 근처는 유흥가이고, 사람은 거리 여기저기에 넘쳐나요. 차량 역시 이 늦은 시각까지도 가득할 테니, 경찰차든 구급차든 이동이 어려울 게 뻔하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도로 한 가운데에 차를 세워두고 도망가도 상관없어요. 그러니 이만 포기해요. 더 이상 쫓아봐야 손해니까요."
형사는 산영의 논리를 반박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결국 무전기를 들고 말았다. 산영은 멀뚱히 도시를 바라보며 질끈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공원.
"하아. 아무리 해도 힘든 걸까나."
오랜만에 산뜻한 차림을 하고 나온 산영은 공원 한쪽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일요일처럼 휴일이 되어 버린 토요일. 하늘은 파랬고, 땅에는 싱그러운 봄 향기가 흘러넘쳤다.
산영은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곤 이내 어제의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유엘 남매의 발견. 겨우 지상 주차장 4층으로 그들을 몰아넣은 후엔 저격수들까지 나서서 그들을 공격했지만, 유엘 남매는 어느새 자동차를 타고 주차장을 내려와 도시 한복판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기서 느낀 건 낭패감, 체념, 포기 같은 감정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떠오르기 시작한 한 가지 생각이 그녀를 붙잡았다. 아버지라면 이것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역시, 아빠라면, 포기는 하지 않았겠죠?’
산영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져 두 눈을 비벼대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흘리지 않겠다던 눈물이 또 다시 앞을 가리려 했다. 애써 더 비벼보지만 한 번 새어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라, 산영 선배. 울어요?"
갑작스런 목소리에 그녀는 옆을 바라보았다. 산영은 재빨리 눈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란이었다. 오늘 두 사람이 모인 이유는 은경의 실종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전혀 안 울어. 봐, 멀쩡하잖아."
"그래요? 으음……. 우는 것 같았는데……. 그럼, 출발할까요?"
시란이 앞장서자 산영도 그 뒤를 따랐다.
문득 시란의 뒷모습이 엘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안녕하세요;ㅂ;// 저번주 연재를 빠지고 이제서야 올리는 Tree입니다[먼산]
이번 편으로 A4 100장을 달성하였습니다/ㅁ/!![축하해주세요-ㅂ-//] 지금까지 줄기차게 읽어주신 여러분! 여러분은 무려 A4 100장의 작품을 끈기있게 지켜보신 영웅입니다! 그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캐릭터 투표를...[퍽 퍼퍽]
음음'ㅅ'. 대략 그녀와 그녀는 그렇고 그런 사이♡[퍽]...라죠[응?;] 밤은 깊어가고:D 유엘은 오늘도 도둑질을 합니다. 낄낄; 역시 난감한 전개...[먼산...ㄷㄷㄷ;]
다음편에는 산영과 시란의 결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볼 수 있으실 겁니다'ㅂ'! 더불어, 지금까지 시란이 검을 쓰는 장면이 없다고 투덜거리시던 분들! 각성하세요![응?;]
그럼 다음편에 뵈요~~☆
-----다음편 예고-----
#12.결투(決鬪)
"엄마, 시란 어디 갔어요?"
"시란 찾아서 돌아올게요!"
"그 다음에 남자가 나타났다고?"
"이 자리에서 죽었다면서, 왜 핏자국 같은 게 없어?"
"여기서 뭐해, 시은?"
"쟤들 언제부터 있었어?"
"됐어. 거기까지."
"범인은....누군지 알아?"
"꺅! 갑자기 왠...?!"
"시도때도 없이 덤비면 좀 곤란한데."
"내 머리나 물어내, 이 싸가지 없는 능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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