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의 열기가 습기와 더불어 솟아나는 토요일 오후, 나는 동작동 국립묘지(현충원)로 들어섰다. 순환 버스가 지나간 뒤라 충혼당까지는 걸어 올라가야 했다. 차도 옆 인도는 제법 언덕으로 이어졌다. 나라를 위해 순국한 영령들이 좌우로 조용히 쉬고 있다.
이곳은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인해 생기고, 늘어나는 국군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한 육군 국립묘지로 1952년 5월부터 계획되어 1953년 서울 동작동 부지 선정, 1954년 착공, 1956년에 개장하였으며 안장이 시작되었다. 개장 당시의 명칭은 '국군 묘지'였다. 1965년 국립시설로 승격되어 '국립묘지'로 불리었다. 1996년 '현충원'(顯忠院) 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2006년에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개장 당시에는 6.25 전쟁 때 전사(戰死)했던 군인, 대한민국 군무원들의 안장 위주로 운영하였으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순국(殉國)한 애국자와 독립유공자 등의 호국영령을 비롯해 경찰관, 예비군 등의 영현까지 안장함에 따라 호국 보훈 및 추모 시설로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나무위키 참조).
새롭게 조성된 제2 충혼당은 언덕 위에 있었다. 3층 안쪽으로 이제호 형님이 7단에 계셨다. 작은 내 키로는 높아 보였다. 역시, 각지진 않고 편안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지난 4월이 벌써 4개월이 지났군요. 다시 인사드립니다.”
물론, 속으로 한 말이었다. 1985년 9월부터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선배였다. 국립암센터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큰 딸을 보려고 베를린으로 가셨다가 작년에 원주로 귀국하신, 월남전에도 참전했던 분이었다. 나와 집사람은 그분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영등포시립병원 시절, 퇴근할 때면 어린 아들에게 주라고 장난감이나 과일 꾸러미를 딸려 보내셨다. 내가 정년퇴직하던 해, 어느 날에 산본으로 찾아오셔서 집사람과 나를 놀라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당신의 건강보다 우리와 만남을 즐거워하셨던 분이었다. 그런 그가, 봄날 어느 날 홀연히, 갑작스럽게 이승을 떠나셨다. 여주에서 원주는 바로 지척인데, 곧 나의 집사람과 함께 보자던 그분이 조용히 가셨다. 마지막 잔이라도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충동이 치악산 비로봉에서 몇 번이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포근하게 웃고 계시는 그분의 용안(容顔)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집사람과 함께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묘소는 제2 충혼당 위에 있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그날, 상대원동 어느 공장 경비실에 나는 있었다. 아침이 오기 전부터 라디오에서 음울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스무 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국가, 나라, 물론 그동안 주입식 교육으로 응결된 나는 그분의 영면이 슬프게 다가왔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던 나는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바로 어제 아산방조제에 서 있던 그분의 강골 찬 모습을 보았다. 차지철과 김재규의 싸움, 궁정동 만찬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총성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5·16혁명, 유신 헌법, 군부 독재, 중앙정보부, 부마항쟁, 새마을 운동, 많은 기업가에게 준 수출탑, 육사 11기 등등 수많은 긍정·부정적 업적을 그는 남겼다. 그분이, 그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의 부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아마 처음 내가 이 묘지에 온 것은 그가 돌아가시고 2년쯤 지나서일 거다. 바로 올 수는 없었고, 그의 죽음이 잊힐 즈음, 어느 가을날에 왔었다. 그 새벽의 장송곡이 그때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곳에 오고 말았다. 그동안 그분을 잊었지만, 오늘 다시 이곳에 왔다.
이제호 형님과 박정희 대통령. 한 분은 나를 알고 한 분은 나를 모른다. 한 분을 나는 좋아하지만, 다른 한 분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한 분은 나에게 은혜를 주었지만, 한 분은 나라에 공(功)과 사(詐)를 함께 가져온 사람이다. 한 사람은 역사에 영원히 남겠지만, 한 사람은 그 가족의 역사와 함께 조용히 끝난다. 한 사람은 특별했으나 한 사람은 평범했다. 오늘 나는 두 사람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
https://youtu.be/6OrL5-PfT94
첫댓글 미둔선생님, 아버지의 묘소를 들러주셨군요...감사합니다...! 안녕하시지요? 다음에 한국방문하면 뵙고싶습니다.
큰형님의 딸 지나 양! 독일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우리의 큰형님이시고 또한, 지나 씨의 아버님이 가신지도 봄, 여름 가고 이어서 가을 입구로 접어들고 있네요.
큰형님, 아버님의 분신인 지나 양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게요.
미둔 수고했네! 나는 지금도 제호형이 살아 계신 것 같은 착각을 가끔 한다네...
죽움이란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으니 슬픈 일이지....
명구 형님! 큰형님께서 대학로 진아춘으로 이번 토요일에 모두 모이라고 하시네요.
바로,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날이 어제인 양, 덧없이 빠르게 지나갔군요.
마지막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물론, 모든 임들도요.